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종로 조계사




종로 조계사

 

 

결국, 그렇게 끝났다. 자연이 늘 변화를 거듭하듯이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당연히 변화를 거듭한다. 인과법칙에 따라 오늘, 이천십칠 년 삼월 십일 그녀 박근혜 대통령은 그 끝을 보고야 말았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종로 한복판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이유로 지리멸렬했던 그간의 일들을 생생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쾅쾅 울려대는 마이크 소리와 함성소리로 종로는 몸살을 앓았다. 헌법재판소 아래 사무실을 두고 있는 나는 필연적으로 역사의 현장을 볼 수밖에 없는 목격자였다. 노인들과 젊은이들은 서로 갈라지고 여당과 야당은 등을 돌리고 이념과 이념이 대립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탄핵정국은 촛불과 태극기의 대결로 치달으며 결국, 오늘 탄핵인용이라는 끝을 보고야 말았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마라. 지금 현재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라

 

나의 동선은 늘 인사동에서 시작해서 조계사에서 종결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가 혹은 사회의 많은 일들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다. 어제의 조계사와 오늘의 조계사, 그리고 내일의 조계사는 늘 역사의 중심에 있다. 중심은 바깥의 반대말이 아니다. 중심은 인과법칙의 핵심개념이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조계사로부터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매일 대한민국의 아름다움과 추함, 진실과 거짓, 인과 연을 마주한다. 인간군상의 파노라마를 봐야하고 행과 불행을 나누는 경계를 봐야한다. 어디 그뿐이랴, 누군가는 종로에서 이별하고 누군가는 종로에서 사랑을 한다. 또 누군가는 종로에서 절망하고 또 누군가는 종로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 나의 종로는 그래서 삼라만상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매도하고 쫓아내고 달라붙고 상처내고 봉합하는 대한민국을 안다. 대한민국 안의 종로를 안다. 종로안의 조계사를 안다. 서로 돕고 보듬어주고 알뜰히 챙겨주고 도와주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수행하는 또 다른 민낯도 안다. 애와 증이 함께 있는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지나 조계사를 곁에 두고 있는 나는 내 안위를 위해 기도를 하고 내 욕심을 위해 기도를 한다. 정직히 말하면 인텔리겐치아의 어쭙잖은 정신적 자만을 드러내기 위해 가기도 하고 어리석고 가여운 인간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가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인간의 총체적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어쩌면 조계사에 가는지 모른다. 아니다. 그냥 습관처럼 간다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안의 나인지 모른다. 나는 앎과 모름 사이에서 집착하고 분별하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백퍼센트 인간으로 가기 위해 나는 겨우 십 퍼센트쯤 걸어 왔을지 모른다. 인간의 완성을 위해 나의 발걸음은 매일 조계사로 향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치졸한 오만이다. 나는 조계사 부처님께 나의 추악한 개별적 욕망의 내부를 들킬까봐 전전긍긍 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간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던 붓다는 언제나 조계사 대웅전에서 목불로 앉아 있다. 매일 마주치는 붓다는 말한다. 깨어난 인간은 자기 내부로부터 에너지를 발견한다고 내게 속삭인다. 존재의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인간의 본질을 깨고 나와 스스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속삭인다. 어서 자신에게서 해방을 얻으라고 속삭인다. 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잘 알지 못한다. 마치 천천히 어둠이 몰려와 조계사를 덮듯이 서서히 밝음이 내려와 조계사를 열듯이 나는 앎과 모름 사이에서 매일 조계사 부처와 마주한다. 이처럼 서툰 한 문제적 인간의 고통은 언제쯤이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 아닌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내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드는 조계사는 스님들 발자국보다 내 발자국이 더 많이 찍혔을 것이다. 인사동을 지나 청계천을 걷다가 광장시장이 있는 마전교쯤에서 되돌아와서 동아일보를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교보문고를 지나고 종로구청을 지나 왼쪽 길을 따가 가다보면 조계사 후문이 나온다. 대웅전 부처님께 합장하고 경내를 돌며 마음속의 잡념을 털어낸다. 그리고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그래서 조계사에서 종결된다. 쓸쓸하거나 씩씩하거나 괴롭거나 행복하거나 이런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조계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종로에 사는 즐거움은 조계사에서 완성되는 셈이다.

 

한국불교의 메카인 조계사를 대변하는 형용사들은 많지만 나는 그런 화려한 형용사들은 다 접어두고 오직 종로에 있다는 것만을 유일한 형용사로 대변하고 싶다. 민족시인 만해가 세운 각황사라는 이름과 다시 고처 부른 태고사라는 이름과 그리고 종래는 조계사로 부르게 된 이력은 접어두고 조선의 역사를 나이테로 간직한 오백 살의 백송과 사백 살의 회화나무가 늘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은 조계사다. 나는 그 나무들에게 매일 두 손을 합장하며 안녕을 고한다.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늙은 선배 시인의 얼굴 같은 안온함이 조계사에 있다. 적어도 내게 그러하다. 불교는 내게 비워라, 비워라 하지만 사실 나는 채우러 조계사에 온다. 그런 내게 조계사의 부처는 그저 미소를 보낼 뿐이다.

 

오늘도 종로는 지리멸렬하고 나는 시간이라는 역사를 지나 조계사에 간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2.30 09:25 수정 2019.12.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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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