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에 있어도 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
어떤가? 당신도 겨울 속의 봄을 찾아 떠나고 싶지 않은가?
중국 윈난성(雲南省)에는 차마고도 중간 중간에 마방들이 쉬어가며 물물교환 등을 하던 역참기지가 발달했는데 오늘날 쿤밍(昆明)과 따리(大理), 리장(麗江), 샹그릴라(중띠엔) 등 도시의 고성이 그 중심지다.
그 중에서 해발 2,400m의 고원도시 리장은 만년설이 덮인 옥룡설산(玉龍雪山)과 아름다운 호수 흑룡담공원(黑龍潭公園),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전통마을 리장고성(麗江古城) 등 관광자원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특히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지름 10km 가량의 리장고성은 명청(明淸) 때 부터 서북지역 차 무역의 거점을 이루었으며, 나시(納西)족의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고성 건물로 유명하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이곳에 사는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일상적인 삶을 집중 조명하여 세계 관광객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냄으로써 중국 소수민족 전통문화의 세계화에 성공하게 된다. 바로 '가장 지역적인 것을 세계화'하고 이를 관광산업에 효과적으로 연결시켜 연간 수조원에 이르는 관광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리장고성 옆에 자리 잡고 있는 호수공원 흑룡담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호수를 이루는데, 호수에 비친 옥룡설산의 반영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옥천공원(玉泉公園)이라고도 부르는데 청나라 때 건륭황제가 이곳의 경치를 보고 반하여 친필로 써서 이름을 하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흑룡담공원과 인접해있는 리장고성에 들어서면 나시족 전통 목조가옥이 빠짐없이 상가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식당, 차판매장, 기념품가게, 은공예품점, 카페, 심지어 주점, 나이트클럽에 이르기까지 고성 내 고가옥에는 다양한 간판이 걸려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골목길 입구와 건물 틈새, 나무 그늘 아래, 심지어 작은 다리 위에도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장터를 방불케 하는 상가가 되다니. 중국인의 상술은 가히 놀랍다.
고성 안을 흐르는 물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고성 안의 건물도 이 물길을 따라 지었다. 1996년 진도 7의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여기 거의 목조건물인 고성 지역만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고성 안을 거미줄 같이 퍼져서 흐르는 수로가 지진의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法)은 ‘물(水)이 간다(去)’, 즉 ‘물이 흐른다’는 뜻이다. 물 흐르듯이 살면 법대로 사는 것이다. 순리대로 살면 사람이건 사물이건 만사 불여튼튼이다.
중국 남송 후기의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리장고성은 성벽 없는 고성이 관광 포인트다. 마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에서부터 골목이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다. 골목을 따라 나시족의 전통 가옥이 오밀조밀 이어지고, 옥룡설산의 물이 흑룡담에서 솟아나오면서 골목 구석구석으로 흘러든다. 수양버들 하늘거리며 흩날리는 골목에는 많은 이들의 발길에 반들반들 윤이 나는 돌길이 이어지고, 대문 앞 맑은 수로에 수초가 흔들리며 고기떼가 헤엄치는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해 저문 밤에는 홍등의 불빛에 젖는 고성 기와집들의 야경도 운치 있다.
골목길 돌담 벽과 거리 간판, 이정표에는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가 함께 안내되어 있어 나시족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데, 물길 옆 버드나무 카페에서 나시족 가수의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와 소수 민족의 애환과 정취를 잠시 느낀다.
사방가에서 골목길을 따라 사자산(獅子山) 언덕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면 만고루(万古樓)에 도착한다. 만고루에 서면 4,200여 채 전통 가옥의 회색빛 기와가 빽빽이 뒤덮인 리장고성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고성은 밤이 되면 180도 변신한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리장의 고풍스러운 야경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잔잔한 불빛이 고성을 밝힌 밤거리는 여행객을 로맨틱하게 만든다. 물가에 자리한 라이브 BAR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고성의 밤 추억을 만들어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빙천공원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일찍 나선다. 리장 시내에서 28km 떨어진 빙천공원은 옥룡설산의 주봉과 만년설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빙천 케이블카를 20분 정도 타고 해발 4,500m 까지 이동한 후 4,680m에 위치한 빙천 전망대까지 계단을 따라서 40분 정도 걸려 전망대에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서 설산 최고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하루 입장객을 만 명으로 통제하고 있어 성수기 때는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당일 입장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쉬기가 힘들고 두통을 수반하는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에 물을 자주 마시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빙천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버스가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내려온다. 1번 셔틀버스를 타면 람월곡(藍月谷)으로 데려다주는데, 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물에 비친 달빛이 푸르다 하여 골짜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운삼평(雲杉坪)은 옥룡설산 풍경구에 위치한 초습지로 태고의 원시림과 초원, 구름과 안개, 그리고 옥룡설산의 눈덮힌 광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운삼평 케이블카를 타고 옥룡설산 기슭에서 중턱 방향으로 올라가면,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푸른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다.
옥수채(玉水寨)는 ‘옥과 같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티벳의 뵌교와 나시족의 원시 토착 종교가 합쳐 탄생한 동파교의 성지이다. 이곳은 리장 시내로 흘러드는 식수의 발원지로, 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은 여기서 흑룡담을 거쳐 시내로 스며든다.
동파만신원(東巴萬神園)은 이 지역 원주민인 나시족(納西族)의 종교적 성지로, 동파교가 믿는 온갖 신을 모신 곳이다. 만신원 한복판에는 대립과 혼돈에서 화해와 질서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이 계단을 따라 길게 그려져 있다. 맨 아래 있는 칼, 창을 든 괴물이 사라지고 코끼리와 부처님이 나타나면 그곳이 곧 극락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좌우 너른 평원에는 비목(碑木)이 즐비하다. 인간과 자연이 둘로 갈라지기 전, 원시(原始)에 발을 들여놓은 듯 아득하고 야릇한 기운이 온몸에 감돈다.
세계적인 거장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인상리장(印象麗江)은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해발 3,100m에 위치한 야외 공연장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대서사극이다. 리장에 거주하는 10개 소수민족 500명과 말 100필이 등장하는 이 공연은 소수민족의 삶과 사랑, 그들의 신앙을 주제로 소수 부족들의 삶과 문화를 지역밀착형의 신화에 의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만든 6부작이다.
차마고도를 걷고 샹그릴라와 리장을 다녀온 후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보는 공연이라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외세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의 애환 때문인지 공연 속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삶에 쉽게 감정이입 되어 1시간 내내 가슴 뭉클한 진한 감동을 느낀다.
어느새 옥룡설산 위에는 하얗게 달이 떠오른다.
다른 곳 달은 그냥 떠 있는데 여기 달은 마치 걸어 놓은 것 같다.
현명한 고인이 말하길,
풍경에 대하여 더 이상 찬탄하지 말라.
도취하지 말라, 열광하지 말라, 고여 있지 말라.
어떤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면 더 이상 멀리 가지 못함이니.
그렇지만 성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시 눈을 감으니 깊은 절벽 아래 금사강을 따라 흐르는 호도협의 노도 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중도객잔 옥상에 앉아 하염없이 바로 보던 합바설산과 옥룡설산의 초자연적인 설경은 망막에 깊이 각인된다. 샹그릴라 송찬림사의 황금빛 지붕에서 발하는 강렬한 빛은 온몸을 전율시키고, 웅장한 자연에 순응하며 고산에서 억척같이 삶을 일구어나가는 나시족은 차마고도의 보석처럼 빛을 발하니,
나그네는 이 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