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얼굴론

곽흥렬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얼굴은 마음의 집이다. 눈은 부분적이지만 얼굴은 전체적이어서, 눈이 다 보여주지 못하는 마음의 구석진 자리까지 얼굴은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다.


얼굴이 신체의 맨 꼭대기 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한 조물주의 배려가 아닌가 한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하는 일체의 기능이, 이 얼굴을 이루는 눈과 귀와 입과 코에서 이루어진다. 이들 기관器官들의 절묘한 자리 배치, 세상에 이보다 더 완벽한 황금분할을 이루는 신의 걸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아무리 구도가 잘 잡힌 정물화라도 사람의 얼굴에는 미치지 못할 성싶다.

얼굴은 마음의 색인이며 인격의 잣대가 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이 가장 잘 들어맞는 신체 부위가 바로 이 얼굴이 아닌가 한다. 겉볼안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음을 곱게 쓰면 얼굴 표정이 온화해지고 마음을 나쁘게 쓰면 얼굴 표정도 일그러진다. 마음을 밝게 가지면 얼굴도 태양빛같이 밝아지고, 마음을 어둡게 가지면 얼굴도 동굴 속처럼 흐려진다. 설사 아무리 부리부리한 눈과 오뚝한 콧날과 도톰한 입술을 두루 갖추었다고 해도, 마음이 비뚤어져 있다면 잘난 얼굴일지는 모르나 결코 참한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국내 어느 굴지의 재벌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관상가를 등 뒤에다 앉혀 놓고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비록 관상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인생을 살고 나면 상대편의 얼굴만 보고도 많은 것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얼굴을 일러 얼 곧 마음이 숨어 있는 동굴이라고 했듯이, 그 사람의 인생 편력이며 정신세계며 인간됨됨이까지 얼굴에 고스란히 비쳐지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아무리 꾸미고 감추려 해도 궁극엔 드러나게 마련인 것이 얼굴이다. 마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귀신은 속여도 제 스스로의 얼굴은 속일 수가 없는 법이다. 그만큼 얼굴은 정직하다. 고도의 지능적인 범죄를 수사하는 데 이용되는 거짓말탐지기란 물건은, 바로 얼굴의 이러한 속성을 응용해 만들어진 기계가 아닌가 한다.

얼굴 표정과 감정의 함수관계는 불가분의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루에 몇 천 번도 더 바뀌듯, 오만 가지 심사가 다 얼굴 하나로 표출된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것이 또한 얼굴이다. 얼굴은 고작 수십 개의 근육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수천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감정도 순간순간 바뀐다는 뜻이겠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감정과 표정이 정확한 등식을 이룬다. 기분이 좋을 때는 까르르 웃다가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금세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이들의 생리다. 그러다가 차츰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이 둘의 상관성이 어긋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즐거우면 기쁜 얼굴이 되고 마음이 괴로우면 슬픈 얼굴이 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다. 마음이 즐거울 때 외려 어두운 얼굴이 되고 마음이 괴로울 때 외려 밝은 얼굴이 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무섭기는 할지언정 그래도 인간적인 사람이다. 겉으로는 허허 웃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흐음, 어디 한번 두고 보자.’ 하며 시퍼런 칼날을 품고 있는 이중인격자, 이런 사람이 실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물론 기분 상태와 얼굴 표정을 일부러 다르게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배우며 코미디언이며 개그맨 같은 부류이다. 화려한 무대조명 뒤에 얼비치는 짙은 우수의 그림자를 우리는 놓치기 십상이다. 그들도 인간인 이상 어찌 슬픔이 없겠으며 번민이 없을 것인가. 다만 직업의식의 발로로 억지웃음을 짓지 않으면 아니 될 따름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들이 제일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며, 마음 아플 때 괴로워하면서 어린아이처럼 하얗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은 아닐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듯이 신체, 특히 얼굴이 단단히 한몫을 하는 시대이다. 잘생긴 사람은 웬만한 잘못이 있어도 용서를 받지만 못생긴 사람은 별다른 잘못이 없는데도 용서 받지 못한다. 심지어 강도짓을 저지른 망나니를 두고 얼짱이라는 별 희한한 말로 미화를 하려 드는 세태이니 오죽하랴. 그렇다 보니 자연 얼굴로 한몫을 보려는 부류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 강정,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 얼짱 대열에 동참하려고 성형외과를 찾아 얼굴 뜯어고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참 묘해서, 거리를 지나치다 인물이 훤하게 생긴 미인을 만나면 절로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이것이 사람의 판단에 콩깍지를 씌우는 단초가 됨을 우리는 까마득히 놓치기 일쑤이다. 한동안은 그 잘난 얼굴에 빠져 무엇이 소중한지를 잊고 살 터이지만, 나중에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뒤틀리고 난 뒤인 것을 어쩌랴.


얼굴이 점점 순수성을 잃어가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잘생긴 얼굴만 만들려 들지, 맑고 선한 얼굴은 가꾸려 하지 않는다. 외모지상주의가 이러한 풍조에 한몫을 거든다. 그래서일까, 요새 대다수 사내아이들은 정조 잃은 여자와는 같이 살 수 있어도 얼굴 못생긴 여자와는 함께 살 수 없다는 신세대식 이성관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지극히 표피적인 면에만 높은 점수를 매기는 이러한 왜곡된 가치관이 충동적인 가정파탄을 부르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는지.... 얼굴 못생긴 사람과는 평생을 해로할 수 있어도 마음 안 맞는 사람과는 단 하루도 지겹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치 않으리라.

세상이 복잡다단해 갈수록 마음과 얼굴의 어그러짐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예전엔 마음이 얼굴에 정직하게 나타났는데, 지금은 마음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지 않았나 싶다. 얼굴을 보고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했을 때 헛다리짚을 확률이 점점 높아가는 시대이다. 그만큼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형이 늘어 간다는 이야기일 게다. 얼굴 생김생김이 희멀건 사내가 유수의 명문대학을 나와 무슨 연구소에 다닌다거나, 이른바 잘나가는 자 돌림의 직업을 가졌다면서 번지르르하게 쏟아놓는 말과 얼굴 표정에 속아 넘어가 가진 것을 탕진하고 몸마저 망치는 일이 우리들 주변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 물론 본분을 망각하고 섣부르게 팔자를 고쳐 보려는 당자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무엇보다 겉모습으로 한몫을 챙기려는 그 비뚤어진 의식에 더욱 문제가 깊어 보인다.


잘생긴 얼굴과 좋은 얼굴은 분명히 다르다. 잘생긴 얼굴에서는 찬바람이 나지만 좋은 얼굴에서는 향기가 난다. 요새 사람들은 이 찬바람은 겁내지 않으면서 마음의 향기는 맡으려 들질 않는다. 인위적으로 가꾸어진 성형미인은 생기 없는 꽃인 조화 같아서 거기에서는 따뜻한 인간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항시 푸른 그림자 같은 차가움만이 느껴질 뿐이다.

마음을 정직하게 반영할 수 있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평소 대단한 인격자인 듯이 보이던 사람에게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면모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심한 배신감을 갖는다. 어찌 보면 진실하지 못한 마음으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하나의 업이 되리라.

손금이 선천적이라면 얼굴 표정은 후천적이다. 썩 반반한 얼굴을 타고났어도 나쁘게 팽개치는 사람도 있고, 다소 처지는 얼굴을 갖고 태어났어도 곱게 가꾸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얼굴은 다듬는 자의 몫이다. 그러기에 어떤 얼굴을 가질 것인가는 결국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람이 나이 사십 줄을 넘어서면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그 기준점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이지만, 과연 내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동글납작한 얼굴이 자그맣고 볼품없어서 세상에 나서기가 늘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성형수술 같은 인위적인 조작으로 카무플라주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신 마음 밭을 곱게 가꾸어 상대방에게 혐오감 주지 않는 맑은 얼굴이나 지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살아가고 싶을 따름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2.19 09:13 수정 2020.02.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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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