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남원 실상사

전승선




남원 실상사


물빛이 순해지면 봄이 온다. 한강 물빛이 순해지고 물비늘이 햇살에 반짝거릴 때 나는 다시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봄이 왔다고 인사동 거리가 북적거리고 청계천에는 왜가리의 날갯짓이 늘어가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고 조계사에서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서 청계천으로 행선을 시작하는 것이 나의 산책코스다. 봄이 오니 산책하는 나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지고 있었다. 남녘에는 이미 봄이 당도해 있다고 연일 소식이 올라왔다. 떠나고 싶어 근질근질해지는 마음을 누를 수 없어 조계사의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만 연신 마셔댔다.

 

해가 지면 조계사 아래 부산식당에서 근질거리는 마음을 밀어 넣으며 동태찌개에 술 한잔하는 낙으로 봄을 달래고 있었다. 그때 그곳에 오신 실상사 주지였던 도법스님과 정토원의 법륜스님, 그리고 법명을 알 수 없는 스님 한 분을 뵌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스님들은 조곤조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때 나는 도법스님의 가사장삼에 묻어온 남녘의 봄을 봤다. 가사장삼엔 버들강아지의 웃음이 숨어 있었다. 한잎 두잎 열고 있는 벚꽃의 고운 얼굴도 숨어 있었고 제비꽃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떠나고 싶은 내 마음에 불을 지르고 스님들은 홀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셨다.

 

벚꽃 향기를 따라 나는 떠났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봄이잖은가. 떠나지 않은 봄은 봄이 아니다. 내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을 깨워 나는 남쪽으로 떠났다. 떠나니 봄이다. 생명의 다른 이름은 봄이다. 봄의 다른 이름은 떠남이다. 나는 이런 연결고리로 세상의 난관들과 대적하고 있었다. 나는 충분히 일했고 충분히 힘들었다. 출판사 일은 정신적 노동의 대가를 받기엔 늘 부족했다. 그렇지만 나는 책 만드는 일을 사랑하고 사랑했다. 출판이라는 키워드가 내 인생에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황폐한 인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애()며 증()이다. 삶이 애증이듯이 내게 출판도 애증이다.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볍다. 자동차의 두 바퀴가 가볍고 둘러맨 가방도 가볍다. 떠돌이 시인 김삿갓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봄이면 봄을 찾아 여름이면 여름을 찾아 가을이면 가을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나면 인생이 가고 사람도 가고 종래는 영혼도 갈 것이다. 그 종착이 어딘지 몰라도 우리는 그래서 떠나는지 모른다. 떠나면서 나를 알고 나를 알면서 우주를 알고 우주를 알면서 그 너머를 알지 않은가.

 

남원으로 들어서자 너른 들판이 나타났다. 지리산 자락에 기대있는 남원은 낯설지 않은 곳이다. 내 인생의 여러 번은 남원을 왔었고 지리산을 왔었다. 너른 들판 가운데 새색시처럼 앉아있는 실상사도 처음은 아니다. 오다가다 참 많이 왔던 절이다. 그래도 올 때마다 늘 반겨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듯하다. 들판 한가운데 텅 빈 공허함을 주는 겨울 실상사의 무상함도 좋고 황금물결 속을 흔들거리며 가는 쪽배 같은 가을 실상사도 좋고 비를 맞으며 기도하는 여인의 가는 목덜미 같은 여름의 실상사도 좋고 천송이의 벚꽃잎이 피는 봄의 실상사는 더 좋다.

 

사월, 나는 실상사에 왔다. 봄이 지천이다. 꽃도 지천이다. 댓돌 밑에는 제비꽃이 얼굴을 내밀고 고목 같은 벚나무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간은 아마 이곳 실상사에 와서 벚나무가 되었을지 모른다. 시간의 흔적이 피워낸 벚꽃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실상사다. 은빛꽃송이들이 하늘로 올라가듯 피어있었다. 보잘것없는 나는 벚나무 아래 서서 꽃송이들이 내려 주는 기도의 언어를 들었다. 송이송이 내리는 부처의 마음을 들으며 이번 생에 인간으로 지구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봄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부처도 만났으니 이보다 더 잘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이라는 실상사는 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고 지며 시간을 이어 왔을까. ‘사부대중공동체를 이루고자 한다는 것만 봐도 실상사에 기대 몸과 마음의 안식을 찾는 이들이 늘 찾아오는 곳이다. 부처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실상사의 봄이 부처다. 실상사에 가면 내가 부처가 되고 부처가 내가 된다. 그래서 기를 쓰고 찾아오는 곳이다. 나는 벚꽃 아래 서서 부처가 된 나를 보고 부처는 나를 가만히 내려도 보고 있었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흩뜨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빛깔 곱고 감미로운 욕망의 봄을 지나 이제는 떠남의 담백한 봄을 맞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봄은 내게 떠남의 대상이다. 떠나온 봄에게 나는 지상에서 가장 담백한 인사를 한다.

 

안녕, !

 

 

전승선 기자  poet1961@hanmail.net



전승선 기자
작성 2020.03.23 11:11 수정 2020.09.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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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