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스쳐 가는 사랑이어라

이태상

 


최근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meme)'이란 단어가 있다.

 

The word meme is a shortening (modeled on gene) of mimeme (from Ancient Greek μίμημα pronounced [míːːma] mīmēma, "imitated thing", from μιμεσθαι mimeisthai, "to imitate", from μμος mimos, "mime") coined by British evolutionary biologist Richard Dawkins in The Selfish Gene (1976) as a concept for discussion of - Wikipedia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1976년 펴낸 책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새로 만들어 낸 개념으로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조지 씨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 1926-2010)1966년 출간된 저서 '적응과 자연선별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신종의 자기 복제자가 최근 바로 이 행성에 등장했다... 이미 그것은 오래된 유전자를 일찌감치 제쳤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달성하고 있다""문화 전달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기 위해 이 복제자를 'meme'이라 지칭했다.

 

, 어쩜 이 복제자 '(meme)'이 우주의 바람에 흩날리는 사랑의 홀씨가 아니랴.

 

 

사랑은 거짓말

 

김상용(金尙容1561-1637)

(조선시대 중 후기의 문인, 시인, 정치가, 서예가)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긔 더욱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리오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이태오, 나랑 잤어.”

최근 김희애가 던진 이 한 마디에 종영까지 2회 남은 JTBC ‘부부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화제성이 더욱 치솟았다는 보도다. 2016년 개봉된 영화 그날의 분위기대사 한 마디가 큰 화제가 되었었다. 영화배우 유연석이 자신만만 맹공남으로 문채원과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물 그날의 분위기를 통해서였다.

 

자유연애주의자인 유능한 스포츠 에이전트 재현(유연석)은 부산행 KTX에서 같은 자리에 앉게 된 미모의 수정(문채원)에게 호감을 느끼고 돌직구를 던진다. “,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

 

이보다 11년 전(2005) 개봉한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 박해일이 강혜정에게 던진 같이 자고 싶어요보다 좀 더 자신만만한 대사라는 평이었다. 이같은 기사를 보면서 내 젊은 날이 생각난다. 내가 젊은 날 본 영화 애정(哀情)의 쌀 Riso Amaro, 영어로는 Bitter Rice, 1949)는 주제페 데 산티스(Giuseppe De Santis 1917-1997)가 감독하고 실바노 망가노(Silvana Mangano 1930-1989)와 빗토리오 가스만(Vittorio Gassman 1922-2000)이 주연한 이탈리아 영화이다.

 

맹목적인 사랑이 빚은 파국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실바노 망가노가 사랑에 눈이 먼 한 여자의 종착점, 그것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인생 드라마임을 너무도 실감나게 열연한다. 진실한 사랑은 위대하지만 무분별한 정염(情炎)으로 불타는 사랑은 바람 속의 촛불처럼 불안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여인상이다.

 

1960년대 내가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근무할 때 수습기자로 입사한 여기자가 있었다. 교정부를 거쳐 편집부로 올라온 이 아가씨가 그 당시로서는 상상 밖의 농담 조크를 연발한다는 말을 듣고 믿기지가 않았다. 한 예로 실바노 망가노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퀴즈를 내기에 모르겠다고 대답하니 씹할 년, 망할 년이란 답을 내놓더란 것이다. 외모부터가 청초하고 순진해 보이며 대학을 막 졸업한 이 아가씨가 그런 쌍소리를 했을 리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 진위를 내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고 작정하고, 좀 덜 바쁜 아침 시간에 회사 근처 중앙청 앞에 있던 설매 다방으로 이 아가씨를 불러냈다.

 

이 다방에선 신청곡을 요청하면 틀어줬었다. 이 여기자를 내 맞은쪽에 앉히고 그 양옆에 동료 남기자 한 명씩 앉혔다. 혹시라도 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답도 하기 전에 아가씨가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차를 주문하고 나서 나는 신청곡 하나를 적은 종이쪽지를 DJ창구로 밀어 넣고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내가 신청한 곡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가 신청한 곡이 나왔다. 이 곡은 1958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뉴욕 출신 보컬 그룹 작은 앤소니 와 임피리얼스(Little Anthony and the Imperials)가 부른 쉬미 쉬미 코 코 밥 (Shimmy Shimmy Ko Ko Bop)’이란 노래였는데 얼핏 듣기에는 씹이 씹이 콩 콩 박어봐처럼 들렸었다. 이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정색을 하고 맞은 쪽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oo씨입, 씨입 할 줄 아세요?”

 

그랬더니 눈도 깜짝 않고 즉각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사람이냐고 묻는 거나 같지 않나요?”

 

우리 세 남자는 또 한 번 크게 놀라 할 말을 잃었으나 나는 내심 소문 난 농담의 진위를 밝힌 것으로 만족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아빠나 오빠 아니면 선배 입장에서라도 한 마디 꼭 해줘야겠다고 별렀다. 나는 군에 갔다 와서 마련한 조그마한 집을 안채는 전세를 주고 문간의 단칸방을 쓰고 있었다. 이 단칸방으로 다방에서 망을 섰던 동료 기자 한 명과 이 아가씨를 밤늦은 시간에 초대했다. 그러면서 나는 진심으로 허물없이 말했다.

 

새파랗게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내 쌍스러운 질문에 태연하게 응답할 수 있으며, 신문사 사내에서 남성 기자들한테 쌍시옷이 들어간 농담을 그토록 거침없이 할 수 있겠느냐.

 

그랬더니 이 아가씨 하는 말이 자기는 내 질문을 슬퍼할 줄 아느냐?’고 들었고, 실바노 망가노 농담은 어려서부터 주위에서 늘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이 그렇게 쌍스러운 말인지 자기는 몰랐었다는 것이다.

 

아뿔싸, 오호(嗚呼) 애재(哀哉)로다, 이토록 순수하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천사 같은 아가씨를 의심하고 모독하고 모욕을 주다니그 당시만 해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통금이 되어 아가씨는 우리 두 남자 사이에 끼여 옷을 입은 채로 누워 하룻밤을 지냈다.

 

그 후로 나는 이 아가씨와 잠시 사귀던 중 취중에 다른 아가씨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사고 친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아가씨는 그날 내 단칸방에서 셋이서 밤을 함께 보낸 동료 기자와 결혼을 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이 동료는 나를 친형처럼 따랐었다. 경기 중고교를 나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이 친구는 자기가 여성이면 좋았겠다고 했었다. 그랬었더라면 우리 두 사람은 완전무결한 부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다른 짝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내게 결핍한 모든 이지적인 이성과 지성을 자기가 다 갖고 있는 반면에 제가 갖고 있지 못한 감성과 열정과 용기를 내가 다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후일담으로 나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 동료는 나와 사고치고 나와 결혼까지 했다가 헤어지게 된 내 첫 아내를 처음부터 좋아 했었다는데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하게 되자 나와 사귀던 실바노 망가노농담을 했던 아가씨와 결혼했다. 그 후로 청와대 민원 담당 비서관을 지내다가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영국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이 친구가 쫓기는 꿈을 꾸고 나서 타계 소식을 나는 듣게 되었다.)

 

내가 이 소녀를 속단했듯이 지레짐작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섣불리 평가하지 말라는 교훈은 옛날부터 있어 온 것 같다. 공자도 탄식을 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해 보리라.

 

안회를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 공자의 탄식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식량이 떨어져 7일 동안 굶게 되었다. 공자는 한 마을 입구에 도착해 잠시 쉬는 도중 피곤함에 지쳐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잠결에 어디선가 밥 냄새가 풍겨와 눈을 뜨게 되었다. 나가 보니 제자 안회가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안회가 밥솥에서 밥을 한 움큼 집어 날름 자기 입에 넣는 것이 아닌가? 안회는 가장 믿고 사랑하는 제자라서 공자는 더욱 실망했다.

 

평소에는 나를 위하고 공경하는 척하더니 배가 고프니까 저런 짓을 하는군. 같이 굶고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공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안회를 불러 말했다.

 

안회야, 내가 꿈에서 조상님을 뵈었는데 아무래도 이 밥으로 조상님께 제사를 올려야겠다. 제사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깨끗한 밥을 올려야 하는 법이니 어서 준비해라.”

 

그 말을 들은 안회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 밥으로는 아니 되옵니다. 스승님께 드리려고 마을에서 쌀을 얻어다 밥을 지었는데 솥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그을음이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그냥 드릴 수 없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만 조금 떠먹었습니다. 저 밥은 스승님께서 그냥 드시고, 제가 다시 쌀을 구해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안회를 의심했던 자신의 경솔함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정갈한 음식으로 차려야 하는 제사를 빗대어 스승보다 먼저 숟가락을 댄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던 공자는 오히려 믿는 사람을 의심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공자가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한 번도 어긋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실수하고 오해하였던 점을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했기 때문이리라.

 

스쳐간다는 첫 정규앨범 First Love 이후 20163년 만에 발매된 앨범 ‘SEOULITE’에 수록된 이하이 작사-작곡 노래 제목이다.

 

흔들리는 그 바람 소리가

내 맘을 흔들고 스쳐 지나간다

아플 만큼 아파도

난 얼마나 더 아파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넌

 

그렇게 날 스쳐 지나가

시간 지나 계절도 바뀌고

맘은 자꾸만 시려 오는데

나 혼자선 차가워지질 못하나 봐

넌 오늘도 날

스쳐간다

스쳐간다

날카로운 칼에 베이듯

그렇게 넌 날 스쳐 지나간다

흐르는 이 눈물을 또 얼마나 더 흘려야

혼자 남은 게 익숙해질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넌

그렇게 날 스쳐 지나가

시간 지나 계절도 바뀌고

맘은 자꾸만 시려 오는데

나 혼자선 차가워 지질 못하나 봐

넌 오늘도 날

나도 내 맘 잘 몰라서 널 몰랐어

너를 힘들게 해서

많이 아프게 해서

더 미안한 마음뿐

난 고마운 마음뿐

그래 이제 날 떠나면 다신 볼 수 없지만

 

너를 그리고 또 그리워할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넌

그렇게 날 스쳐 지나가

너와 내가 변해버린 뒤로

내 눈물은 멈추질 못해

아직도 우린 서로를 모르나 봐

넌 오늘도 날

스쳐 간다

 

고려 중기의 학자 이자현(李資玄 1061-1125)도를 즐기는 노래(樂道吟)’에 나오는 거문고가 있다. 한시(漢詩) ‘삼백수 5언 절구편의 평역자 정민의 말을 인용해보리라.

 

푸른 산에 머물러 사니

전해오던 거문고 있네.

한 곡 연주 문제없지만

알아들을 사람이 없네.

 

가주변산잠 종래유보금(家住碧山岑 從來有寶琴)

불방탄일곡 지시소지음(不妨彈一曲 祗是少知音)

 

푸른 산에 집 짓고 산다. 하는 일 없이 도()를 즐긴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걸림이 없다. 하늘에 구름 지나듯 생각이 이따금 스쳐간다. 거문고 가락에 실어 띄우지만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세상 사람이 몰라도 도는 도다. 말해 모를 소리 하기보다 그저 저 푸른 산의 함묵(緘默)을 안으로만 머금고 싶다. 사람들아! 가락 없이 울리는 내 거문고 연주를 들어보아라. 그 가락에 산이 춤추고 시내가 노래한다. 새가 날고 꽃이 핀다. 우주에 편만(遍滿)한 어느 것 하나도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이 시의 제목 도를 즐기는 노래(樂道吟)’는 내 몸이면서 내 마음이고, 몸 가는 대로 맘 가는 대로 타는 가락이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의 노래로 내 삶이요 도()가 되는 것이리. 평역자의 표현 그대로 하늘에 구름 지나듯 스쳐가는 게 우리 인생아니던가!

 

방송인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네 잎 크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죠. 우리는 네잎클로버를 따기 위해 수많은 세잎클로버를 버리곤 해요. 그런데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뭔지 아세요? 바로 행복이랍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 속에서 행운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요?”

 

김정한 시인의 잘 있나요 내 인생우리 함께 음미해보자.

 

욕심을 버리니

스쳐가는 바람에도

고마움을 느끼고,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도

귀하게 느껴졌으니까

집착을 버리니

기다림도 그리움이 되더라.

 

정녕코 편집(偏執)이나 소유욕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 가슴 채울 때 우린 각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이리.

 

우리 모두 스쳐가는 바람,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어라.

 

간다 간다 스쳐 간다

너도 나도 스쳐 간다

바람 같이 스쳐 간다

우주 만물 모든 것이

스쳐가는 바람이어라

 

분다 분다 스쳐 분다

너도 나도 스쳐 분다

바람 같이 스쳐 분다

우주 만물 모든 것이

스쳐가는 사랑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 통역관


편집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6 09:03 수정 2020.09.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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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