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소백산 백룡사




소백산 백룡사

 

 

항상 궁금했다. 하필 아슬아슬한 저 깎아지른 절벽에 세웠을까. 보는 이의 불편함이나 걱정도 아랑곳 하지 않는 곳에 세운 저 건물이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중2처럼 니들이 뭔 상관이냐는 듯 서서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앙선을 타고 소백산 죽령터널을 지나거나 중앙선 열차를 타고 죽령터널을 지날 때마다 그래서 나는 늘 더 궁금했다. 바람도 조롱하며 넘는 절벽 사이에 걸쳐 있는 절을 볼 때마다 한 번 꼭 가봐야지 하면서 벼르고 별렀다.

 

세상의 모든 간이역은 다 착하다나는 이런 생각을 품고 여행을 하곤 했다. 실제로 그랬다. 간이역의 풍경은 그대로 자연이 되어 있었고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착해서 느린 열차의 뒤꽁무니처럼 무심히 쳐다보아도 그냥 좋았다. 소백산 중턱에 일없이 앉아 있는 소백산역도 그랬다. 하루에 몇 번 지나가는 중앙선 열차 중에 겨우 두어 번 밖에 서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느라 소백산역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며 심심하게 앉아 졸고 있었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읽으며 나는 소백산역을 떠올렸고 소백산역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다 나도 대합실 톱밥난로 옆에 앉아 졸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그래 지금은 모두들 /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풍기읍 수철리 나지막한 들판을 걸었다. 죽령터널을 빠져나온 중앙선 기찻길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헛헛하게 놓여 있는 수철리에 소백산역이 있었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나를 반기며 앉아 있었다. 소백산역 마당에는 큰 소나무가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그 뒤로 소백산역을 내려다보고 있는 백룡사가 보였다. 백룡사와 소백산역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서로에게 무심한 듯 딴 곳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한 것처럼 묘한 감정의 구조 안에서 둘은 공존하고 있었다.

 

간이역의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소백산역을 나와 수철리 좁은 산길을 따라 백룡사 길을 올랐다. 길은 예상대로 난코스였다. 굽이굽이 좁고 협소한 길은 좀처럼 마음을 놓이게 하질 않았다. 괜히 오금이 저려 차안의 손잡이만 꽉 움켜쥐고 안절부절 못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자 백룡사 마당에 닿았다. 개 한 마리가 머리만 빠끔 내밀고 쳐다보더니 개집으로 쏙 들어가 누워 버렸다. 절집 개들은 다 순하다더니 백룡사 개님도 그랬다. 깎아지른 절벽에 바위와 바위 사이로 들어선 백룡사는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지만 햇살만은 유난히 법당 마루에 고즈넉하게 내리고 있었다. 불심 깊은 몇몇의 불자들이 올라왔다가 합장을 하고 내려가고 있었다.

 

대웅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말 없는 부처만 나를 반겼다. 저 먼 하늘에서 내려온 햇살은 대웅전을 반쯤 먹고 있었고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대웅전에 갇혀 힘없이 날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벌레를 날려 보내고 다시 앉아 마음속의 속된 일들을 끄집어내어 부처 앞에 부려 놓았다. 그러다가 속절없는 내가 우스워 혼자 키득키득 거렸다. 나는 시시때때로 삶이 괴롭고 인생은 더없는데 부처는 혼자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부처를 나는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꽃다운 시절에 부처를 만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생각해 보면 어찌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백룡사 부처 앞에 서니 덧없는 내가, 덧없는 세월이 반추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대웅전 부처 앞에서 쓸데없는 생각 속을 헤매다가 나왔다.

 

통일신라 때 지은 백룡사는 원래 죽령마루에 있던 절이었다. 한국전쟁 직전 공비토벌을 위해 철거되었다가 1952년 지금 이곳 수철리로 옮겨오면서 문화재인 석조여래좌상을 가져왔다. 석조여래좌상은 상대, 중대, 하대로 되어 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하대석은 없어지고 중대석만 남아 있었다. 그 중대석 뒤로 배 모양의 타원형 주형거신광배를 별석으로 받쳐놓았다. 석조여래좌상의 겉옷은 무릎까지 길게 덮었고 안에 입은 옷은 배에 주름과 띠매듭이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광배는 신라불상의 전성기를 지난 9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인데 눈, , 입은 이곳을 찾아오는 보살님들에게 모두 내어 주었는지 다 닳아 맨질맨질해 지고 밋밋한 형체만 남아 있었다.

 

백룡사에서 바라보니 중앙선 기찻길이 길게 누워 있고 중앙고속도로가 산과 산 사이를 제비처럼 흐르고 있었다. 기어코 와본 백룡사에서 나는 잠시 삶의 고단을 내려놓고 소백산과 소백산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6.17 10:42 수정 2019.06.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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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