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삼악(三岳)에 올라 삼락(三樂)을 즐기다

여계봉

여계봉 2020.3.16



봄 춘(), 내 천(), ‘봄이 오는 시내춘천에는 그 예쁜 이름만큼이나 걸출한 봉우리들이 호수에 반영되어 수채화 같은 풍경을 그려내는 산이 있다. 막장으로 치닫는 코로나19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도시를 탈출하여 의암호를 끼고 있는 춘천의 삼악산을 향해 길을 나선다.


삼악산 들머리인 등선폭포 주차장에는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차가 한 대도 없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이곳에서 자전거 전용 길을 따라 삼악산 동쪽, 의암호와 맞닿아 있는 의암댐 매표소까지 3km 정도 되는 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봄빛 머금고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 기슭 양지 바른 곳에 뾰쪽하니 새싹들이 얼굴을 내민다. 코로나19 여파로 삶 자체가 흔들리는 요즘이지만 우리의 산하에는 어김없이 따뜻한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삼악산 들머리인 의암댐 매표소는 북한강을 따라 403번 지방도에 붙어있는 자전거 길을 걷다가 의암댐을 지나면 나타난다.



의암댐 매표소에서 입장료 2,000원을 내면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주는데 나중에 주변 식당이나 시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오늘 산행은 여기를 들머리로 하여 삼악산장과 상원사를 거쳐 칼날처럼 날카로운 능선을 타고 정상인 용화봉에 올랐다가 흥국사를 거쳐 등선폭포로 하산하는 3시간 남짓 걸리는 약 5km 코스로 진행한다.


삼악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강촌교 부근의 등선봉 입구, 등선폭포 매표소, 의암댐 매표소로 모두 3군데다.

 

삼악산장에서 바라본 북한강 물길에는 봄빛과 봄향이 담겨있다.

 


매표소를 지나 좁은 산길을 오르면 이내 삼악산장이 나온다. 상원사까지는 제법 너른 산길을 따라 편안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상원사는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은 절집이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절집 샘터에서 약수 한바가지를 들이키고 깔딱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지만 산행 초입이라 거뜬하게 고개 마루에 올라선다. 고개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들어서면 거친 바위산의 면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 길을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낭패를 본다. 거의 45도 경사로 가파르고 삐죽삐죽 날카로운 바윗길 능선을 타야하고, 능선 오른쪽은 깎아지른 단애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암릉이 단단한 규암이라 물만 묻어도 쉽게 미끄러진다. 밧줄과 철제 계단, 디딤판 등 안전 시설물들을 이용하여 차근차근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그렇지만 늙어서도 용트림하는 굳센 소나무 사이로 조망이 트일 때면 짙푸른 의암호와 주위의 산줄기가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와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삼악산은 높이는 낮지만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이 그러하듯 험준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삼악산의 주능선 안쪽은 완만한 경사의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바깥쪽은 수직절벽이거나 급경사의 바위지대다.

 


정상 직전에 있는 동봉 전망대는 삼악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공간이 별로 없는 정상보다 의암호가 잘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나무데크에서 간식도 먹으면서 여유롭게 조망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 서면 북서쪽으로 계관산, 북배산,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치닫고, 동북쪽에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의암호의 초록빛 물에 잠긴 삼악산 그림자와 붕어섬, 하중도, 상중도, 고슴도치섬 등 그림처럼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호수 너머로 우리나라 제일의 호반도시 춘천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용화산(878m), 오봉산(779m), 부용산(882m)이 병풍처럼 서 있다. 푸른 하늘을 닮은 호수를 바라보니 눈도 맑아지고 마음을 억누르던 코로나의 망령도 가라앉는다.


아득한 절벽 아래 호수 가운데에 떠있는 붕어섬과 중도. 군살도 잡티도 하나 없는 절경이다

 

전망대에서 의암호와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춘천의 봄. 산객은 그 황홀한 봄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산행 시작 약 1시간 반 만에 정상인 높이 654m의 용화봉에 도착한다. 주봉인 용화봉을 위시해서 청운봉(546m), 등선봉(632m) 등 봉우리가 3개여서 삼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 봉우리가 만든 협곡과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으로 이루어진 삼악산의 산세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등산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악산은 예부터 강원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자 춘천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내년 5월 삼천동 수변에서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 정상 부근까지 국내 최장 3.6km의 케이블카가 개통된다고 한다. 현재 전국의 산과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케이블카 유치 경쟁으로 자연 경관이 훼손되고 혈세가 낭비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실정인데 삼악산이라고 예외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붕어섬을 가득 메운 태양열 집열판을 바라보고 있는 삼악산은 말이 없다.

 


 

삼악산 정상을 뒤로하고 등선폭포를 향해 하산한다. 다소 가파른 내리막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넓고 평평한 안부를 만나는데, 이제부터는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부드럽고 멋진 숲속 길을 걷게 된다. 청명한 산경이 산길 끝자락마다 서리서리 피어오른다.


하산 길에 삼악산이 지나온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흔적으로만 남은 삼악산성과 기와조각들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삼악산 정상에서 서쪽 청운봉 방향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고성의 흔적이 약 470m 정도 남아 있는데, 고대국가 맥국(貊國)의 성터로 추정하고 있다. 맥국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부족국가로, 춘천지역에는 맥국 관계의 지명과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삼악산성이 그중 하나다. 그리고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해 이곳에 성을 쌓아 피신했다는 전설도 전해 오는데, 흥국사(興國寺), 망국대(望國臺), 대궐터, 기와를 굽던 와대기등 옛 지명은 궁예와 관련된 것들이다.

 

333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초원이 나오고 잠시 후 흥국사에 이른다. 삼악산은 흥국사를 가운데 두고 주능선이 사각형으로 둘러 서 있다. 여기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급한 철 계단을 내려서면 거대한 협곡사이에 생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는데, 청송 주왕산의 절골 계곡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삼악산의 암석은 주로 규암의 일종인 사암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생성된 변성암인데, 산의 규모가 아담하지만 수 억 년 동안 비바람과 물길이 빚어 놓은 아기자기한 기암괴석과 좁은 협곡, 자그마한 폭포가 많다.


흥국사는 왕건에게 패한 궁예가 894년경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깊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또 다른 세상의 낯선 풍경으로 이끈다.

 


 

등선폭포 입구 협곡에는 높이 15m의 제1폭포 외에 제2, 3 폭포가 있고, 그 외에 비선, 승학, 백련, 주렴폭포 등이 이어지는데 마치 중국의 어느 협곡을 보는 듯한 웅장함을 느끼게 되고, 깊은 골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오랜 시간 물길이 다듬어 놓은 선녀탕과 등선폭포을 지나 깊은 협곡을 벗어나는 순간 거대한 벽 너머로 저만치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거대한 협곡 사이로 마치 속세로 나가는 석문을 지나듯 길이 나있다.
삼악산의 명소로 꼽히는 등선폭포. 긴 동면에서 깨어나 우렁찬 물소리로 봄을 노래한다.

 


산자락의 잎 떨군 겨울나무들이 희붐한 봄 햇살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이른 봄날이었지만, 산빛과 산향을 담뿍 머금은 람들 얼굴마다 살짝 홍조가 어린 연유는 삼악(三岳)에 올라 삼락(三樂)을 만났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올라 의암호에 드리운 삼악과 춘천 시가가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볼거리가 일락(一樂)이요,

삼악산성 터와 흥국사를 둘러보면서 맥국과 궁예에 관한 우리 역사를 치열하게 논한 이야기 거리가 이락(二樂)이요,

하산하여 이곳 명물 닭갈비와 막국수의 진수를 맛본 먹거리가 바로 삼락(三樂)이니,

 

어느 누가 삼악에 올라 삼락을 아니 느꼈다고 말 할 수 있으리.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16 13:09 수정 2020.03.1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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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