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눈물과 웃음, 미녀와 추녀

이태상

 


우리 잠시 영어로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 그리고 웃는 하이에나(Laughing Hyenan)’라는 말의 뜻을 음미해보지,

 

땅거미 질 때 이집트 나일강가에 승냥이 비슷한 들개 하이에나와 악어가 만나 서로 인사(人事) 아닌 수사(獸事)말을 나누었다.

 

요즘 어떻습니까, 악어 씨?”

 

하이에나가 묻자 악어가 대답했다.

 

좋지 아니하오이다. 때때로 고통과 슬픔에 복받쳐 내가 울기라도 하면 남들이 저건 악어가 거짓으로 흘리는 위선의 눈물일 뿐이라고 하니 내 기분이 여간 상하지 않는 게 아니라오.”

 

그러자 하이에나가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고통과 슬픔을 말하지만 잠시 내 말도 좀 들어보시오.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경이로운 기적에 감탄, 기쁨에 넘쳐 온 자연과 함께 내가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웃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저건 실컷 배부르게 먹이 많이 잡아먹고 좋아서 웃는 하이에나의 잔악한 웃음소리일 뿐이라고 한다오.”

 

이것은 칼릴 지브란의 방랑자(The Wanderer)’ 나오는 우화 중에 하나인 눈물과 웃음이야기다.

 

젊은 날 서울에서 잠시 영자 신문기자로 내가 직접 취재 보도한 사건이 있었다. 1966427일자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에 실린 짤막한 영문기사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악어의 눈물이 술 취한 한 젊은이를 철창 속에 집어넣었다. 지난 일요일 인천시 숭의동 255번지에 사는 27세의 안종일 씨가 서울 창경원 동물원에 놀러 갔다가 술에 취해 장난으로 동물원에 있는 악어에게 벽돌을 한 장 집어 던지려 하자 이 필리핀 태생으로 신장 6피트, 나이 70세의 악어 포로수스 씨는 그 전설적인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안 씨는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서울 즉결 심판에 회부되었고 즉심의 최만항 판사는 대한민국 형법 366정부재산손괴죄를 적용, 벌금형을 내렸다. 그러나 안 씨는 벌금 1.000원을 물 돈이 없어 벌금 대신 닷새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씨가 집어던진 벽돌을 맞아 악어의 머리가 다쳤다고 경찰조서에 쓰여 있었으나 창경원 동물원 직원 말로는 안 씨가 벽돌을 집어던지려는 순간 경비원의 제지로 실제로 악어를 해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편 안 씨는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아무런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문제의 포로수스 씨는 1958414일 필리핀의 한 실업가가 기증한 것으로 (그때까지) 창경원 동물원에 있는 유일한 악어이다. 동물원 가족 646식구는 51종의 포유동물 134 마리와 63종의 조류(鳥類) 508 마리 그리고 3종의 열대산 비단뱀 4 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대표적인 미식가(美食家)인 포로수스 씨는 토끼와 닭고기를 상식 (常食)하는데 그가 한국에 온 후 지난 8년 동안 먹어 온 늘 같은 메뉴에 식상(食傷)한 나머지 오래 비장해온 그의 비법(秘法)을 발동,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악어의 눈물을 흘려 메뉴를 바꿔보려 했음에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기사를 쓰기 위한 취재과정에서 안 씨의 무죄가 밝혀져 당시 동대문 경찰서장의 사과를 받고 즉심의 오심판결이 무효화 되어 안 씨는 즉시 석방돼 귀가했다.

 

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한 사람의 웃음은 때론 다른 사람의 눈물이고, 또 한 사람의 눈물은 또 다른 사람의 웃음이다. 비근한 예로 우산 장사와 양산 장사가 그렇고, 의사와 환자, 유가족과 장의사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부처님 앞에 공양드리거나 어떤 귀신한테 굿이라도 해서 대학입시, 취직시험, 사법고시, 등 어떤 시험에 운 좋게 합격한 자식 부모의 웃음꽃은 낙방거자(落榜擧子) 부모의 울상 아닌가. 부처님이나 예수 또는 어떤 귀신이 사람에게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정말 주는지, 또 참으로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확실히 알 수 없겠지만, 설령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신이 신다운 신격(神格)의 소유자라면 약육강식의 자연계와 인간사회에서 무조건 강자의 편을 들어주거나 어떤 특정 개개인의 이기적인 기도나 기구를 편파적으로 들어주는 그런 신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즐겁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이것이 다 내가 잘나고 예뻐서 하느님이 내게만 내리시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만큼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미안지심(未安之心)에서 악어같이 거짓으로라도 눈물 좀 흘리는 편이 좀 더 양심 (良心)적이고 양심(養心)적이 아닐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불행에 같이 울고 가슴 아파하기 전에 당장 잠시 나타난 그야말로 뜬구름 같이 덧없는 내 행복부터 먼저 만끽하면서 하이에나처럼 웃어보는 편이 좀 더 인간적이고 솔직하며 정직하지 않을까.

 

어느 날 미녀(美女)와 추녀(醜女)가 바닷가에서 만나 우리 같이 바다에 들어가 놀자 하고, 그들은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한 동안 헤엄치며 놀았다. 그러다 추녀가 먼저 물 밖으로 나와 미녀가 벗어 논 옷을 입고 가버렸다. 그런 후에 바다에서 나온 미녀는 제 옷이 안 보이자 하는 수 없이 추녀가 벗어놓고 간 옷을 입고 가버렸다. 그 후로 이 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미녀를 추녀로, 추녀를 미녀로 잘못 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는 미녀와 추녀를 아는 이들이 있어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미녀는 미녀로 추녀는 추녀로 바로 알아보더라.

 

이렇게 칼릴 지브란의 방랑자(The Wanderer)’에 나오는 우화(寓話) ‘(Garments)’에서 말하듯이 세상에는 악어탈을 쓴 심약(心弱)한 토끼나 늑대탈을 쓴 천진난만한 병아리가 있을 수 있나 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2.04 10:39 수정 2019.12.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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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