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도가'

이충무공전서에 한자로 기록

김천택의 청구영언에는 한글 시조로

한산도 수루에 현판으로 제작

한산도 수루


한산도 제승당 수루에 가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도가'가 걸려 있다.


한산도가 초서



한산도가 閑山島歌

한산도월명야 상수루 閑山島月明夜 上戍樓
무대도 심수시  撫大刀 深愁時
하처 일성강적 갱첨수 何處  一聲羌笛 更添愁
이순신 李舜臣  일심 一心

한산도 수루에 걸려 있는 한자 초서로 된 이 한산도가는 정조 때 집대성한 이충무공전서(1795)에 활자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여해고전연구소장인 노승석 박사가 이순신 장군의 친필 중에서 집자(集字)를 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이를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은 다음과 같이 직역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올라
큰 칼 어루만지며 깊은 시름 하는 때에
어디서 한 가락 오랑캐 피리소리 수심을 더하네. 
-이봉수  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글로 된 시조 한산도가 역시 수루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노산 이은상이 이충무공전서의 한문 원본과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참조하여 시조 운율에 맞게 재창작한 것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노산 이은상 -

노산 이은상의 시조 이전에 김천택의 시조집 '청구영언'(1728)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산셤 달발근 밤의 수루에 혼자 안자
큰 칼 녀픠 차고 기픈 시람 하난 적의
어듸셔 일성호가(一聲胡笳)난 남의 애랄 긋나니   
- 김천택, 청구영언 -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모든 기록을 한자로 남겼다. 정조 때 만든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 기록을 활자체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나오는 시조 한산도가는 이순신 사후에 한글로 만든 것이다. 이충무공전서 원본 한산도가를 이봉수 소장이 번역한 것과 청구영언에 나오는 한산도가의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시조문학은 고려 중기에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 완성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서 근무하던 시기에도 분명히 시조창을 읊으며 시름을 달랬을 것이다.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나오는 한산도가와 비슷한 우리말로 시조창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루현판 및 주렴, 한산도가 기



한산도가(閑山島歌) 현판을 만들어 수루에 붙인 내용의 기문(記文)이 한산도 수루 한켠에 조그맣게 걸려 있다. 공직자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는 제승당관리소 김상영 소장과, 고증을 맡은 여해고전연구소장 노승석 박사의 공로가 크다.

앞줄 오른쪽 부터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노승석 박사, 감상영 소장, 여의도 이순신아카데미 멤버들

https://youtu.be/E6FvbojulYs

<한산도가, 천안향교>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18.07.21 17:45 수정 2018.07.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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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