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오사카 사천왕사




오사카 사천왕사

 

그것은 마음의 상태다!

 

비행기에 오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오사카로 떠나는 인천공항에서 나는 이천십육 년 십이월 이십사일의 여행을 정의하기 어려웠다. 스물아홉을 목전에 둔 딸과의 여행을 정의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지만 나는 단순하게 바라봄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불편함의 대명사로 악명 높은 피치항공의 분홍색 비행기도 예쁘게 보였다. 사물과 생물 사이, 미안함과 고마움 사이, 여자와 여자 사이, 엄마와 딸 사이를 함께 바라보면서 오사카로의 겨울여행을 시작했다.

 

표정 없고 예의바른 일본인들의 오사카는 여행하기 참 좋은 도시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길을 잃고 두리번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길을 물으면 일본인들은 표정 없이 친절하게 손가락 끝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나는 매번 이런 오사카의 일본인들을 신뢰했다. 비즈니스호텔 12층에서 바라보는 오사카의 밤은 크리스마스이브가 무색할 정도로 조용하고 적막했다. 나는 오사카의 이 적요함을 견딜 수 없어 호텔 앞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만 마셔댔다. 맥주는 작가인지 편집자인지 출판인인지 모를 나의 모호한 정체성처럼 맛이 없었다. 무정부상태의 출판생태계 밭에서 캐지 못한 대박을 아쉬워하는 그런 맛의 맥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저 홀로 깊어만 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닿고자 했던 설국처럼 오사카에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나도 모르게 내뱉으며 실없이 웃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의 첫 문장을 읽으며 나는 일본 어딘가에 있을 설국을 동경했었다. 중학교 때 말이다. 잘 이해도 못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처럼 설국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고 그리고 성숙한 나이에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는 설국같은 소설을 출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문학인을 발굴하는 발견자가 되지 못했다. 나는 문학과 출판의 언저리를 떠돌다가 한 생을 다할지 모른다. 그런 나를 위로할 눈이라도 내린다면 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오사카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맛없는 맥주도 떨어졌다. 밤은 깊어만 가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여행의 밤은 언제나 이런 패턴이다. 그러나 여행은 권력이다. 내면에 대한 권력, 삶에 대한 권력이다. 잠 오지 않는 여행의 권력처럼 오사카의 밤은 깊어갔다.

 

호텔 창문가로 나직이 들어온 햇살에 눈을 떠보니 아홉시가 넘은 늦은 아침이었다. 어제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새벽에 겨우 잠들었다가 깨어난 오사카의 아침은 서울의 아침보다 조용했다. 아마 나직이 들어온 햇살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호텔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갔다. 걸어가는 중간에 산타복장을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무리의 젊은 청년들이 보였다. 나는 문득 오늘이 크리스마스지 하면서 그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사천왕사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갔다.

 

겨울 사천왕사는 고즈넉했다. 무심히 내리는 겨울햇살 속으로 조용조용 걸어가는 노인들이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듯 했다. 방금 지은 것처럼 선명한 색의 건축이지만 7세기 일본을 통치했던 성덕태자가 지은 일본 최초의 절이라고 안내문을 읽고 최초라는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최초든 최후든 뭣이 중헌디라고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사천왕사의 고요가 최초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면벽하는 노승처럼 흐트러지지 않은 고요가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따금 소란하게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가는 한국 관광객들이 고요를 깼지만 금당 안에 계신 부처님은 여전히 삼매에 들어 있었다. 백제의 건축 명장인 유중광의 손끝에서 태어난 부처님의 형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고 성스러운데 긍정의 힘을 가진 일본인들의 종교관만큼이나 사천왕사의 역사는 지고지순했는지 모른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제인 육시당의 당당한 아름다움 앞에서 시간의 향기를 맡으며 해탈의 문으로 들어간 고승들을 만났다.

 

나는 사천왕사의 겨울 햇살에 몸을 굽고 싶었다. 연탄불에 누워 노릇노릇 몸을 구우며 세상을 넘본 죄를 뉘우치는 꽁치처럼 나직이 내리는 오사카 사천왕사의 겨울 햇살에 몸을 구우며 반성하고 싶었다. 관성에 걸린 물체처럼 산 삶을, 고군분투 없이 글을, 책을, 대박을 낚아채려 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싶었다. 오사카까지 와서 나는 이런 반성을 하고 있을까 하는 반성을 하면서 부처님께 합장을 하려니 죄스러움에 손이 간질거렸다. ‘나의 철학은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몰라라고 말한 헤겔처럼 나의 마음은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사실 나도 나의 마음을 모른다고 말해야 진실인 것 같았다.

 

오사카에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그래서 좋다. 여행과 수행은 같은 말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날이다. 분별하지 않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리 엘렌 체이스의 말은 신뢰가 간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하나의 날만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2.23 10:04 수정 2019.12.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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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