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소확행 소고

이태상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생각 좀 해보자. 2013년에 나온 미국 작가 짐 해리슨 (Jim Harrison)의 소설집 ‘The River Swimmer’에 수록된 중편 소설 다른 나라(The Land of Unlikeness)’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은 7가지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1. 밖으로 나가 많이 걸으라.

2. 음식을 가려 먹으라.

3. 몸으로 못하면 눈으로라도 즐겨라.

4. 자신에 대한 유머감각을 갖고 매사를 웃어 넘겨라.

5.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생각만 하라.

6. 욕심 많고 떫은 인간들을 외면하라.

7. 스스로를 성찰하는 삶을 살라.

 

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안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과 구차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디 루즈벨트(1858-1919)가 영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스토리라고 극찬한 바 있는 영국의 자연주의 박물학자 윌리엄 헨리 허드슨(William Henry Hudson 1841-1922)엘 옴부 (ElOmbu) : 남미에서 자라는 나무이야기에 이런 대사가 있다.

 

어서 오게. 친구 니간드로. 이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 얘기 좀 나누세. 이 오래된 옴부나무 잎에는 정치도, 야심도, 모사도, 적의도, 어떤 악감정도 없지 않은가. 이 옴부나무 잎들은 우리의 월계관이지. 도시 생활을 모르는 자네는 행복한 사람이야. 나도 자네처럼 초가지붕 밑에서 고요한 평원의 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한 때는 나도 좋은 옷을 입고 금으로 된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큰 집에 살면서 종들을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었네. 꺾은 꽃마다 내 손을 찌르는 가시로 변했지. 내 형편이 좋을 때 나를 따르던 자들은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자 다 날 버리고 떠나버렸어. 그래, 지금 가난하지만 이 가난을 난 소중한 유산으로 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네. 이 부족함으로 평화가 있을 것이니

 

영국의 평론가 윌리엄 해즐릿(William Hazlitt 1778-1830)개인의 신분에 대한 논고란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생각에 세상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어떤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잘 달리는 말들과 사냥개들, 훌륭한 마차와 옷 등을 갖고 싶어 그런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많이 본다. 그런데 나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빛나기 보다는 무엇이든 남보다 더 잘함으로 뛰어나고 싶을 따름이다. 힘을 좋아하지만 재산의 힘은 아니다. 뜀박질로 말할 것 같으면 사냥개 그레이 하운드보다 더 빨리 뛰어보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빨리 달리는 그레이하운드를 갖는다는 일이라면 나는 부끄러워할 것이다. 인격적인 신분의 성분을 내 소유물로 옮겨 전이시킬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 그들이 소유하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의 값이 매겨지는데 만족해한다.’

 

서양 속담에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부자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다라는 말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너무 적게 가진 자가 아니고 더 탐내는 자가 빈자 (貧者)’ 라고 설파하지 않았나.

 

얼마 전 영국 신문에서 보니 린 러트란드는 높이 265백 피트의 안나푸르나 제일봉을 오르기 위해 일곱 번째 히말라야 등정에 오를 예정이라고 했다. ‘난 기록 같은 것엔 관심 없어요. 산에서는 자신과 경쟁할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남자들에게는 산은 정복의 대상이지만 린에게는 산을 오르는 기쁨과 즐거움, 그 경험 자체가 중요하고 전부다. 무섭고 춥고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의 최선이 나타난다고 린은 말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었던 지각을 뚫고 솟아나는 풀잎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노래하듯 가슴 힘차게 뛰는 싱그러운 숨결 따라 사나운 비바람과 눈사태도 무서워하지 않고 린은 높이 산을 오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는 세상을 물 흘러가듯 살라는 말씀이었다. 흐르다가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바위를 만나거든 바위 밑을 뚫거나 돌아서 굽이굽이 흐르는 유수와 같이 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세상살이가 등산하는 것과 같은데 산꼭대기를 향해 일로매진, 한눈 한 번 안 팔면서 남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보려고 사력을 다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산 오르는 길 한 걸음 한 걸음을 마음껏 한껏 유감없이 즐기면서 살라는 말씀이었다.

 

날씨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달라지는 풍경 속에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산 속에 피는 꽃향기에 취하고,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에 손발도 적셔가면서 뛰노는 노루 사슴과 벗하다 보면, 또 비온 뒤에 하늘에 무지개가 서고, 날이 저물어 어두워질수록 총총하게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온 세상천지가 한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황홀지경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얼마나 멀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무엇을 보느냐가, 얼마나 무엇을 보느냐보다 얼마나 무엇을 배우느냐가, 얼마나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얼마나 배운 대로 사느냐가 문제이며 해답이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9.30 10:11 수정 2019.09.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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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