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忘憂亭(망우정)의 팽나무

강경래




忘憂亭(망우정)의 팽나무

 

 

망우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망우당 곽재우 장군(1552~1617)이 노년의 15년을 보낸 곳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번의 전란을 치른 장수에게 돌아온 것은 영암으로 3년간의 유배였습니다. 그가 울분을 삭이며 잊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420년 전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정자 뒤편의 무궁화 계단을 오르는데 무궁화는 죄다 쓰러져 있고, 계단 좌우로 도열하듯 서있는 광나무들은 야윈 자태로 길을 내어주고 있어 봄에 피었을 꽃향기만큼 아련합니다. 장군의 마음을 아는지 무궁화의 꽃말은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이며 광나무의 꽃말은 "강인한 마음"입니다. 이곳을 조성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꽃 무궁화와 광나무의 꽃말을 알고 심었을까요?

"충익공 망우 곽선생 유허비"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언덕 마루에 오르면 멋진 자태로 서있는 느티나무와 비각, 정자 지붕 너머로 보이는 낙동강의 풍경은 편안함을 줍니다. 망우정 왼쪽으로 난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첫 인상은 좁고 갑갑하다는 느낌과 장군이 이렇게 작은 집에서 살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망우정의 가운데 처마 끝에 忘憂亭 편액이, 마루 칸 처마 끝에는 與賢亭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한 건물에 두개의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망우정 편액은 곽재우 장군의 호가 忘憂堂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걱정이 많았던 시절에 忘憂"걱정을 잊고자 한다"는 뜻 입니다. 장군이 직접 쓴 글씨로 전합니다. 여현정與賢亭"어진 이에게 물려준 정자"라는 뜻입니다. 장군은 노년에 거처하던 망우정을 자신의 사위 신응의 사위인 이도순(1585~1625)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당시 장군에게 네 아들이 있었지만 이도순의 사람됨을 더욱 높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마루중방에 걸린 여현정기는 간송 조임도가 지었고, 그는 이 정자의 두 번째 주인이 된 이도순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이도순은 안타깝게도 정자를 받은 지 8년 만인 162541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두 번째 주인을 잃은 망우정은 망우당의 셋째 아들 탄이 보살피게 됩니다.

좁은 두 칸 규모의 방을 들여다봅니다. 장군이 만년을 보냈다고 하는 망우정의 두 칸 방에서 들창을 열면 강 건너 함안 칠서 땅 너머 그가 자라고 성장한 의령 세간마을의 외가 동네가 보이는 듯합니다. 장군은 자신에게 닥친 화가 그의 가족이나 식솔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경계하고자 강 건너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노년을 보냈나 봅니다.

장군이 잊고자 한 근심과 걱정은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는 로운 선비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곡기를 끊고, 거문고를 타며, 고기잡이에 정신을 쏟아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던 장군의 삶이 그려집니다.


정자 앞으로 난 대숲에 무심한 바람이입니다. 정자 앞에는 보기에도 갑갑한 마당과 동쪽으로 난 작은 출입문 앞의 휘어진 팽나무가 보았을 장군의 노년의 삶과 속마음을 휘어지고 굴곡진 가지로 대변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런 장군에게도 위안을 주는 의로운 선비들이 있었으니, 한강 정구선생과 여헌 장현광이었습니다. 16071월 그들과 함께 한 시절의 가 전합니다.

 

강가 집에서 시를 읊다.

 

친구들은 곡기 끊은 나를 불쌍히 여겨

낙동강 변에 함께 오두막집을 지었네

솔잎을 먹으니 허기는 없어지고

맑은 샘물 마시니 목마르지 않구나

고요함 속에 거문고 타니 마음도 고요하고

문 닫고 호흡 고르니 생각이 깊어지네

백년이 흘러 진실을 잊은 후에

나를 비웃던 이들

도리어 나를 신선이라 하리라

 

1789(정조13)에 세운 유허비와 1991년에 세운 유허비가 나란히 있습니다. 문제는 뒤에 세운 유허비인데 그 자리에는 원래 망우정과 역사를 같이하는 참나무가 있던 자리인데 유허비를 하나 더 세우려고 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참나무를 베어냈다고 하니... 장군의 유허비도 좋지만 역사를 품은 참나무를 베어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새 유허비가 흉물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장군과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팽나무는 이제 홀로 남아 망우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사라져간 참나무를 그리워하면서....

 

이제 장군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간송 조임도 선생의 合江亭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20.01.07 10:39 수정 2020.01.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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