[청년 열전 靑年 列傳] 유리 만지는 남자, 박진영

축복

 

첫 번 축복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사소한 기억들을 잘 잊어버리곤 한다. 그에 반해 강렬했던 상황, 톡 쏘는 기억들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쉽게 잊지 않는다. 그런 나의 흐릿한 어릴 적 기억 속 유독 또렷이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은 아버지의 화실이다.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들의 유년기 시절보다 예술활동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아버지 친구 분들의 작업실을 방문했었고 서양화부터 동양화, 조각까지 여러 종류의 작품을 보고 만지며 자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친구 분들은 술잔을 기울이시던 중이면 종종 마음에 들었던 서로의 작품을 교환하기도 하셨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와 난 자그마한 우리 세 식구의 집을 미술 작품들로 꾸미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창 밖 풍경보다 아버지의 그림을 보는 게 더 행복했고 그리 부유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문화적 충족감을 누렸다. 나에겐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내 첫 번째 축복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공간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입시미술을 공부하던 고등학교 무렵, 어머니께선 직장을 그만두시고 평생 꿈꾸셨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을 여셨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공방에서 본격적인 알바를 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스테인드글라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힘들게 유리를 재단하는 것이 그저 이유 없는 노동처럼만 느껴졌었고 나에겐 그저 알바의 수단이었다. 이건 단지 종교적이고 고지식한 틀에 박힌 예술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축복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나또한 대학시절을 보내며 군복무를 했고, 군 휴가 때 짬을 내 아르바이트로 모아뒀던 돈으로 도쿄행 비행기티켓을 끊었다. 그 짧다면 짧은 열흘간의 도쿄여행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곳엔 내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낸 자유로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종교적인 작품이 아닌 개인의 취향이 담긴 유리들, 그리고 자연스레 일본인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일본의 유리공예 문화가 있었다. 여행의 목적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니었지만 열흘 중 일주일을 유리 관련된 장소들만 찾아 다녔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쉬곤했다. 도쿄에 가기 전까진 이 일은 내 취미 중 하나, 특이한 이력 정도의 것이었지만 도쿄의 유리문화는 이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도쿄여행은 내 두 번째 축복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계획을 세우며 일주일간 고민에 고민만 거듭했던 것 같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으니 현실적으로 꿈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20, 30년 뒤의 내 모습을 계획하기 보단 당장 1년 뒤, 6개월 뒤, 그리고 일주일 뒤의 꿈을 설정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들, 실패하더라도 바로 다시 도전 할 수 있는 계획들을 세웠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계획한 짧고 긴 목표들 가운데 가장 큰 목표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갖는 것이었다. 기존의 공방은 나와 직원 두세 명 정도가 작업을 하기엔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수강생들을 가르치기엔 매우 협소했고, 자칫 잘못하면 유리에 다칠 위험이 있는 상태였다. 꾸준히 3년간 지출을 줄이며 돈을 모았고, 현 공방 근접해 있는 건물 중 클래스를 열기에 적합한 자리를 수소문 했다. 마침 나와 어머니 둘이 열심히 공방을 운영하는 모습을 어여삐 여기신 맞은편 건물 사장님께서 부담스럽지 않은 임대료에 상가 한 층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올해 5월 두 번째 공방을 오픈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큰 목표를 이루게 되어 노력과 열정에 대한 다디단 보상을 맛보았다. 덕분에 내 앞으로의 꿈들에 대한 더 큰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

 

세 번째 축복

보통 스테인드글라스를 생각하면 유럽의 성당과 교회에서 흔히 쓰이는 작품들 같은 종교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릴 뿐, 일반 건축물이나 작은 공예 소품들을 떠올리진 않는다. 실제로 10년 전까지는 그러한 종교 스테인드글라스가 대부분이었다. 교회의 신축과 성당의 리모델링을 할 때면 빼놓지 않고 쓰였다. 큰 교회, 성당 일수록 빛이 더욱 화려하고 성경의 말씀을 많이 담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 설치했지만 최근엔 종교 건축이 매우 간소화 되고 있는 추세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로 설치하려는 교회, 성당이 줄어들며 근 2년간은 갤러리나 스튜디오, 박물관, 아파트 등 일반 건축물에 들어가는 디자인이 80% 이상으로 늘어났다. 아파트 조경에 쓰이는 유리 조형물, 채광이 좋은 창을 이용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한 갤러리, 일반 사무실 내부의 인테리어를 위한 파티션, 심지어 스파 시설의 장식에도 쓰이는 등 추세가 변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더욱 쉽게 스테인드글라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서 내가 시대 흐름 타는 운 하나는 타고났구나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자체가 큰 축복이 아닐까. 이러한 작업을 거듭하며 최근 난 자연과 색유리의 조화에 푹 빠지게 되었다. 창문은 건물 바깥과 내부를 이어주는 통로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통로에 자연의 나무와 바다 물결, 하늘을 그려 넣는다고 생각한다면 참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자연, 실제 자연물을 그대로 유리로 옮긴 작품들을 클라이언트들에게 자주 제안하다 보니 어느새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용한 내 건물을 짓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휴식과 자연, 거기에 사람까지 더한 펜션을 지어보면 어떨까, 직접 공간에서 그 빛을 느껴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더욱 목표가 뚜렷해졌다. 산 중턱에 위치하며, 주변의 자연 환경과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소품들을 이용해서 인테리어를 채우고, 한쪽 공간에는 유리공방을 조성해 다양한 체험까지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보는 게 내 앞으로의 10년 목표이다.

 

네 번째 축복

내 인생을 돌아보면 항상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주시고 한평생을 날 위해 희생해 오신 어머니가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이 일을 접한 것, 일에 몰두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꿈에 대한 동기를 심어주신 어머니의 축복은 너무나도 큰 은혜이고 사랑이다. 공방 운영을 시작하고 모자간의 환상의 팀워크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이 많았다. 누구보다 내편인 가족과 함께 일한다는 건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견충돌로 인해 부딪치는 점도 많을 수 있고, 서로를 믿는 만큼 서로에게 실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새로운 것들을 일구어내고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건 내게 거대한 축복이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이 힘들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린 가족이니까 괜스레 투정 부리는 거다.

우린 가족이니까 괜스레 부끄러워 고맙다고 말 못한다.

우린 가족이니까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 모든 것을, 우린 가족이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같은 곳을 향해, 남이 아닌 가족이 함께 우리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건 나에게 큰 축복이자 사랑이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9.01.03 09:49 수정 2019.01.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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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