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산행 금주령 유감

개인이 판단할 개인의 자유

기자는 워낙 산을 좋아하다보니 국내 100대 명산을 모두 올랐고, 백두대간 종주도 마쳤으며, 1년에 한 번씩 해외 원정 산행도 즐기는 산 마니아다. 이렇게 산을 좋아하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여섯 군데 산행 모임에서 산행대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요즘 산행 모임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대장님. 오늘 산행 때 막걸리 한 병 가져가면 안 되나요?’ 산행 때마다 회원들이 불퉁한 표정으로 기자한테 던지는 질문이자 불만이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아직도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통과된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 때문에 이제 국내 모든 산에서는 음주를 할 수 없다. 탐방로는 물론이고 대피소에서도 안 된다. 자연공원법이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 지질공원을 포함하므로 국토의 모든 산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1차 적발되면 5만원, 2차 이후는 10만원씩 과태료를 내야 한다.

물론 산에서의 음주 단속은 긍정적인 면도 일부 있다. 산에서 분별없이 술판을 벌여 소란을 일으키는 일부 몰상식한 등산객을 단속하여 건전한 산행문화를 정립하고,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극소수의 등산객을 단속하기 위해 일률적으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는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운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음주사고가 그만큼 많았다는 해석인데, 통계를 분석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 등산 전문지 월간 산은 환경부를 인용해 최근 6년 동안 국립공원에서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가 모두 64건으로, 국립공원 안전사고의 5%였다고 보도했다. 5%를 줄이려고 산행 중 금주령이 내려진 것이다. 해외 원정 산행도 많이 가보았지만 산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나라는 코란을 실천하는 무슬림 국가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다.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에서 산은 국민들이 산행과 트레킹을 통해 힐링을 즐기고 체력을 증진하며, 도전 정신을 키우고 모험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2015년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 달에 한번 이상 산에 오르는 국내 등산 인구는 1,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트레킹 인구 약 1,000만 명을 더하면 여가 활동으로 산자락에 드는 국민은 무려 2,300만 명을 헤아린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많은 국민들이 산을 즐기며 생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너무 즉흥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수많은 소시민들이 산에 올라 자연의 품속에서 풍광을 즐기며 막걸리 한 잔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가 과연 과태료까지 물려야 할 범죄 행위인가?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희열을 느끼는 감정까지 규제 대상으로 묶는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현실인가?



모처럼 하루 산과 자연 속에서 산행을 하면서 소박한 음주를 즐기며 일상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는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행정기관의 이번 조치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산행 중 과도한 음주 행위는 신체에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없다. 이런 문제는 성숙한 시민 의식과 건전한 등산 문화가 만들어가는 것이지 국가 귄력이 법으로 강제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이번에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한 번도 국민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이번 조치는 나라가 국민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라도 막아야 된다는 극히 권위적이면서도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 정책의 발로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우리도 이제 시민 의식이 많이 성숙했고, 등산 문화도 많이 건전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율보다 통제를 앞세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산장이자 국내 산악인들의 정신적 고향인 북한산 백운산장을 폐쇄하려는 국립공원의 처사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백운산장은 90년 동안 한 결 같이 산악인들에게 고향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해 온 산악문화유산이다. 그동안 40여 년간 산장을 지켜온 산장지기부부를 몰아내고 국립공원에 귀속시키고자 무리하게 행정력을 동원하는 바람에 지금 백운산장 귀속반대 서명운동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개인이 판단할 개인의 자유에 대하여 국가 권력이 과도하게 관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 묻고 싶다. 산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산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된다.

과연 국민은 벌금의 의무만 있고, 국가는 책임의 의무가 없는 것인가.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8.07.26 11:20 수정 2018.08.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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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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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봉님 (2018.08.07 10:43) 
금주령유감
너무 반갑습니다. 선배님 모시고 설악산, 계방산 등 즐겁게 산행했었는데..금주령 계도기간이 끝나는 9월부터 전국 산에서 아름다운 산야를 즐기러 간 많은 산객들이 국립공원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정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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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구님 (2018.08.06 12:18) 
댓글
여계봉 기자님 축하드립니다. 산에 가서 적당한? 양의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위법이 될수없지요. 저는 꼭 막걸리 한병을 가지고 가는데 갈증날때 한잔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고 피곤했던 몸이 모두 풀려 피로회복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무지막지하게 마셔댄다면 곤란하겠지만 정상주 한잔은 보약 중에 보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자님 글을 멋지게 작성하셨네요.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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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봉님 (2018.08.04 08:19) 
제재보다 자율로..
의견 감사합니다. 청와대 청원운동도 진행되고 있으니 좋은 결과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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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익님 (2018.07.26 12:57) 
탁상공론
일반 국민이 지킬 수 있는 법을 맞들어야 하는데, 어길 수 밖에 없는 법을 만들어 스트레스를 준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고 탁상공론이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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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님 (2018.07.26 12:30) 
옳소
당연히 개인이 책임질 일을 개인에게 맡깁시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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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