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강화도 전등사




강화도 전등사


 

그러므로 마음을 굶겨라

 

앎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통해 밥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문학동네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출판사 문학동네가 아니라 자연부락 문학동네 말이다. 문학동네에는 문학이라는 앎 하나씩 좌판에 내놓고 밥벌이를 하고 있다. 누구는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고 누구는 가치라는 포장지로 싸서 팔고 또 누구는 예술이라는 브랜드를 붙여 판다. 나처럼 장사를 못해 언저리로 나 앉은 비루한 문인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좋은 물건도 아니면서 장사를 꽤 잘해 돈을 많이 번 문인도 있다. 이도 저도 꼴 보기 싫은 문인은 좌판만 벌려 놓고 평상에 앉아 신김치 쪼가리에 막걸리나 마시면서 이백 흉내나 낸다. 눈꼴신 꼴을 못 보는 이는 문인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도인행세를 하며 인생을 달관한척 하다가 굶어 죽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판이나 학판이나 도판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다. 문학으로 밥 빌어먹고 사는 동네나 학문을 팔아야 먹고 사는 동네나 도를 닦아야만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동네나 더럽고 치사하고 개판인건 확실하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로 시끄러웠던 여름 내내 그들의 언어는 비루하고 싸움은 지리멸렬했다. 문학의 흔한 패턴 하나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을 두고서 서로 잘났다고 싸우다가 여름이 다 갔다. 오십보백보다. 그래서 문학이든 학문이든 도든 깨달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거지발싸개다. 입에 밥 들어갈 정도만 되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언제나 화는 절제 없는 욕망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덮친다. 그러니까 욕망도 내 자신이요 그 욕망에게 한방 먹는 찌질이도 내 자신이다. 그러니 마음을 굶겨야 한다.

 

 



한바탕 휩쓸고 간 문판의 소란을 피해 전등사를 찾아갔다. 나야 원래 문판의 메이저가 아니니 소동 같은 건 하등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문판에서 밥 먹고 사는 것도 죄라면 죄다. 열심히 쓴 작품을 사겠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없어도 내 좋아 하는 일이니 문판을 떠나지 못하는 심정도 복잡하긴 매 한가지다. 이런 심란함에 처해 있는 내 자신을 구해야 할 때는 떠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강화도로 흘렀다. 강화도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강화도에 전등사가 거기 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전등사를 찾아 떠났다. 이번 생엔 문판에서 도를 이루긴 글렀으니 목구멍에 풀칠이나 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선 마음을 굶겨야 한다. 비우든 굶기든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떠난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거기 있는 전등사로 떠났다.

 

전등사, 이야기의 절반은 역사다.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의 근원을 갖고 있는 곳이 전등사다. 역사의 완전성을 갈구하는 이들의 무의식은 강화도에서 빛나고 전등사에서 무참하게 깨진다. 우주라는 플랫폼에서 하필 강화도 전등사의 부처만 유별했는지 나는 모른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나는 늘 하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녔다. 나는 나의 이런 논리가 싫다. 이 세상에 하필이 어디 있을까. 인생이 고단해서다.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 때문이다. 아니다. 지나치게 한쪽만을 편애해서다. 그도 아니다. 이 문제는 이번 생에 풀기는 틀렸다. 다음 생에나 풀어야 할까보다. 옷을 홀딱 벗고 벌을 서고 있는 전등사 대웅전 처마 아래 전설이 된 목각여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전등사에 올 때마다 나는 한 남자를 생각했다. 사십 여 년 전에 우주로 돌아간 한 남자는 키가 매우 컸다. 깊이 눌러쓴 중절모 안에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숨기고 있었고 손에 들린 인텔리겐치아의 낡은 가방 안에는 도를 묻는 때 묻은 몇 권의 서적과 금강경이 있었다. 한 남자는 내게 말했다. 강화도 전등사에는 사람의 길이 있다고, 자연의 길이 있으며, 그 길을 따라 가는 이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한 남자와 강화도 전등사를 오고 싶었지만 올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해마다 혼자서 전등사를 찾아온다. 하필 전등사의 햇살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이 여름에 말이다. 한 남자가 떠나고 나는 그 남자가 떠난 나이에 도달했다. 소란한 세상은 여전하고 나는 한 남자가 그리워 전등사의 아침 속을 거닐고 또 거닐었다.

    

등불을 붙여 부처의 마음을 전하는 전등사에서 한 남자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은 속절없이 깊어가고 인간의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움이여, 사라지고 말지어다. 저기 우주 어딘가에 빈곳이 있어 나는 한 남자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된 곳으로 그리움은 마침내 완성되고 말 것이다. 나는 믿는다. 한 남자를 향한 나의 그리움을 믿듯이 부처의 속절없는 그리움도 믿는다. 강화도 전등사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름 없는 보살들의 애처롭고 따뜻한 삶도 믿는다.

 

바로 나, 명쾌하거나 멍청하거나

 

구구절절 옳다. 전등사의 이름도 옳고 온갖 풍파를 이겨낸 시간도 옳다. 서울 코앞에 있는 것도 옳고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조롱하는 것도 옳다. 그러나 나는 전등사에서 마음의 고요를 얻었고 고요는 내게서 마음을 얻었으니 우린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친구다. 그리우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친구를 위해 전등사는 길을 비워놓고 있을 것이다. 길이 거기 있으므로 나는 명쾌하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한 나를 그 길 위에 부려놓을 것이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9.16 09:33 수정 2019.09.2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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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