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큰 그림에서 보자(III) : 영생불멸 바람직한가

이태상

 


이집트 격언에 인생은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란 말이 있지만 무엇보다 인생은 모험이고, 게다가 사랑은 모험 중에 모험이다.

 

1987년 만들어진 독일 영화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가 있다. 이차대전에 폐허가 된 베를린을 배경으로 찍은 이 영화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동화로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천사들의 이야기다. 독일의 시인 라이네 마리아 릴케의 시로부터 얻은 영감에 의한 착상에서 빔 벤더스와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피터 한케가 합작한 이 작품은 인간의 육체적인 쾌락과 죽음을 맛보기 위해 영생불멸을 포기하는 영혼의 이야기다.

 

이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인 아니 영적인 삶을 살펴보러 지상에 내려온 천사들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를 찍는 카메라에만 잡힐 뿐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소리 없이 벽을 뚫고 지나가기도 하고 자동차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해산하는 산모의 공포심을 덜어주는가 하면 임종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등 사람들에게 위안과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천사들이 인간의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못하게 하거나 누가 자살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이들은 단지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할 임무를 띠고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인간을 도울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

 

이들 가운데 수() 천사 다미엘을 스위스계 독일 배우 브루노 간쯔가 연기한다. 커피 맛을 본다든가 거짓말을 하며 나쁜 짓을 해보고 싶어 하는 그 자신의 순전히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를 혐오하게 된다. 그가 여자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드디어 그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여배우 솔바 도마틴이 분장한 매혹적인 서커스 공중곡예사 소녀를 서커스 공연이 끝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트레일러를 따라가 소녀의 고독한 독백을 엿듣는가 하면 록앤롤 클럽에 가서 혼자 황홀하게 춤추는 소녀를 엿보기도 한다. 이렇게 영원무궁토록 살아있으면서도 단 한 순간도 인간처럼 진짜로 살아보지 못하는 차원 높은 바보 역할을 간쯔는 희극적으로 완벽하도록 훌륭하게 열연한다.

 

이 우화시(寓話詩)적인 영화에는 기독교 신화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문화윤리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이들, 말하자면 초교파 천사들은 아름답고 착한 말이나 행동은 어떤 것이든 하나도 빼지 않고 다 기록한다. 이상야릇하게 특이한 것까지. 예를 들면 비가 퍼붓는데 한 여인이 폈던 우산을 접고 흠뻑 빗물에 젖는 기행 같은 것도 이들 천사의 눈엔 악마나 마귀란 존재하지 않는다. 슬픈 인간의 불행과 죽어야 할 운명이 있을 따름인데 이 두 가지 조건과 상황이 이들에겐 천국의 안식보다 한없이 더 매력적이다.

 

한 어린 아이가 왜 자기가 이 우주에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고, 간쯔는 자신이 쓰고 있는 저널 일지를 큰 소리로 읽는다. 본능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이 어린 아이는 의문을 풀고 알게 된다. 참으로 삶의 의미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맛보는데 있다는 것을.

 

마침내 수천사 다미엘은 더 이상 한 순간도 영원불멸을 견딜 수 없어 문자 그대로 벽을 뚫고 인간이 된다. 그러면서 이 흑백영화는 인간의 비죤 총천연색 칼러로 바뀐다. 다미엘과 서커스 소녀, 이 두 연인이 결합하는 순간 인간의 모든 수사적인 꽃들이 피어나고 로켓들이 폭발한다.

 

1953년 개봉된 미국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가 있었는데 이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영원에서 지상으로(From Eternity to Here)'라 해도 좋을 성 싶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12 09:27 수정 2019.10.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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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