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코스미안시대가 도래하고 있어라(3)

이태상

 



그리스 신화에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부여받았던 프리지아(Phrygia)의 왕 미다스(Midas)의 이야기가 있다. 손을 대는 것마다 다 황금으로 변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황금이 좋다지만 사람이 황금을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서양에서는 유대인들을 꺼리듯 한국에서는 개성사람들을 멀리해 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들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등장하는 냉혹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이나, 챨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에 나오는 수전노 스크루지(Scrooge) 같이 인색하기로 소문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선입견과 편견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좀 과장되긴 했겠지만 개성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절약하는지를 말해주는 얘기들이 있다. 개성사람 집 밥상에는 밥 한 그릇뿐이고 소금에 절인 짠 조기 한 마리가 천정으로부터 밥상 위로 매달려 있어 밥 한술 입에 떠 넣고는 그 짠 조기를 한번 반찬으로 쳐다본단다. 또 어느 누가 개성사람 집 뜰 안으로 짠 조기 한 마리를 던졌더니 그 집 주인 어른이 이 웬 밥도둑이냐'고 펄쩍 뛰면서 집안 식구들이 이 짠 조기 때문에 밥을 많이 먹게 될까 봐 이 조기를 얼른 집어 울타리 밖으로 되 던져 버리더란다.

 

내가 아는 사람의 아버님께서는 옛날 개성에 사실 때 볼 일 보러 집 떠나 먼길 가실 때면 주머니에 떡을 몇 개씩 넣고 가셨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떡이 쉴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다고 한다. 쉰 떡을 잡숴야 소화가 안 돼 배고픈 줄 모르고 오래 버티실 수 있었던 까닭에서였단다. 그래서였는지 그분께서는 오래 못 사시고 일찍 돌아가셨다고.

 

남 말은 그만두고 내 얘기도 좀 해보리라. 내가 20년 살다 헤어진 첫 번째 아내 친정이 개성 출신이어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그 전통에 물이 들여서였을까,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직장 일로 매주 영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면서 주말마다 집에 오면 아내가 싸주는, 하루 세끼 먹을 샌드위치 5~6일분을 한 박스 차 트렁크에 싣고 떠났었다. 호텔에선 보온병에 더운물만 얻어 차를 타 마시면서 회사에서 받는 출장비 중 식대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아 음악 공부하는 세딸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차에 싣고 다니느라 겨울에는 꽁꽁 얼고 여름에는 곰팡냄새가 나는 샌드위치를 날이면 날마다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우리말로는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뜻으로, 영어에도 한 푼 아끼려다 천 냥 만 냥 잃는다‘penny-wise and pound-foolish’란 말이 있지만 이기적이고 인색한 것이 개성사람이나 유태인만은 아니리라. 영국 작가로 기상천외의 이야기들(Tales of the Unexpected, 1979)’등의 저자인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이 생전에 인터뷰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 모두가 귀담아 되새겨 봐야 하지 않으랴.

 

유대인 기질 또는 근성에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적개심까지 불러일으키게 하는 특징이 있다. 아마 이것은 비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도량이 좁고 관대함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말은 언제 어디서나 그 무엇을 또는 그 누구를 반대하는 주의가 생기고 운동이 일어날 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히틀러같이 고약한 독재자도 아무 이유나 까닭 없이 유대인을 괴롭힌 것은 아닐 테니까.

 

(There is a trait in the Jewish character that does provoke animosity, maybe it’s a kind of lack of generosity towards non-Jews. I mean, there’s always a reason why anti-anything crops up anywhere; even a stinker like Hitler didn’t just pick on them for no reason.)"

 

언제부터인가 벌써 오래전부터 미국 LA 지방에서는 한국사람들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한다지 않나. 서양사람 특히 영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에 찻잔 속의 폭풍(storm in a teacup)’이 있다. 1992429일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로스앤젤레스 백인 경찰관들에 대한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을 내리는데 반발한 흑인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날벼락을 맞은 한국교포들의 신세는 폭풍 속에 박살 난 샴페인잔(champagne flute shattered in a storm)’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뿌리 깊은 흑백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든 우리 한국교포가 희생양이 되었다고, 날벼락 맞은 격이라고만 할 수 없지 않을까. 한국인이 근면하여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흑인들이 시기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국인이 노골적으로 그들을 멸시한 데에도 문제는 있었으리라. 백인도 흑인도 아닌 황인종으로서 흑백 사이에서 중화(中和)를 지키지 못하고 검은 인종을 야만시하여 자기네가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문명한 나라라며 거들먹거리는 중화(中華)를 모방하다 못해 백인우월주의 흉내까지 내며 스스로를 백인으로 착각한 데 있지 않았을까. 흑인촌에서 돈 벌어 백인촌에 살면서 말이다.

 

언젠가 한국의 TV드라마 당신의 축배에 재미교포 세탁업자를 멸시하는 대사가 쓰였다고 미국의 전 한인세탁업자는 물론 재미교포들 모두 분개하며 한인회가 한국정부와 방송사에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났었다. 이것이야말로 찻잔 속의 폭풍이 아니었을까. 일찍이 그 누군가가 말했다는 것처럼 너 자신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너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없으리라. 예로 병신같은 놈' 또는 '거지 같은 년이라고 누가 욕을 해도 나 자신이 진짜 병신이나 거지가 아니면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사람 보고 개 같은 것이라고 개새끼라 할 때 평소에 정말 개같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길길이 날뛰지 않던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할 때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이나 펄쩍 뛸 일이고 그것도 자기가 당나귀 귀를 갖고 있는 사실을 숨겨 온 경우에만 그럴 것이다. 임금님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할 때 어린애로부터 임금님 벌거벗었네라고 손가락질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현대판 임금님의 경우도 매한가지 아닐까. 야채, 과일, , 생선, , 신발, 가발, 세탁, 수선업 등 가지가지 힘들고 고생스런 품 팔아 검은 손때 묻은 돈으로 임금(賃金)님 된 대부분의 재미교포들 말이다.

 

돌이켜보면 한국동란 때 그리고 그 후로 그 어떤 비상한 수단과 방법으로 외국 특히 지상의 천국처럼 선전된 미국에 이주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유럽의 옛 동화 속의 여주인공 신데렐라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다같이 몸을 파는 여자라도 서양사람 미군을 상대하면 양공주님이 되고 동족인 한국 남자를 상대하면 똥갈보라 불리지 않았나.

 

그 뒤로 좀 악취미 같은 농반진반의 이야기가 나돌기까지 했다. 용케 혼자만 전쟁터 한국을 떠난 사람들은 한국에 전쟁이 다시 나기를 내심 바라고,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혼자만 더 잘 살겠다고 고향과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해외에서 돈 많이 벌고 크게 성공하기를 빌어주기보다는 교통사고나 강도의 총에 비명횡사라도 하기를 은근히 바랐다고.

 

흔히 친척이나 동족이 남만도 못하다고 한다. 모르는 남이 잘살면 부러워하고 못 살면 동정하는데 형제나 동족이 잘되면 속상해하고 잘못되면 깔보면서 멀리 한다고. 미국의 교포사회에서 흔히 듣는 말로 길에서 같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보다 경계하게 된다고 한다. 제 상점 앞에 한국 사람이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단다. 바로 옆에 같은 업종의 상점을 차려 덤핑하듯 도매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팔아 제 손님 다 뺏어갈까 봐.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떠나시는 임은 심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느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하는 것이 우리 민족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젊은이가 늙은이 대할 때나 건강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방문할 때나 의식주 걱정 없는 사람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볼 때 상대적으로 자신의 젊음과 건강과 유복함을 다행스러워한다. 그래서 동정이나 자선조차도 이기적인 일종의 자위책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신경질적으로 비교하는 데서 쓸데없이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을 느껴 어깨를 제치기도 하고 축 늘어뜨리기도 하는데 있는 것 같다.

 

1972년 초 직장 때문에 우리 가족이 영국에 가 살 때 당시 주영대사관 공보관으로 부임한 나의 옛 동료 기자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담소하는 가운데 친구 부인이 자기는 길에서 흑인을 보면 우월감을 느낀다는 실토에 나는 한편 그 천진난만함(?)'을 높이 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 부인은 대학교육까지 받고 결혼 전에 여성잡지 기자 생활을 한 지식인 여성이었는데.

 

하기는 그 친구 부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없이 복합적인 인간사회에 살면서도 너무나 피상적이고 단순하고 획일적인 가치척도로 서로를 견주고 재는 것 같다. 따라서 피부 색깔이니, 직업의 귀천이니, 관존민비, 남존여비, 재산유무, 학식유무를 따져 인무식(人無識)이 되는 게 아닐까.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것이 대도(大道)라면 이런 큰마음 해심(海心)을 갖고 출렁이는 인생바다에 무슨 문이 있으리오. 이런 마음가짐으로 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나보다 잘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없고, 나보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다 나의 분신임을 깨닫게 되어, 더이상 치졸무쌍한 우월감도 열등감도 느낄 필요 없게 되리라. 그러면 그 누가 되었든 이웃의 기쁨이 내 기쁨이요, 이웃의 슬픔과 아픔이 내 슬픔과 아픔인 것을 알게 되리. 나 자신이 여러 형태로 여러 가지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것임을.

 

어찌 안그러랴!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모든 삶을 다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할 수 있으리라. 어떤 삶도 모른 체할 수 없는, 무시할 수 없는, 버릴 수 없는, 너무도 애달프도록 가엾고 덧없는 것 아니더냐. 그래서 윤동주도 그의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읊었으리라. 이럴 때 비로소 남이 아니고 모두가 다 나 자신의 다른 모습임을 알게 되리. 당신의 축배가 내 축배요, 우리 모두의 축배인 것을.

 

그리고 축배는 혼자 들 수 없고 다 같이 함께 드는데 그 뜻과 의의가 있다는 것을, 또 그리고 축배 가운데 사랑의 축배, 곧 동고동락, 숨과 꿈을 나누는, 삶의 축배 이상이 없음을 알게 되리.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의 고향 '코스모스바다의 마음,' 곧 우심(宇心)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12 10:06 수정 2020.09.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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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