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비단길(Silk Road)

최용완


한반도의 농사짓는 문화가 고인돌과 함께 세계 각 대륙에 이르고 우리 민족이 만주 요하에서 시작한 현대인류 문명의 파도는 그 뒤를 따랐다. 터키의 인더스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스메르 문명으로, 중미의 마야 문명으로 기원전 6세기부터 인구가 가장 많은 동아시아에서 교통로가 열렸다. 기원전 138~126년에는 전한의 장건이 파미르 고원을 지나 대월지에 이르는 오아시스길을 열었다고 한다. 한서 지리지와 서역전에 남, 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 위에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서안)과 간쑤성 둔황시 그리고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한나라 때 중국 서북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의 육상으로 통하는 무역통로가 있는 동시에 해상무역통로도 있다고 했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약 700년 동안 중원지역을 놓고 중화족과 각축전을 벌였다. 그러다 중국에 밀려 서쪽으로 진출해 성능 좋은 활(복합궁)과 뛰어난 기마술을 바탕으로 우랄산맥을 넘어 카자흐스탄 초원에 정착했다. 그리고 약 2세기 후 이들 훈족이 유럽에 공포의 돌풍을 몰고 왔다. 훈족의 유럽침입은 게르만족을 비롯한 유럽민족들의 연쇄적 대이동을 초래하여 유럽 역사상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 서로마를 정복하고 유럽 고대사의 종말을 가져왔다.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통치하는 종족만 해도 45개 종족에 달했다. 아틸라와 그의 아들은 동로마를 세우고 동아시아 문화를 동로마 제도로 들여왔다. 훈족이 유럽을 지배한 시기는 375년부터 469년까지 약 100년간이었다. 중세 로마제국의 문화는 고구려문화와 공통성이 많다. 철기로 무장한 기마군단, 투구와 갑옷, 삼오족 깃발, 그리고 일주일 7일 제도는 우리나라 음양오행 날들과 같다. 아틸라와 그의 아들이 사망한 후에 훈족은 동로마 제국과 게르만족의 연합전쟁에서 패배하였다. 훈족은 그 뒤 헝가리를 중심으로, 루마니아, 프랑스, 스위스 등에 부족 단위로 자리 잡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다.

 

오늘날 헝가리인들은 자신들이 훈족의 왕 아틸라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헝가리어는 우리말과 공통성이 많다.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다. 몽골은 모두 훈족을 자기 민족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독일 ZDF 방송에서 제작한 잃어버린 고리찾기에서 훈족이 아시아 최동쪽인 한반도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중에서도 한반도 남쪽 지방인 신라와 가야를 지목했다.

 

실크로드(Silk Road)는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한 근대 동서 교역로를 말한다. 비단길이라는 언어의 기원이 중국의 비단이 로마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로마가 망한 이유는 로마의 재정이 비단 소모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두 가지 통로로 나누어 초원 사막길 그리고 바닷길로 나누어 왕래가 이루어졌다. 초원길은 서쪽의 끝인 발트해 남단으로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 카자흐스탄과 알타이산맥 남쪽으로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혼강 연안으로 중국의 화북지방을 통하고 이 길을 연장하면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 사막의 군데군데에 오아시스가 생활의 보금자리이며 교역의 중심지로서 비단길은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교역품들과 문화와 문명이 유통되는 통로였다.

 

바닷길은 현재의 광동성 서문현에서 시작하여 약 5달 동안 계속 항행하여 타이와 미얀마, 인디아, 스리랑카에 도착한다고 했다. 중국의 비단과 향료 같은 물품은 이 통로를 통하여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수송된다고 했다. 로마 전성기의 시장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각지의 명산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3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배가 인도차이나나 광동성에 항해하는 상선도 나타났다고 한다. 비단길은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해 수만 갈래의 길로 성장하여 범세계적인 그물 모양의 교통로가 되었다. 진시황제는 동아세아를 통일한 세계 최초의 제국, 진나라(259 ~ 210 BC)를 세워 서안에 도읍을 정했다. 실크로드 중앙에 위치한 서안의 문화는 그 기세를 실크로드를 따라 이태리 반도의 로마제국에 이르렀다. 동아세아 민족이 지중해로 연결되고 동아세아 문화가 지중해로 전해지는 길이 되었다.

 

비단길(silk soad)은 동아세아 사람들이 아세아대륙의 서쪽으로 진출하는 마당길이었다.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몽골 쪽에서 돌궐족이 나타났다. 돌궐족은 남쪽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세워 오늘의 터키가 되었고 터키가 우리나라와 형제국이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터키의 역사에도 우리는 아사나 민족(아사달 민족: 빛의 땅 민족. 태양족)”이라고 한다.

 

신라 성덕왕 때, 승려 혜초가 인도 5(五國) 부근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그 행적을 적은 여행기를 남겼다. 1908년 프랑스 탐험가가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에서 당시 7,000점의 유물을 구입했고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발견되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혜초는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간 신라에서 바닷길로 인도에 이르러 불교 사대령탑(四大靈塔) 등의 성적(聖蹟)을 순례하고 오천축국(五天竺國)을 두루 다녔다. 당나라 총령진에 도착하여 둔황에 들렀다가 장안(長安)에 도착한다. 왕오천축국전은 세계 4대 여행기로도 손꼽히며 또한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세계 4대 여행기는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오도록의 동유기와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포함한다.

 

한나라 문화는 해안 국가들의 문화에서 시작하여 유목 국가와 융합된 동아시아 문화이다. 당나라 문화는 동아시아 문화가 동인도를 통하여 인도에 진출한 이후에 서남 아세아와 지중해를 통하여 유럽에 지출한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대륙에 연결되는 세계대제국의 문화와 문명이다. 북에서 금나라와 경쟁을 해오던 몽골국은 만주지역과 티베트 지역에 같은 혈연의 민족들을 통합하여 드디어 동아시아 세력이 세계를 정복하는 길에 나선다. 훈족의 비단길은 훈족의 후예인 몽골 칭기즈칸의 뒤안길이 되었다. 동아시아를 통일하고 인류 역사에 첫 제국을 세운 진시황제의 뒤를 따라 칭기즈칸은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세계 첫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명나라의 제독(提督), 탐험가인 정화( 鄭和1371~1434)는 비단길을 따라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하였다. 함대에서 가장 큰 배인 보선(寶船)은 전체 길이가 120미터, 폭이 60미터가 넘는 대형 선박이었다고 한다. 조선술과 지도 제작기술, 천문관측 능력, 항해술을 갖춘 나라는 중국 명나라밖에 없었다. 중국 역사에 전해 내려온 세계지도는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로 이때 다시 수정되었다.

 

영국의 해군탐험가 개빈 맨지스는 그의 저서 “1421”에 명나라 해군 제독 정허가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고 사용한 세계원정의 함선 200여 척의 수행 선박들에 27천여 명의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1405년에 장수성 태창을 떠나 인도와 아프리카를 거쳐 1421년에 미 대륙에 도착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귀국한 후에도 계속하여 1433년에 7번째 원정을 마치고 항해 지도를 수정하였다고 한다. 유럽은 그 뒤를 따랐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국가명은 서쪽의 항구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1498년 바스쿠다 가마(1469~1521)는 희망봉을 돌아서 동아프리카 해안을 북상해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 포르투갈 출신 마젤란은 에스파냐 왕실의 후원으로 1519년 세계일주 항해로 세비야(Seville)를 출항해 3년 만인 1521년 귀환했다.

 

비단길은 동아시아 문화와 문명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었다. 태평양 해변 따라 미대륙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항해 정보는 유럽에 전파되고 콜럼버스나 마젤란은 모두 명나라의 조선술과 지도 제작기술, 천문관측 능력, 항해술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15세기까지 유럽의 문명은 동아시아의 문화에 의존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때부터 동아시아는 세계패권을 유럽에 넘겨주었다. 동아시아에서 시작한 문화와 문명의 흐름은 서남아시아, 유럽을 지나고 대영제국을 거쳐 미국에 머물렀다가 이제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오는 중이다.

 

 

(동아시아는 인류 문화문명의 어머니) 새로 출판된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26 10:53 수정 2020.05.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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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