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사랑당(黨) 해심당(海心黨) 코스미안당(黨) 만들어 보리

이태상

 

세상이 새로운 기원을 맞고 있다. 코로나 이전 Before Corona BC와 코로나 이후 After Corona AC.

 

미국만 보더라도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 최초의 타블로이드 (대중지) 뉴욕 데일리뉴스의 편집국이 폐쇄된다. 뉴욕타임스는 2020813일 데일리뉴스를 소유한 미디어그룹 트리뷴 퍼블리싱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물리적 사무공간의 필요성을 재평가하게 됐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만으로도 신문 제작에 큰 이상이 없다는 판단 아래 편집국 사무실 영구 폐쇄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코로나19로 홈오피스(Home Office)가 주택 매입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로 작용하고 있으며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은 이제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고 있다. 미국의 대형 패션유통 업체 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여행사와 항공업계는 물론이고 식당과 소매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아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엄청난 위기 상황에서도 성장기회를 포착하는 기업들이 '(FANG)'이라고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과 마가(MAGA)인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 테크놀로지 기업들로 이들 기업의 서비스와 플랫폼 없이는 쇼핑도, 원격 근무도, 교육도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미리 내다 본 것이었을까. 30년 전(1990) 출간된 저서 '현실은 전과 같지 않다(Reality isn't what it used to be)'에서 저자 월터 트루엣 앤더슨(Walter Truett Anderson, 1933 - )"모든 게 변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어쩔 것인가)? (What if everything changed and nobody noticed?)"라고 묻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코로나바이러스 덕(?)에 사람들이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으리라. 미국의 저명한 정치과학자인 앤더슨은 이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신자(信者)라기 보다 믿음의 소유자들이다. 쉽사리 또 자주 전향(轉向) 개종(改宗)하는. 종교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도 한 종교뿐만 아니고 여러 종교를 통해 찾는데 현대식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거나 또 다른 것 을 자기 자신에게 맞게 수정 응용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현실이란 상품의 구매 소비자가 된다. (다른 상품의 경우에서와 같이 사람마다 갖고 있는 구매력이 다르긴 해도) 그리고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제조업자와 판매업자가 된다.

 

과거의 절대적인 교리나 가치 기준에 대한 신앙이 퇴조(退潮 ) 쇠미(衰微)해감에 따라 기존의 표준 모델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일이 성수기(盛需期)를 맞게 되었다.

 

과거에는 문화적인 양식과 형태를 갖춘다는 것이 신비 속에 싸여 있었으나 지금은 좋든 싫든 간에 민주화되어 개개인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자신의 신원(身元)과 현실을 만들어 내고 현실이란 새 상품의 기업가들은 새정치, 새경제, 새문화, 새과학, 새철학, 새종교 등 새로운 제품을 창조 개발하는데 신바람이 난다."

 

이 얼마나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우리 각자 제정신 좀 차리고 생각해 보자. 세상에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장자, 최제우, 문선명, 또는 마호메트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하나뿐 전무후무(前無後無)의 존재 아니겠는가. 너와 나를 포함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모두가.

 

그렇다면 너는 너, 나는 나로서, 너대로 나대로, 너처럼 나처럼, 너같이 나같이,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너는 네 식으로 나는 내 식으로, 각자가 저마다 제각각의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제 삶을 제 뜻대로 살다 죽을 일이지. 그렇지 않고 무조건 덮어놓고 다른 사람 그 누구를 흉내 낸다는 것만큼 어설프고 부자연스러운 억지와 자아상실, 자아망각, 자아배신, 자아모욕, 자포자기가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그 아무리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점, 본받을 점이 많다 해도 그 모두가 참고사항일 뿐이지, 그대로 전부 다 너나 나에게 꼭 들어맞을 수 없고 또 그러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으리라. 사람이 다르고 가는 길이 사람마다 다 다른데 네 숨은 네 호흡에 맞게, 내 발걸음은 내 보조에 맞게 할 일이 아닌가.

 

그러니 누구나 제각기 다 그 아무개일 뿐이지, 스스로를 크리스찬이다, 마호메트교도다, 불교신자다, 통일교신자다, 아니면 좌파다 우파다 하는 것은 자기모순의 자가당착이 아니랴. 새도 양쪽 날개가 있어 날아가는데 어떻게 한쪽 날개만 고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시인이다, ‘문인이다, ‘수필가작가다 아니면 애국자애처가인도주의자페미니스트다 하는 것이 참으로 우습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다 세상 사는 동안 때와 장소, 형편과 사정에 따라 여러가지 수많은 일을 하고 여러가지 다른 역할을 맡게 마련인데, 그 누구나 숨 쉬듯 시를 쓸 때도 글을 쓸 때도 있고, 그 누구나 제 가족과 이웃, 제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지사(當然之事)이고, 사람이면 그 누구나 다 사람답게 사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텐데 쥐뿔나게 그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같잖게 시리.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사람의 말소리 몸짓을 흉내 낸다고 앵무새나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예수나 석가모니의 말씀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그들의 행적을 뒤밟아 본들 너나 내가 너 또한 나 또한 예수나 석가모니가 될 수도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될 일이리라.

 

아무리 부모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라도 너는 너의, 나는 나의 고행을 하고 각자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제각기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만의 깨달음을 얻어 자아실현 자아완성을 도모해야 할 일 아닌가. 왜냐하면 자아발견을 통해 이웃을 발견할 수 있고, 자아실현을 통해 참된 이웃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

 

이럴 때 비로소 너와 나를 분간할 수 있고 또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마치 갓난아이가 점점 눈을 뜨고 조금씩 걸음마 하며 배워가듯 나 없이 네가 있을 수 없고 너 없이 내가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리라.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반세기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빙산이 녹아내려 전 세계가 탈냉전시대를 맞은 세상에 별천지 절해고도인양 오직 홀로 아직도 동토인 한반도에서 꼭꼭 숨어 동면을 즐기고 있는 굼벵이들 가운데 앗싸! 호랑나비 아니 호랑낭()(임수경, 1968 - )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가 철창 속에 갇혀 있던 시절 당시 재독(在獨)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씨 작품이 무대 배경음악으로도 쓰이지 못하게 되어 음악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는 국내 소식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전 세계 음악계에서 정상급 작곡가로 인정받는 그가 75회 생일을 맞게 되자 독일과 일본이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1992년 베를린에서 대대적인 윤이상 음악제가 열렸지만 그런 그의 작품이 조국인 한국에서는 비공식적인 미해금상태(未解禁狀態)’로 묶여있다는 당시 신문보도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유구무언(有口無言)으로 비통해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처럼 통일되기에는 멀어도 한 참 꽝꽝 멀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프랑스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1916-1996)이 한 말처럼

 

인간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아 그 뿌리가 비옥한 땅속에 있어야 한다. 만일 머리가지만 있고 (가슴) 뿌리가 없다면 공허한 헛소리나 반복할 뿐,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아무 것도 창조하지 못한다.”

 

이처럼 건전하고 건실한 철학을 가진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 만큼 현명하고 자유로운 프랑스 국민이 몹시 부러웠다. 어느 나라고 그 나라 국민 수준만큼의 정부와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었다. 우리나라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지만 용이 날 만큼 깨끗한 개천이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이 맑지 않으랴.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우물 샘 말이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인기 있는 사람은 꼴루쉬(Coluche 1944-1986)란 코미디언이었다. 벌써 고인이 된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권력을 휘두르는자들 눈에 가시라고 자칭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허황한 권력과 권위주의를 조롱하면서 위정자들이란 본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을 제물로 삼아 그들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도모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풍자, 해학, 재담, 쌍욕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 해괴망칙한 복장에다 기성 괴성까지 내며 이상야릇한 몸짓으로 정치인들을 묵사발 만들어 시청자들을 웃겼다. 그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황을 비롯 영국의 왕실 가족들, 경찰 그리고 불친절하고 괜히 콧대가 센 프랑스 사람 자신들까지 놀려댔다. 그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골든아워 프로그램을 독차지했고 언론에선 인종차별, 빈곤 등 제반 사회문제에까지 그의 의견을 인터뷰 기사로 보도했다.

 

신문마다 만인지상(萬人之上) 꼴루쉬무소부재(無所不在) 꼴루쉬란 제목으로 그의 언행을 소개했고, 르 몽드지는 그를 () Saint 꼴루쉬라 불렀으며 또 다른 일간지 리베라숑은 프랑스 국민을 가장 즐겁게 하는 인물로 꼴루쉬를 꼽았다.

 

우리는 정치라는 단어의 숨은 참뜻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사람들이 더욱더 행복하도록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다. 예술인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삶을 밝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웃기고 또 사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도록 노력한다고 그는 말했다.

 

꼴루쉬는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주는데 그치는 단순한 코미디언이 아니었다. 어느 정치인 종교인 사회사업가 이상으로 그는 자신이 직접 발 벗고 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이면 프랑스 곳곳에 인정식당을 차려 실업자들과 극빈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했다. 파격적인 그의 스타일과 감동적인 그의 선행에도 감탄할 일이지만 이와 같은 코미디언을 열광적으로 수용하는 프랑스 정치인들의 성숙도와 국민의 민도가 너무너무 배아프도록 가슴 저리게 부러웠었다,

 

또 그 얼마 전 이탈리아 총선에서 사랑당후보로 출마할 것을 선언한 포르노 영화배우들 사진이 국내외 각 신문에 실렸었다. 그 가운데 한 미녀 스탈러 양은 걸프전쟁 때 이라크를 침공, 그곳에 있던 수많은 서방 인질들을 억류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 이라크 대통령에게 인질들을 석방한다면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본명보다는 라 치치올리나(Cicciolina - little chubby 란 뜻)라는 이름의 포르노배우로 더 유명한 당시 35세의 일로나 스탈러 (Ilona Staller, 1951 - )양은 이탈리아 진보당 국회의원으로 나는 후세인 대통령이 인질들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그와 잠자리를 갖고 싶다. 전쟁보다 사랑이 좋다고 밝히고 그가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나는 그에게 최대 최고의 Sex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유혹했다는 신문 보도였다.

 

말이야 허울 좋게 한 울타리라고 자유세계민주주의를 표방(標榜)한다는 선진 서방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이탈리아에서와같이 사랑당이 생기고 사랑선수들이 정권을 잡게 되어, 말뿐인 이름만의 자유 세계,’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추게 되길 우리 모두 빌어 마지 아니 할 일 아닌가. 그동안 막강한 을 행사해온 군수산업 총기생산업자의 조종을 받아온 허수아비 같은 용병(傭兵) 정치인들을 다 몰아내고, 말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영국에서 크게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런던 남쪽 교외에 사는 창녀 씬티아 페인(Cynthia Payne 1932-2015)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이 집안에서는 남녀 69명이 알몸으로 크리스마스 Sex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이 파티에 온 손님들은 입장료로 영국돈 25파운드짜리 식권 한 장씩을 사서 점심 식사와 술을 들고 도색영화와 Sex-Show를 보며 마음껏 힘껏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온 남자 단골손님들은 영국 사회의 높으신 분들로 귀족을 비롯해 성직자(聖職者/性職者), 신부(神父/汛夫), 법조인 판-검사, 변호사, 정치인, 실업인, 국회의원, 사장님, 대학교수 등이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이 집에는 53명의 남자와 16명의 여자가 있었고, 한 쌍의 남녀가 시범 성교를 막 끝낸 뒤였다. 2층에 있는 방마다 한 쌍 혹은 두세 쌍의 남녀가 성교를 하고 있었고 방 밖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남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래층 거실에 서는 남녀 여러 쌍이 혼음(混淫)을 즐기고.

 

남자들 이름은 밝혀지지 않은 채 이 집의 마담이라 불리는 당시 46세의 씬티아 페인만 재판을 받고 18개월 징역에다 벌금 4천 파운드를 물게 되었다. 경찰이 4개월을 두고 이 집을 지켜보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있는 이 Sex 파티에 총 249명의 남자와 50명의 여자가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

 

법정에서 씬티아 페인의 변호인은 모두들 자발적으로 원해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지적, 남자들은 하나도 벌하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봉사한 여자만 벌하는 이 위선적인 사회제도와 법제를 개탄했다. 고객 중에 한 사람이 밝힌 바로는 이러한 Sex 파티가 10여 년 아무 탈 없이 계속되어 왔는데, 고객 중에 고위 경찰 간부도 끼어 있어 보호받아온 것 같다고. 그리고 그곳에 오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아마추어들로 돈보다도 Sex를 즐겨서란다.

 

당시 영국 창녀노조의 항의는 물론 국회에서의 열띤 발언 등 일반 시민들의 반응도 탈선한 신부 이야기에 수군거리던 전통적인 태도와는 크게 달랐다. 그러나 중벌을 내린 재판장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자문했어야 할 일이었다. 벌이 죄에 합당했는가?

 

이 재판이 미국에서 있었고 1991년에 있었던 아니타 힐(Anita Hil,1956 - )과 미국 대법관 후보였던 클래런스 토마스(Clarence Thomas, 1948 - ) 사이의 성희롱 사건에서 밝혀진 대로 보통 포르노는 물론 사람과 동물이 성관계하는 것까지 같이 보자고 했었다는 토마스 판사가 재판장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권태로움과 무료함의 등성이에 올라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누가 묻지 않더라도 제각기 한 번쯤 자문해 볼 일이리라.

 

너라면 어쩌겠나? 네 인생을 처음부터 새로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풍자 해학적으로 비유해서, 즐거움을 좇아 좀 더 현명하고 솔직한 길을 택하리라. 딴 사람을 잡아 등쳐먹는 등치고 배문지르며 간 내먹는직업보다 차라리 정직하게 내 몸과 마음, 정신과 혼을 몽땅 다 팔아, 나도 즐겁고 너도 즐겁게 해주는 남창(여자로 태어났다면 창녀)되어 난 너보다 거룩하고 고상하며 깨끗하다(Holier Than Thou)’는 독선과 위선에 또 독과점적인 일부일처나 일부다처 아니면 일처다부에 반기를 든 기수로서 박애주의를 실천궁행(實踐躬行)해 보리라. 라 치치 올리나처럼 사랑당(),’ 아니 해심당(海心黨),’ 코스미안당()’ 만들어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전) 코리아타임지 기자

전) 코리아헤럴드 기자

현)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15 10:04 수정 2020.08.1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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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