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가을 노래

이태상

 


행복한 항심(恒心)은 호기심이다. (The constant happiness is curiosity.”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현재 88세의 캐나다 단편소설작가 앨리스 먼로(Alice Munro)의 말이다.

 

몇 년 전 대법원은 여성을 비하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서울 동부지부 유모(당시 46)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발표했다. 유 부장 판사는 60대 여성 중인을 심문하던 중 진술이 불명확하게 들리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막말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 냉철히 한번 생각 좀 해보자. ‘죽어야 할사람은 늙은이가 아니고 호기심을 잃어버린 산 송장이 아닐까. 동심을 잃어버린 모든 어린이와 꿈이 없는 청소년 그리고 ‘joie de vivre’ 삶의 희열을 못 느끼는 중장년들 말이다. 노래를 잃어버린 새, 카나리아는 카나리아가 아니라고 하듯이, 모든 것 모든 일에 대해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처럼 매사에 호기심에 찬 동심에는 자연적인 배려심과 직관력도 있는 것 같다. 앞에 언급한 유 부장판사의 직설법과는 전혀 다른 직관의 직설법의 한 예를 들어보자. 지난 5년 동안 자기를 밤낮으로 늘 돌봐주신 외할머니가 하루는 내가 이제 늙어서 힘이 드는구나.” 한탄하시는 소리를 듣고 다섯 살짜리 외손자가 할머니, 걱정 마. 할머니는 버리지 않을 거야.” 하더란다. 막내 딸네가 최근 뉴욕에서 뉴저지로 이사 오면서 오래된 물건들 버리는 것을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또 하루는 한국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예비학교(Pre-school)에서 한국말이 서툰 한 급우가 방귀가 뭐냐고 묻자 ‘burping at the bottom (아랫도리로 트림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우리 외손자의 말을 옆에서 듣고 선생님이 배꼽을 잡으셨다고 한다.

 

내 세 딸들이 어렸을 때 애들 잠들 때까지 읽어주던 동화 가운데 조그만 까만 수탉이야기가 있다. 꼬꼬댁 꼬끼오 하고 조그만 수탉 한 마리가 아침이면 닭장 위에 올라서서 울었다. 때로는 꼭꺄독 꼭꾜 하기도 했지. 제 목청이 얼마나 좋은가 뽐내면서. 그렇지만 이 조그만 수탉은 제가 살고 있는 닭장이 구질구질하고 지겨워졌다. 그는 제 몸이 새까만 대신 번쩍 번쩍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이었으면 했고 좁은 닭장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다. 꼬꼬댁 꼭꼭 하고 울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하루는 큰 맘 먹고 닭장을 떠나 세상 구경하러 나섰다. 얼마만큼 가다보니 상점들이 많은 어느 마을이 나왔다. 한 상점을 들여다보니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물건들이 상점 안에 가극 차 있었다. 그는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뒤쪽에 있는 큰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아저씨를 보자 그는 말했다.

 

아저씨, 저는 조그만 까만 수탉 신세가 싫어요. 저도 아주 근사하게 황금빛이 되어 세상을 두루 보고 싶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네가 정 그렇다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지. , 있고말고. 너 이 마룻바닥에 금가루 보이지. , 그럼, 이 바닥에 네 몸을 뒹굴리거라. 그러면 네 몸이 햇빛처럼 황금빛이 될 테니.”

 

주인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그는 신이 나서 금가루 속에 막 뒹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서 정말 황금빛이 날 때까지. 이때 마침 이 마을 성당 신부님이 성당의 석탑 꼭대기에 세울 바람개비를 주문하러 상점에 들르셨다.

 

신부님, 신부님이 원하시는 물건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가게 주인아저씨는 이 조그만 수탉을 가리켰다. “꼬끼오 댁 꼬끼오하고 그는 좋아서 목청껏 외쳤다. 곧 이 수탉은 성당의 탑 꼭대기에 왕자처럼 올라앉아 세상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혼자인 수탉은 외로워졌다. 이것이 황금빛으로 근사하게 높이 올라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대가였던 것이다.

 

일찍부터 가을바람이 났던 것일까. 매년 가을이면 몹시 감상적이 되어 소년시절에 지어 부른

나의 가을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낙엽이 진다.

타향살이 나그네 가슴 속에 낙엽이 진다.

그리움에 지쳐 시퍼렇게 멍든 가슴 속에 노랗게 빨갛게

단풍든 생각들이. 으스스 소슬바람에 우수수 흩날린다.

임금도 거지도 공주도 갈보도 내 부모 형제 벗들도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들 삶의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나도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거두겠지.

그러기 전에 내 마음의 고향찾아가 영원한 나의 님

품에 안기리라. 엄마 품에 안겨 고이 잠드는 애기 같이.

우리가 꿈꾸던 잠에서 깨어날 때 꿈에서도 깨어나듯이

우리가 꿈꾸던 삶에서 깨어날 때 삶의 꿈에서도 깨어나

삶이 정말 또 하나의 꿈이었음을 깨달아 알게 되겠지.

그렇다면 우리 살아 숨 쉬며 꿈꾸는 동안 새처럼 노래

불러 산천초목의 춤바람이라도 불어 일으켜 볼거나.

그렇다면 우리 살아 숨 쉬며 꿈꾸는 동안 개구리처럼

울어 세상에서 보기 싫고 더러운 것들 하늘의 눈물로

하나도 남김없이 죄다 깨끗하게 씻어 없애버릴거나.

그렇다면 우리 살아 숨 쉬며 꿈꾸는 동안 달팽이처럼

한 치 두 치 하늘의 높이와 땅의 크기를 재어 볼거나.

그렇다면 우리 살아 숨 쉬며 꿈꾸는 동안 저 소라처럼

모든 삶이 출렁이는 바닷소리에 귀 기우려 볼거나.

아니야 그도 저도 말고 차라리 우리 모두 저 벌처럼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찾아다니며 사랑의 꿀

부지런히 모으면서 꿀같이 달콤한 꿈을 꾸어볼거나.


[이태상] 미국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편집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1.05 08:38 수정 2020.09.1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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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