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푸른 눈동자,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the blue eyes of Siberia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난 여행 (3) Journey in Search of Lost Me (3)

2018년 7월 말 여계봉 선임기자가 다녀온 바이칼 이야기, 마지막 회



시베리아의 푸른 눈동자,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the blue eyes of Siberia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난 여행 (3) Journey in Search of Lost Me (3)


 

다음날 새벽에 후지르 마을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바이칼의 감추어진 어두운 이면을 보게된다. 과거 어촌이었던 마을 포구에는 녹슨 어선들이 황량한 모습을 하고 호수가 아닌 모래 위에 정박해 있다. 알혼섬 주민들의 주업은 고기잡이와 목축이다. 바이칼에서만 잡히는 연어과 민물생선인 '오물'을 남획하는 바람에 어획량이 크게 줄어 어선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관광 숙박업소들이 속속 들어서는 바람에 바이칼의 자연 환경이 훼손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후지르 마을 포구의 폐선들


 

오늘은 소설 유정에 나오는 바이칼 호수 서쪽 리스키비얀카로 간다. 여기는 바이칼의 호숫물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최석은 세상과 동떨어진 바이칼 서쪽 호수의 브라트족 집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유일한 친구 N에게 보낸 편지에서 "브라트족 주인 노파는 잠들고, 달빛 실은 바이칼 물결이 어촌 앞 바위를 때리고 있소."라고 했다. 


자작나무 숲속의 딸지 민속박물관. 이곳 원주민 에벤카족과 브라트족, 그리고 슬라브족의 초기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갈등과 번민 속에서 살았던 호반의 오두막집이 어디에 있었을까. '딸지' 민속박물관 강가를 거닐고, 유람선을 타고 호숫가를 1시간이나 돌고, 체르스키 전망대 산정에도 올라 한참을 찾아본다


체르스키 전망대에 오르면 바이칼호수를 빠져나가는 앙가라강을 모두 볼 수 있다.


 

깊은 숲속의 호반 식당에서 전통 민속 공연을 보면서 러시아식 전통 꼬치구이 샤슬릭에 보드카를 몇 잔 한다. 공연단 손에 이끌려 건네주는 전통 악기로 같이 연주도 해본다



 

브라트족 예쁜 처자가 부르는 카츄사노래에 가슴은 저며 오고, 취기가 크게 오르자 혼자 살며시 식당을 빠져 나온다



러시아 전통 민속 공연. 가운데 브라트족 여자가 부르는 ‘카츄사’에 짙은 연민과 향수를 느낀다.


 

최석은 친구 N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깊은 삼림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살다가 얼마 뒤 병들어 죽는다. 정임은 최석이 막 숨을 거둔 뒤 도착한다. 어둠에 젖어가는 숲속 식당 호숫가를 거닐며 최석의 마지막 오두막을 찾아본다. 자작나무와 적송이 우거진 저기쯤일까? 숲속을 한참을 헤매었는데 거기에는 최석도, 정임도 없었다. 이곳을 다녀간 춘원이 있었을 뿐이다


석양에 젖어가는 숲속의 호숫가. 강을 따라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최석이 생을 마감했을 느낌이 드는 깊은 숲속의 오두막



 

가을 하늘 같이 푸르고 맑은 이르쿠츠크 상공을 비행기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창문 아래에서 에메랄드빛 바이칼 호수가 햇빛에 반짝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음에 품어왔던 꿈, 환상, 기대, 추억, 향수, 그리고 바닥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마저도 노끈에 매달아 호수 아래로 내려 보낸다.


안녕 최석! 안녕 백석! 다 스비다니야 발콘스키! 다 스비다니야 리스트비양카! 다 스비다니야 이르쿠츠크......


여계봉  선임기자


정명 기자
작성 2018.08.07 08:40 수정 2018.08.07 08:41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정명기자 뉴스보기
댓글 3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김영아님 (2018.09.25 18:25) 
바이칼
아주 옛날 학창시절 읽은 유정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소설 내용에서 바이칼은 생각납니다 이야기가 있는 바이칼 여행기는 감동입니다
입니다.
댓글 수정-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여계봉님 (2018.09.02 07:59) 
바이칼
의견주시어 감사합니다. 물론 일제치하에 춘원이 변절하여 실망을 끼친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적 성과마저 부정할수는 없습니다. 소설 ‘유정’은 춘원이 처음으로 쓴 연애소설이지만 배경이 바이칼이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자 고민하던 인텔리들, 즉 육당, 춘원, 백석 등이 마치 우리의 본향을 찾듯이 동경하던 곳이 우리 민족의 시원 바이칼입니다. 자신의 올곧은 목소리를 낼수없어 고민하던 반도의 문학가들이 바이칼을 찾아 울분을 토해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입니다.
댓글 수정-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김주일님 (2018.08.28 16:50) 
춘원의 작품등장이 좀 아쉽다.
설마 최석이 된 감정으로 가 본 것은 아니시죠.^^ 별로 알려진 책이 아니라 읽은 기억은 없지만 연애소설인 것 같네요. 작가로써는 글재주가 좋은 것은 맞는데 춘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그리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자님의 글속에 소재로 들어가기에는 좀 아쉬운 느낌입니다. 바이칼 호수에 빗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유적에 대한 정보는 매우 유용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신(辛) 소리한다고 섭섭해하지마세요.^^)
입니다.
댓글 수정-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