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글쓰기의 고통

입력시간 : 2020-01-20 09:52:42 , 최종수정 : 2020-01-20 09:54:00, 편집부 기자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써놓은 글 때문에 겪는 고통! 입술은 부르트고, 눈은 밤새 거리를 배회한 고양이처럼 하며, 머리는 야생짐승의 털처럼 산발(散髮)이 되어 화난 듯 뻗쳐있었다.

 

젊은 시절 한창이었을 그의 사나운 기세도 최근 몇 년간의 세파로 인해 무디어지고 순화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가끔씩 드러나는 그 깐깐한 성질과 기세등등한 자존심이 과거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나로서는 지금 그의 모습을 젊은 시절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의 별명을 ‘4983’이라 지었다. 물론 은밀하게 그를 부르는 별칭으로서, 그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별명이라 생각한다. 그도 조만간 이 별칭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지만, 그런다 한들 상관은 없다. 그도 수긍할 수밖에 없을 테니.

 

4983.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별명이다. 49%의 글재주와 48%의 말재주, 그리고 나머지 3%는 그가 품고 있는 독으로 규정하고 싶다. 글쓰기와 토크쇼에서 보여준 재능만으로도 그는 재주꾼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면모는 감춰진 3%에 있다. 3%는 그를 여타의 존재와 구별 짓는 에센스. 흔한 말로 뱀이 품고 있는 독에 비유할 수 있을진대, 이 에센스는 어떤 경우 웃음을 자아내는 요설로, 때론 표적이 되는 상대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또 때론 예기치 않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쏟아져 나오기에, 나는 이것을 그의 정체성이자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에센스로 규정한다.

 

그를 알고 지낸 것이 오래지 않다. 그러나 세상사에서도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밀도가 더 중요하듯, 제자도 아니며 친구도 아니며 동향도 아닌 이 존재가, 말보다는 글을 통해,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더 가까이 좀 더 밀도 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글에 관심을 두고 그 세계를 추구하면서 많은 공감과 우정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글에 대해 보여주는 그의 열정은 생각 이상이었으며, 그 무한한 잠재력과 지치지 않는 열정에 여러 번 놀랐다. 그런 그가 울고 있지 않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피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슬퍼하기에, 평소의 그 활기와 독기 서린 기상(氣像)은 어디 가고, 마치 사고를 치고 허름한 담장 아래 쭈그리고 있는- 잔뜩 겁먹고 풀 죽어 있는- 고양이처럼 사무실에 납작 엎드려있는 것이다.

 

처음엔 놀라움으로 다음엔 호기심으로 그간의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얼마 전 자신만의 온전한 책을 출간한다고 아이처럼 들떠있던 모습을 아직 기억하는 터라, 오늘 자신의 손으로 출판사에 남아있는 수백 권의 책을 회수해서 폐기처분 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의 독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 아닐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구심 또한 생겨났다. 혹자는 이미 나와 있는 천여 권의 책을 위약금을 물어가면서까지 굳이 없애야 하는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아마 미친 짓이며, 작가가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과잉반응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오류가 몇 곳 발견되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니. 선택의 결정권을 가진 필자가 스스로 벌린 참담한 일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의 결정을 지지해줬다. 잘한 일이며, 당당히 요구할 일이며, 금전적. 시간적 손실과 심리적 타격에도 불구하고 잘한 일이라고 그를 두둔했으며, 그다운 일을 통해 그가 살아날 것이라 지지해줬다. 그리고 아직 이 살아있다고 말해줬다. 작가가 그런 자존감을 지니지 않는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는 유혹을 스스로 뿌리치지 않는다면, 글쓰기로 인한 고통과 책임을 스스로 부여안고 가지 않는다면, 좋은 작가가 되기 힘들 것이라는 내 판단에 근거해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무모한 결정. 그리고 글쓰기로 인한 고통. 도대체 어떤 문제가 생겼기에 그럴까. 여러 문제 중 대표적 예를 들어보니, “ ... 그는 작가로서 그 사건을 곰곰 되새겼다.” 이런 대목을 그는 작가로써 그 사건을 …….”라고 인쇄가 되어 나온 것이다. 그것도 기꺼이 편집자의 수고로 인해서라고 한다. ‘자격수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오류를 발견하고서, 그는 더 이상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책을 모조리 수거해서 폐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독자가 이런 오류를 필자의 잘못이 아닌, 편집자의 실수라고 생각하겠는가.

 

만일 내 이름으로 출간되는 책에서 그런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면, 나 또한 금전적 손해를 불사하고라도 같은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 출간을 위해 교정을 했었던 경험이 있기에, 그의 그런 상황을, 그런 분노를, 그의 응축된 독이 뿜어져 나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황을 모르는 차분한 독자가, 상당한 문해력(文解力)을 지닌 수준 높은 독서가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저술가가, 그런 세세한 구석을 이해할 리 만무다. 설령 편집자의 무능과 게으름과 안이함이 불러온 결과일지라도, 책임의 9할은 필자에게 갈 도리밖에. 글을 잘 쓰고도 겪는 고통. 기형아를 세상에 내어놓는 것 같은 심정으로, 그는 괴로워하며 글쓰기의 고통을 떠안고 있었다. 그것은 글쓰기로 인한 희열이자, 고통이며, 또한 분노며 책임이었다.

 

머리는 뿔처럼 뻗치고 눈은 겁에 질려있으며, 풀이 잔뜩 죽어 담장 아래 쭈그리고 앉은 검은 고양이. 글쓰기의 고통. 그러나 어찌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겠는가. 일순간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두려워 말라 …….” 그렇다, 어찌 글쓰기를 두려워하겠는가. 세상 어떤 일에도 삶이 계속돼야 하듯, 어떤 고통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이것은 그만이 아닌 모든 글 쓰는 자의 숙명일 것이다. 글 쓰는 고통. 글쓰기의 고통. 엄밀히 말하면 그의 글쓰기가 만들어 낸 그의 고통, 남의 일 같지 않다. 그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길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의) 길은 계속되어야 한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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