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양평 물소리길을 걷다

여계봉 선임기자



이제 4월이다. 코끝에 스치는 강바람에서 따스한 봄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런 날들에는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 싶어진다. 특히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느라 우리 모두 심신은 지쳐 있다.

 

비말 전파가 주요 감염로인 코로나19는 밀폐된 공간에서 전염성이 강하므로 야외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코로나를 이겨내는 면역력 강화를 위해서 가까운 근교로 나가 자연을 벗 삼아 가벼운 산책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온 듯 다녀가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되겠지만.

 

양평의 자연은 심심산골의 자연과 같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맑다.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양평에는 공장이 없고, 각종 규제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만든 둘레길이 바로 양평 물소리길이다. 경의중앙선 전철역이 용문까지 개통되어 있어 배낭을 간단히 꾸려 가까운 전철역으로만 가면 언제든지 쉽게 떠날 수 있다.

 

‘양평 물소리길’은 물의 도시 양평이 만든 둘레길이다.

 


물소리길은 양수역-국수역 1코스, 국수역-양평역 2코스, 양평역-원덕역 3코스, 원덕역-용문역 4코스, 용문역-용문산관광지 5코스이며, 기존 5개의 코스를 6개의 물소리 길로 세분해 각 코스들의 길이를 10내외로 조절했다. 오늘은 남한강과 흑천을 따라 3코스와 4코스를 걷기로 한다.


‘양평 물소리길’은 6개 물소리 길(58.1km)로 이어져 있다(양평군청 제공).
물소리길 3코스. 양평역-갈산공원-현덕교-신내면-원덕초등학교-원덕역(거리 10.9㎞, 양평군청 제공).

 


우리나라 걷기여행길 7선으로 선정된 남한강변 버드나무 나루께길(3코스)은 양평역에서 원덕역으로 이어진다. 양평역 정면으로 난 큰 거리를 따라 걷다가 남한강 아래로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물소리길이 시작된다. 조금 걸으면 갈산공원과 양근나루터가 나타난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마포나 뚝섬에서 배로 새우젓을 실어 오던 곳이다. 갈산공원에서 강가로 내려서면 남한강을 따라 울창한 버드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숲길을 걸을 수 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난다.



물내음과 흙내음 맡으며 걷다보면 강바람이 다가와 부드럽게 속삭인다. 버드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좁은 물길이 걸음을 막아서는 곳에는 어김없이 운치 있는 다리가 놓여 길을 잇는다. 푸름이 시원한 강변의 버드나무 숲이 끝나 도로로 올라서면 벚꽃길이 나온다. 폭이 좁은 도로 양옆으로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벚나무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벚꽃길이 끝나자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남한강이 장쾌한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을 따라가는 걸음이기에 물소리길이라는 이름과 딱 어울린다.


남한강물은 빛을 따라 수 만 가지 보석처럼 반짝인다.

 

푸른 버드나무 하늘 아래 실개천 흐르는 물길 위를 걷을 수 있다.

 


현덕교에 다다르자 두물머리가 보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아닌, 흑천과 남한강의 만남이다. ‘청명(晴明)'이 있는 달답게 4월이면 봄기운은 더욱 완연해진다. 산과 들에서는 꽃들이 활짝 미소를 짓고, 개구리는 물소리에 맞춰 '청혼가'를 부르느라 여념이 없다.


볼 것, 들을 것이 많아서일까. 출발해서 10km를 걸었건만 힘들 틈이 없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흥에 겨워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첫 시구를 읊어본다.

 

 

현덕교 위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남한강과 흑천이 만나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면 사람은 왼쪽으로, 자전거는 오른쪽으로 향한다.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부터 벚꽃터널이다. 강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걷는다. 길 왼쪽에는 멀리 용문산이, 오른쪽에는 추읍산이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에 신내마을 해장국 거리가 나온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양평해장국의 유래가 여기서 시작됐다고 한다. 도로를 건너 흑천을 따라 위락단지 시설 옆으로 난 잘 다듬어진 강변길을 걷는다. 강변길이 끝나면 원덕초등학교를 지나 원덕역에서 3코스가 마무리되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벚꽃나무 터널. 최대 6㎞가량의 벚꽃길이 남한강과 흑천을 따라 이어진다.



양평 물소리길 4코스 흑천길은 펑퍼짐한 추읍산 아래 흑천을 따라 동서로 흐른다. 원덕역에서 용문역까지 6.2의 짧은 길에는 논두렁과 딸기밭, 카누 체험장, 구판장이 있는 시골마을, 농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물소리길 4코스. 원덕역-삼성1리마을회관-수진원농장-용문역(거리 6.2㎞)


원덕역에서 나와 왼쪽 굴다리를 지나면 강과 어우러진 시골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곳곳에 물소리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길 찾기는 수월하다. 논밭이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너른 들판 사이로 난 길은 흑천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용문산 줄기가, 오른쪽으로 추읍산이 보이는 사이로 흑천이 유유히 흐른다. 흑천은 천변 바닥의 검은 돌 때문에 물빛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흑천을 거무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 위를 스치는 강바람이 강변을 걷는 나그네를 어루만진다.

 

강가는 뱃놀이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삼성리 천연 잔디 운동장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면 삼성1리 마을회관과 공판장이 나온다. 이곳은 추읍산 북쪽 산행 2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흑천의 오른쪽 둑길을 따르면 수진원농장이 나오고 정문 왼쪽에 강변길로 나가는 길이 있다. 강변길에서는 각종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어 걷는 재미를 더한다. 새싹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산하는 넘실넘실 춤을 춘다. 버드나무 숲과 길 말미에 만나는 은행나무길 또한 수려해 어깨춤을 추고 간다.


 

농장 아래로 난 길을 걷노라면 정겨운 강변 풍경에 취해 발길이 저절로 멈춰진다.



강변 쉼터에서 다시 길을 이으면 백산교가 나오고 건너편에 폐쇄된 콘도 건물이 보인다. 여기에서 강변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4코스 종점인 용문역에 닿게 되고 오늘의 긴 여정도 여기서 끝이 난다.

 

온몸에 풋내 풍기고 어두운 설움과 푸른 웃음이 어우러진 사이로 길 떠난 하루였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 위를 스쳐가는 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난 하루였다.

 

그동안 코로나가 드리운 암울함에 근심이 너무 커 봄날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다. 멈춰 섰던 시민들의 일상에도 봄기운이 찾아와 진정한 온기가 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날은 코로나를 몰고 가리라.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03 11:59 수정 2020.04.03 12:1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