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저마다의 운명으로

신연강



한 출판사 대표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쓰임 받지 못해, 종국에는 재가 되어갈(사람이나 책이나 종국엔 같겠지만) 운명에 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했지요. 그런 점에서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책은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물음이 다시 솟아났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빌림을 당하는 책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태어났으나, 세상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폐기처분당하는 책들은 종잡아 전체 출판사에서 하루에 몇만 권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정돈된 어느 서점에 꽂혀 지나가는 눈길을 받는 책은 정말 행복한 책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모든 책은 저마다의 운명을 지닌다. (Habent sua fata libelli)”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은 독자의 손이 수없이 닿아서 닳아빠지는가 하면, 어떤 책은 거친 손에 의해 내던져지고 찢기어 속살이 허옇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 되면 독자의 사랑을 받았기에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책은 태어나는 순간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내 신간 매대에 잠시 머물다 헐값에 팔려 가기도 합니다. 그나마 이처럼 주인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주인을 찾지 못한 책은 폐지로 실려 갈 것입니다.

 

출판사 대표는 물류창고 바닥에 처박혀 몇 년째 햇빛도 못 보고 울고 있는 책들이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글을 쓰기 위해 보듬고 있는 책들은 매우 행복해 할 것이라 했습니다. 반면 이런저런 이유로 창고에 죽치고 있는 책들은 서러움과 슬픔을 안고 곧 사라지겠지요.

 

글의 중량이 아니라 종이의 중량으로 평가받는 슬픔은 클 것입니다. 그 불쌍한 책들은 출판사 창고로부터 곧 트럭에 실려 이사를 하겠지요. 덤핑 가격에 중고 책방으로 팔려 가는 경우라면 그나마 명을 연장하는 것이겠지만, 고물상이나 기타 폐기장으로 실려 가는 경우라면 이름값은커녕 몸값조차 건지지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책의 평가는 결국 무게로 결정된다고 할 것입니다. 책이 감당해야 할 무게. 그 무게를 알게 되는 독자의 마음 또한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책이 글의 무게로 평가받는다면 그 책은 책으로서의 소명을 다한 것입니다. 반면 책이 중량, 즉 종이 무게로 평가받게 될 때, 책은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글의 무게로 평가받아 본연의 사명을 다한 책은 얼마나 환히 웃겠습니까. 세상의 수많은 책. 그 책들 모두 독자의 역량에 따라 운명을 달리하는 것이니, 독자의 책임 또한 크게 느껴집니다. 출판계에 회자하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독자의 능력에 따라 책들은 운명을 달리한다.”

Pro captu lectoris habent fata sua libelli.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imilton@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07 11:34 수정 2020.08.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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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