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푸른 눈동자,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the blue eyes of Siberia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난 여행 (3) Journey in Search of Lost Me (3)
다음날 새벽에 후지르 마을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바이칼의 감추어진 어두운 이면을 보게된다. 과거 어촌이었던 마을 포구에는 녹슨 어선들이 황량한 모습을 하고 호수가 아닌 모래 위에 정박해 있다. 알혼섬 주민들의 주업은 고기잡이와 목축이다. 바이칼에서만 잡히는 연어과 민물생선인 '오물'을 남획하는 바람에 어획량이 크게 줄어 어선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관광 숙박업소들이 속속 들어서는 바람에 바이칼의 자연 환경이 훼손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오늘은 소설 ‘유정’에 나오는 바이칼 호수 서쪽 리스키비얀카로 간다. 여기는 바이칼의 호숫물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최석은 세상과 동떨어진 바이칼 서쪽 호수의 브라트족 집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유일한 친구 N에게 보낸 편지에서 "브라트족 주인 노파는 잠들고, 달빛 실은 바이칼 물결이 어촌 앞 바위를 때리고 있소."라고 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갈등과 번민 속에서 살았던 호반의 오두막집이 어디에 있었을까. '딸지' 민속박물관 강가를 거닐고, 유람선을 타고 호숫가를 1시간이나 돌고, 체르스키 전망대 산정에도 올라 한참을 찾아본다.
깊은 숲속의 호반 식당에서 전통 민속 공연을 보면서 러시아식 전통 꼬치구이 샤슬릭에 보드카를 몇 잔 한다. 공연단 손에 이끌려 건네주는 전통 악기로 같이 연주도 해본다.
브라트족 예쁜 처자가 부르는 ‘카츄사’ 노래에 가슴은 저며 오고, 취기가 크게 오르자 혼자 살며시 식당을 빠져 나온다.
최석은 친구 N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깊은 삼림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살다가 얼마 뒤 병들어 죽는다. 정임은 최석이 막 숨을 거둔 뒤 도착한다. 어둠에 젖어가는 숲속 식당 호숫가를 거닐며 최석의 마지막 오두막을 찾아본다. 자작나무와 적송이 우거진 저기쯤일까? 숲속을 한참을 헤매었는데 거기에는 최석도, 정임도 없었다. 이곳을 다녀간 춘원이 있었을 뿐이다.
가을 하늘 같이 푸르고 맑은 이르쿠츠크 상공을 비행기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창문 아래에서 에메랄드빛 바이칼 호수가 햇빛에 반짝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음에 품어왔던 꿈, 환상, 기대, 추억, 향수, 그리고 바닥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마저도 노끈에 매달아 호수 아래로 내려 보낸다.
안녕 최석! 안녕 백석! 다 스비다니야 발콘스키! 다 스비다니야 리스트비양카! 다 스비다니야 이르쿠츠크......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