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중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 크로아티아 스플릿(Split)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랑한 도시


폴리트비체를 출발한 버스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세운 도시 스플릿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마촐라 산군을 지나자 끝없이 길게 이어진 하얀 돌산을 만난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쭉하게 이어지는 크로아티아의 서부는 북쪽으로 이스트리아, 남쪽으로는 달마티아 지방으로 구분된다. 스플릿은 수도인 자그레브 다음으로 크로아티아 내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달마티아 지역에서 유명한 대도시이다.

 

길이 약 650km의 디나르 알프스 산맥은 이스트리아반도에서 남동 방향의 알바니아까지 뻗은 석회암 산계로, 알프스같이 험준하지는 않으며 고원상의 산지가 널리 전개되어 있다. 산정에는 아드리아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을 이용한 풍력 발전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짙은 녹음에 물기를 머금은 산들 대신 작은 덤불만 듬성듬성 자라는 바위산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드디어 저 멀리 산자락 끝에 바다가 보인다. 바로 아드리아해다. 저 바다에 연해있는 곳이 달마티아의 중심 도시 스플릿이다. 도시로 들어가는 터널 주위로 하얀 눈이 내린 듯한 돌산이 좌우로 길게 이어져있다. 마치 뜬금없이 나타난 수묵화처럼 검은색과 흰색, 회색으로만 그려진 바위산이 떡 하니 버티고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프릿의 랜드 마크 디오클레티안 궁. 과거 영화롭던 시절 로마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기 고향에 세운 궁전이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로마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기 고향인 이곳에 10년 걸려 305년에 축성한 궁이다. 구시가 그라드 지역에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로마 유적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가로 215m, 세로 181m 크기로 지어진 사각형의 성벽 속에는 궁전과 함께 대성당, 광장, 신전, 박물관, 수많은 레스토랑과 바, 주택들이 가득 차 있다. 성 밖으로 연결되는 동, , , 4개의 문이 있다. 남문은 궁이 지어질 때는 바다와 접해있었으나 지금은 매립되어 카페 거리와 상가가 들어서있다.

 

스프릿의 천민 출신으로 로마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이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높이 25m의 성벽이 허락한 동서남북의 네 개 관문을 찾아야 한다. '청동의 문'으로 불리는 남문은 바다, 서문은 쇼핑가, 동문은 재래시장과 연결되고 북문은 녹음이 우거진 공원으로 이어진다.

 

남문과 성의 열주광장 사이에 있는 지하 궁전은 원래 1층으로 주로 포도주와 곡물 창고로 사용되었는데, 그동안 매몰되어 땅속에 있다가가 1900년대 중반에 발견되었다. 바로 위가 황제 주거지이고, 지금은 쇼핑 거리다.

 

지하 궁전을 지나면 열주광장이 나온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황제 알현실로 열주광장의 열주는 이집트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다. 거대한 돔 형태로 지어진 공간의 지붕은 하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곳에서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음악을 부르는 남성 아카펠라의 중후한 음성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로마인들이 이곳을 떠나며 수백 년간 방치되었던 이 요새 궁전 속으로 인근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숨어 들어와 터전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런 이후로 비잔틴 제국, 크로아티아, 베네치아, 오스트리아 등의 다양한 국가들로 주인이 바뀌어 가며 로마 유적지 위로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 르네상스와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더해지고, 개조도 거치면서 이 궁전이 존재해 온 1,7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성벽 안에 기록되어 있다.

 

궁전 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열주광장 계단에 앉아 있으면 전 세계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광장은 밤이면 노천 카페로 변신하며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등 뒤로 이집트에서 건너온 스핑크스가 여행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열주광장 앞 계단의 빨간 방석에 앉는 순간 카페 손님으로 신분이 변한다.

 


 

광장 옆의 성 도미니우스 성당은 서기 699년에 세워졌는데 팔각형의 종탑은 15세기경에 추가로 건축되었다. 기독교 초기 건축과 로마시대 건축 양식이 접목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에 속하며, '죽기 전에 봐야할 가장 멋진 건축물' 중 하나이다.


7세기경 라벤나 주교는 황제에게 죽임을 당한 도미니우스를 기리기 위해 황제의 묘가 있던 이곳에 성당을 짓는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천정의 돔을 받치고 있는 성당 안 어디엔가 황제와 왕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성 도미니우스 성당 입구. 성당 안의 종탑으로 올라가면 스플릿 시내와 아드리아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숨 가쁜 계단 꼭대기 종탑에 서면 좁고 구불구불한 구시가의 붉은 지붕과 아드리아해의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나란히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철 계단은 한사람만이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다. 궁전 내부를 가득 메우는 활기와 북적거림, 동시에 존재하는 골목골목의 정체 모를 여유로움이 합쳐지며 과연 어떤 광경을 그려낼까 궁금하다.

 

종루의 창문 사이로 서서히 전개되는 스플릿의 풍광은 가히 장관이다. 스플릿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는데 두 곳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흑과 백이다. 거대한 성벽 같은 산이 병풍같이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다. 이스트리아반도에서 출발하여 아드리아해를 따라 알바니아까지 이어지는 디나르 알프스산맥이다.

 

종루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 아래 붉은 지붕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항구에서 페리를 타면 아드리아해 건너 이탈리아 베네치아와는 2시간 거리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흐바르섬이나 고깔 모양의 해변이 있는 블라치섬, 마르코폴로의 고향 코르츌라섬으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의 관광 수도라고 불린다.



하얀 요트 수천척이 항구를 메우고 있는 요트 여행의 천국이기도 하다. 요트를 타고 두브로브니크로와 자다르로 갈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제2도시로 달마티안 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 보듬고 가려도 북적대는 도시의 뒷골목에는 슬픈 얼굴이 담겨 있다. 수천 년간 이 땅을 스쳐간 다양한 문화와 왕조의 흔적이 차곡히 쌓여있는 역사의 도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고, 1990년대에는 5년 동안이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이 쌓인 질곡의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종탑에서 바라본 시가지는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긴다. 화려함과 소박함을 모두 지닌 것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

 

성벽 속 작은 마을을 이모저모 훔쳐보는 일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의 현재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는 창문 몇 개만 뚫려 있다. 강렬한 아드리아의 햇살이 창을 넘어 궁 안으로 들어온다. 창살 사이로 아드리아해로 부터 불어오는 미풍이 들어와 한낮의 더위를 날려 보낸다.


궁 안에는 2천명의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다. 세월의 떼가 잔뜩 묻은 주황색 지붕의 집들 사이사이에는 하얀 빨래가 널려 있고, 그 아래로 여행객들이 몰려다닌다.

 

성 안에 현지인들이 직접 사는 모습은 동유럽 여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다.



일명 황금의 문이라 불리는 북문에는 늠름하고 잘 생긴 로마 병사들이 아직도 성을 지키고 있다. 북문으로 나오면 바로 만나는 종루에 올라가면 스프릿 풍광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크로아티아 종교지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풍문 때문에 유독 엄지만 반질반질하다.

 

 

나로드니 광장은 쇼핑가가 있는 서쪽문 '철의 문'과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며 만남의 장소이다. ‘나로드니'인민 광장'이라는 뜻이다. 바닥은 흰 대리석으로 포장되었으며 주위에는 오픈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오늘은 어제 마신 크로아티아 맥주 카를로바츠코 대신 오쥬스코로 주문한다. 알콜 도수가 낮은 편이라 한낮에 갈증을 식히기에는 그만이다.



나로드니 광장 카페. 뜨거운 아드리아의 햇살을 피하기 위해 ​잠시 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광장의 시청사. 15세기에 건축된 시청건물인데  3개의 고딕 양식 아치로 장식되었고, 지금은 민속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아드리아해를 따라 올라가면 세계문화유산인 고대도시 트로기르를 만날 수 있다. 스플릿에서 여정을 끝내고 트로기르로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하얀 바위산이 트로기르까지 따라 온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면 저 능선에 올라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면서 스플릿에서 트로기르까지 마루금을 따라 종주하고 싶다.



 

스플릿에서 트로기르 까지 30분 동안 계속 이어지는 하얀 바위산의 산그리메.

 


바다 너머로 트로기르가 보이기 시작한다. 30분 거리의 스플릿과는 오랫동안 경쟁해 온 항구 도시이다. 그래서 두 도시를 '가시돋힌 두 송이 장미'로 비유하기도 한다.


트로기르는 아드리아해 건너 베네치아인들의 침입으로 항상 손상을 입어왔던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주요 건축물들은 물론, 사소한 골목과 가정집 건물들까지도 지난날의 정취를 그대로 풍기고 있다. 도시가 위태로운 와중에도 쉬지 않고 역사적인 예술가를 배출하고 문화를 중요시했던 작지만 큰 도시 트로기르. 이런 모든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다.

 

트로기르 입구에 있는 시장. 잘 나가던 중세 도시답게 활기가 넘친다.

 

 

숙소인 트로기르 해안가에 위치한 호텔은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환상적 뷰를 볼 수 있었던 호텔이다. 바닷가 호텔 산책로에서 아드리아해의 석양과 일출 두 가지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작고 아담한 방갈로 숙소의 창을 통해 해조음을 들으면서 넉넉한 아드리아해를 느낄 수 있었던 곳. 숙소 바로 앞 해변은 물결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다.

 

호텔 테라스에서 3인조 밴드가 귀에 익은 팝송을 들려준다. 중년 남성이 부르는 노래 소리는 아드리아해 밤하늘을 맴돌다 물결 속으로 사라진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트로기르. 이곳에 숙소를 잡은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트로기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기에



트로기르의 밤은 아드리아의 바다 속으로 서서히 잠겨든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9.03 09:53 수정 2019.09.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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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