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삶의 향기] 광화문 연가

김희봉


새벽바람이 차다. 여느 때처럼 아내와 가볍게 포옹하고 출근길에 오른다. 머릿속엔 치러내야 할 일들이 타래처럼 얽혀있다. 이십 년도 넘게 다닌 직장이지만 한 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업무들을 말과 정서가 다른 이방인들과 해결해 나가는 게 여전히 수월치 않다.

 

순간, 아내와의 포옹의 온기를 생각하며 ! 누군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가방을 여니 생일 카드와 함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CD 재킷이 보인다. 잊은 지 오래였던 이문세가 얼마 전 북가주에서 콘서트를 할 때 아내가 사둔 듯했다. 그때, 그의 노래를 들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줄 알았던 옛날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노래란 옛 추억을 한순간에 눈앞에 불러오는 타임머신이다. 어쩌면 노랫말 한 소절로 수십 년 화석처럼 굳어진 마음이 눈 녹듯 녹아버리는지 모르겠다. ‘광화문 연가를 들으며 20대에 처음 보았던 아내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광화문은 내 젊음의 텃밭이었다. 지금은 10여 차선 휑뎅그렁한 아스팔트 광장으로 변했지만, 그때 광화문 거리엔 효자동행 전차 종소리가 울렸고, 그늘 깊은 은행나무들이 싱그럽게 자랐다. 화창한 토요일 방과 후, 친구들과 담쟁이 넝쿨 진 경복궁 담을 끼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은 멋진 세상으로 뚫린 희망의 중앙통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나는 광화문에 있는 새문안교회에서 뼈대가 자랐다. 훗날 경실련을 창설해 시민운동을 주도한 S 형이 대학부 리더였는데 우리는 모임이 끝나면 광화문 뒷골목의 다방과 막걸리집을 전전하며 끝없이 떠들고 고뇌했다. 그와는 공대 기숙사 룸메이트이기도 했는데 기계과 수석으로 들어간 수재가 기독 학생 운동가로 변신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혼란스러우면서도 흠모했었다.

 

아내를 만난 것도 광화문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미대와 공대생, 마지막 미팅을 여왕봉 다방에서 했었다. 아르바이트에 쫓겨 표도 못 샀던 나는 친구가 준 티켓을 들고 마실 가듯 나갔다. 무슨 인연인지 아내도 남의 표를 들고 왔다고 했다. 선인장이 그려진 3번 티켓. 그날 눈발이 휘날리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나는 이 인연을 어떻게 서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열변했다. 눈이 예쁜 아내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예배당

그때 아내는 이북에서 피난 나오신 부모님이 동향인들과 세우신 남산 밑 조그만 교회에서 찬송가 반주를 했었다. 나는 친구 패들을 데리고 수요 저녁 예배 때마다 개근했다. 유복하고 착실하게 자란 아내는 나 같은 떠돌이가 나다니는 큰 세상을 동경했고, 대학 때부터 기숙사로 전전하던 나는 작고 아늑한 남산 밑 교회당 같은 가정을 꿈꾸었다.

 

20대 중반, 흔들리는 젊음이었지만 우리는 미국 유학을 오느라 서둘러 결혼 승낙을 받았다. 떠나면서 우리들 청춘을 광화문에 고스란히 놓고 왔다. 효자동 전차도, 여왕봉 다방도, S 선배도, 남산 밑 예배당도, 덕수궁 돌담길도 다 놓고 왔다. 그 후 세월 따라 광화문은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고 다른 세상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어젯밤엔 우디 앨렌이 만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스 (Midnight in Paris)”를 아내와 보았다. 현실에 적응 못 하는 한 젊은 작가가 꿈을 찾아 파리에 왔다. 그는 자정마다 성당 앞을 지나는 자동차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다. 20년대 파리에서 젊음을 보냈던 헤밍웨이, 피카소, 장 콕토 들과 교우한다. 감격한 그는 계속 그곳에 머물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그의 우상들도 자기 세대에 만족지 못하고 더 오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세대건 공허한 옛꿈을 그리워하며 산다는 걸 깨달은 젊은이는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다. 오늘과 내일의 꿈을 위해 살기로 한다.

 

내게도 세월 따라 떠난 줄 알았던 옛날이 노래 한마디에 실려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옛 광화문의 추억은 지나간 연가다. 생각해보면 이국땅에서 가정을 일구며 억척같이 살아가는 오늘이 더 소중하고 치열한 내 삶의 노래이다. 나이 들며 아내와 서로 의지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야 할 내일도 내가 부를 사랑 노래이다.

 

옛날이 생각나면 가끔 광화문 연가를 들으며 지금 내 모습 이대로 이곳에서 한평생 살기로 한다. “미드나잇 인 광화문행 타임머신이 전차 종소리를 내며 곁을 지나간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김희봉 danhbkimm@gmail.com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0.29 11:13 수정 2020.10.29 11:2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명희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