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유명농계(有名弄溪)와 마유산(馬遊山)을 아시나요

여계봉 선임기자



자연은 영혼을 치유하는 성소(聖所).’

미국의 사상가이며 수필가인 랄프 왈드 에머슨이 저서 자연론에서 한 말이다.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5월말, 희대의 바이러스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양평 유명산의 자연속으로 들어간다. 초여름의 신록이 시작되는 이 무렵에는 산자락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산오름을 하거나 청신한 숲 계곡에서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속에 몸과 마음을 다독이면 자연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유명산 계곡인 유명농계(有名弄溪)는 가평팔경(加平八景) 가운데 제8경이다.



가평과 양평의 경계에 있는 유명산은 수도권에서 당일로 다녀오기에 좋은 산행지다. 정상부에 수만 평의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지고, 용문산, 중미산, 소구니산 등 양평과 가평 일대의 산군과 남한강, 양평 시내를 조망하기 더없이 좋은 산이다. 특히 입구지계곡이라고 불리는 약 3km의 유명산 계곡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유명농계(有名弄溪)라 하여 가평팔경(加平八景) 가운데 제8경으로 꼽는다. 이 계곡은 박쥐소를 시작으로 용소, 마당소 등 크고 작은 소()들이 연이어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소금강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산행 들머리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국내에서 최초로 개장된 휴양림으로 유명산 입구 계곡 안쪽에 있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좌측은 계곡, 우측은 산 정상을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늘 산행은 유명산 계곡을 따라 합수지점까지 이동한 후 숲길을 통해 정상에 올랐다가 잣나무 군락지를 통해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로 진행한다.


산행코스: 휴양림주차장-박쥐소-용소-마당소-합수지-정상-잣나무 숲-휴양림주차장



입구지 계곡에 연해있는 탐방로를 따라 산길로 들어선다. 계곡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투명한 물살을 따라 박쥐소, 용소, 마당소 같은 소와 담이 연달아 이어진다. 자연 흑암으로 이루어진 계곡은 대부분 작은 암반으로 되어 있다. 계곡의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지만 너덜지대 같은 잔잔한 돌길이다. 온갖 널찍한 이파리를 가진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원시림 속 계곡은 어둑어둑하다. 어비산과 유명산 사이 좁은 협곡에는 기암괴석들이 도열해있는 그 사이로 두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완경사, 급경사 조화를 이루며 거침없이 흘러내린다. 녹색 숲은 신록으로 윤기가 넘쳐난다.


입구지 계곡.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 사이로 굉음을 내며 흐르는 물은 원시의 비경을 선사한다.

 


치열한 숲속에도 평화가 숨어 있다. 어제 내린 빗물을 미처 털어내지 못한 잎사귀에 반짝이는 햇살,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깊은 숲 속은 모든 것이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박쥐소, 용소, 마당소 등 소와 담, 그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는 이 계곡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띠고 있고 사시사철 수량도 풍부하다. 산길과 인접한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끊임없이 귓가를 때리건만 이제는 그 소리조차 정겹기만 하다.


주변 바위가 용처럼 생겼으며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지닌 용소
하늘소.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어비산과 유명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나는 합수지가 나온다.

 


 

합수지에서 계곡을 따라 유명산 정상으로 길을 잡는다. 산을 오를수록 숲의 향이 강해진다. 이따금 밤새 눈 밝힌 소쩍새의 애달픈 소리가 울리고 푸드덕 나뭇가지를 박차는 소리도 들린다. 초록의 장막 속에서 계곡과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걷다보니 작은 계곡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산길로 접어든다. 산을 오르면서 약동하는 자연의 힘을 느끼고, 환희하고, 경탄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음을 온전히 인식한다.

 

가파른 참나무 숲 비탈길을 오르니 시계가 트이면서 산정 아래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지금이야 억새로 뒤덮인 이 너른 평원은 옛날에는 말들이 뛰놀며 전장으로 달려 나갈 꿈을 키우고 있었던 군마사육장이었다.


말들이 뛰놀던 산이었다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마유산(馬遊山)으로 불리었다.

 

 

이 산은 그동안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져 이름 없는 산이 되고 말았는데, 1970년대 이곳을 찾은 어느 산악회의 여성 대원 이름을 따서 유명산이 되었다고 한다. 정상부근은 온통 억새밭이어서 가을 경치도 일품이다. 날씨만 좋으면 남한강과 북한강, 수락산과 도봉산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유명산 정상(862m). 지맥은 소구니산, 중미산, 통방산, 화야산으로 이어진다.

 


 

정상의 전망대에 서면 바로 앞에 군사시설이 설치된 용문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내려 뻗은 장군봉, 백운봉의 능선이 우람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정상석 정면으로 유명계곡을 마주하고 있는 어비산(827m)이 있는데, 산 이름 어비(魚飛)’는 계곡에 물고기들이 너무 많아 물 위로 날아다닐 정도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상 아래에 위치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장애물이 없고 이륙하기 적당한 경사면과 활공장 고도가 높아 짜릿한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정면에 보이는 용문산(1,157m)은 대부산과 배너미 고개를 거쳐 갈 수 있다.

 

앞 산자락 너머 양평읍이 모습을 보이고 그 너머로 남한강이 아스라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유명산 산행은 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한 원점회귀 산행이 가장 일반적이다. 대부분 코스가 짧은 잣나무 숲 능선으로 올랐다가 코스가 긴 입구지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정상까지는 땀을 빼고 올랐다가 하산할 때는 계곡에서 발 담그는 여유로움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역 산행이니만큼 능선을 따라 휴양림으로 내려선다. 유명산은 원래 참나무류가 많은 천연림지대인데 국립 자연휴양림 지역이다 보니 낙엽송, 잣나무 등을 심어 놓은 인공림지대와 잘 어우러져 숲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숲에 들어서면 따가운 봄볕도 전혀 두렵지 않다. 나뭇가지에 자잘하게 흩어져 내리는 빛은 따스하고 부드럽게 다가선다. 야생화 밭을 지나니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꽃향기에는 주인이 없다.



하산 길 잣나무 숲. 천연의 산림욕을 제대로 즐기면서 산행을 겸할 수 있다.



숲속 산새 소리에 귀가 즐겁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다람쥐 모습에 눈이 싱그럽다. 대자연이 오감을 자극하는 사이에 어느새 휴양림에 도착한다.

 

이제 돌아가는 시간, 눈가리개를 한 채 주위에 곁눈 한번 주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일상이 우리 모습이 아닌지. 마유산 산정의 너른 평원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질주했을 군마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29 12:31 수정 2020.05.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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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