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헤싱헤싱, 신정아

Vivre Sa Vie

나의 하루는 그날의 날씨를 체크하는 것과 그날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날은 날씨가 매우 맑음이었고 그래서 Pink MartiniHang On Little Tomato를 들었다.

 

그리고 빨래를 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빨래를 널어 두고 그 옆에 누웠다. 찹찹한 수분과 은은한 세제냄새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계절의 변화를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지금 북촌에 살고 있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시야가 트여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고개를 높이 쳐들지 않고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려한 빌딩 숲은 여유로움과 멍 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북촌에 살면 이런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환경들이 나에게는 수많은 영감의 밑천이 된다.

 

아오마메는 스무 살 이전부터, 스스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리칼이 헤싱헤싱한 중년 남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문학동네’ P122.

 

헤싱헤싱. 내가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라는 소설을 읽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이 구절이 책을 다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렷이 기억이 날 정도로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헤싱헤싱이란 촘촘하게 짜여 있지 아니하고 허전하고 헐거운 모양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내가 나의 브랜드 이름을 헤싱헤싱이라고 지은 이유는 이 단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이름처럼 사람들이 나의 작업을 통해서 삶의 여유를, 아니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브랜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평온한 삶의 어딘가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달라 보이는 것들, 나는 그것에 집중한다. 늘 곁에 있었지만 너무 익숙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

    

이렇게 일상이 영감이 되고 그때의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런 사진들이 모여 새로운 스토리가 되고 그 스토리는 시즌의 주제가 되어 옷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내가 작업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첫 여정이.

익히 알아 왔던 것이지만 처음 듣는 것 마냥 새롭고, 처음 듣는 것은 처음이라서 더 새롭고, 설레고, 신나고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그 현실적인 문제는 상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사이에 나를 가둬두고 괴롭혔다.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썩 내키진 않지만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

 

나는 고집이 센 청개구리이다. 어렸을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해야만 했던 것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나의 첫 여정이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내 실패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 혼자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고고한 척하다가 끝내 샘에 빠져버린 것이다. 당시에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혼자 뭐가 그렇게 잘났었나 싶다. 부끄럽고 쪽팔린다. 내 좌우명이 미친년은 돼도 망할 년은 되지 말자인데, 정말 미친 듯이 노력은 했었나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내 작업에 대해서 정말 자신이 있고 확신이 있었다면 이렇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정도의 확신과 용기가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확신만 있다면.

 

2

 

말하고자 하는 걸 말하고, 하고자 하는 걸 하는 거야. 상처나 흉터 없이 말이야.”

- Jean-Luc Godard, Vivre Sa Vie (1962)에 나오는 대사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생각의 종류는 다양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정리를 하거나 반성을 할 때도 있고, 내일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저런 것들을 제외하면 쓸데없고 잡스러운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나면 주로 영화를 본다. (요즘 내 잡다한 생각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영화와 문학에 관한 것들이다.) 내 취향이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아서 영화관에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예술영화 전용 영화관을 가거나 집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것이 수요가 많지 않다 보니 최근에는 재정난으로 문을 닫는 곳들도 많다. 재작년쯤 인가 보다. 오랜만에 자주 가던 예술전용 영화관엘 갔는데 평소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다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내용은 재정난으로 더 이상 운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을 아주 잘 아는 친구 하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텅 빈 마음을 달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이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단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독립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나는 내 생각을 하는 독립적인 개체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그건 우리 모두가 똑같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를 자기네들끼리 특이한 사람이라고 명명해놓고 고유명사처럼 따옴표 사이에 가둬두는 것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10명이 한 영화를 보는데 왜 하나의 감상 밖에 나오질 않는 것인가? 그것이 당신의 생각이 맞기는 한 건가? 그 바닥에 저명한 누군가가 써 놓은 감상평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이 마치 처음부터 당신의 생각이었던 것 마냥 치부해버렸던 것은 아닌가? 당신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문득 두려워졌다. 부끄러웠고 불편했다. 나는 내가 매우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의견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 그걸 도마 위에 올려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그래서 요즘은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지 다른 생각을 하든지 간에 그냥 속으로 , 그렇구나.’만 한다. 가끔 이것이 좋지 않은 태도라는 생각을 하는데 너무 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스스로도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감상을 해치고 싶지 않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영향력 있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생각에 미치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 강력한 말 한마디가 나의 생각을 집어삼키는, 마치 내가 틀렸다고 믿게 만드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나는 외부의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할 뿐이다.

 

나는 나만의 생각을 할 뿐이다.

오롯이 내가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다른 생각들에 나를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항상 같은 전시를 기본 두 번 이상 본다. 처음 볼 때는 그 전시나 작가,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철저히 배제하고 감상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아이가 보듯이 순수한 눈으로 오롯이 그 작품에만 집중하고 감상하기 위해서이다. 이때에는 나만의 독특한 견해를 갖고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다음번에는 사전에 그 전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간다. 이렇게 되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난번에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분들을 새로이 알게 되고, 어떤 부분에서 내가 느꼈던 것과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를 비교하면서 내 견해를 더욱더 견고하게 다듬어 간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다.

 

세상에 대한 작은 반항으로 인스타그램을 한다. 내가 올리고 싶은 사진을 올리고, 내가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좋으면 보고 싫으면 보지 말라지.

 

다르다는 것조차 편견 일 수 있다. 다양성에 인색하면 발전이 없다. 또라이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하지 않았던가. 그래, 당신들 말 대로 나는 또라이다. 세상을 바꿀.

 

3

  

요즘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패션디자이너가 뜬금없이 무슨 그림이냐 싶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패션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를 굳이 패션디자이너라는 이름 속에 가둬두고 싶지는 않다. 내 생각을 옷으로만 표현하기에는 표현 방식이 너무 한정적이고, 무엇보다도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의 주제는 헤싱헤싱이라는 옷을 만들었을 때처럼 여전히 나와 내 일상, 그리고 내 주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어느 날 터질 것 같은 지갑 속 영수증을 정리하다가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필요한 무엇인가를 구매하고, 또 쓸데없는 것을 충동적으로 구매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무언가에 과감히 투자를 하고, 아니다 싶으면 환불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나 자신의 소비 행태를 매일매일 쌓이는 영수증을 통해 관찰함으로써 또 다른 방향에서 나 자신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나 혼자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면 주변인들로 범위를 늘려 갈 계획이다. 그리고 내년쯤엔 이러한 주제로 전시를 할 생각이다. 이것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계속 영화를 찍는 이유는 나의 전작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잘못을 고쳐가며 살고 싶다.”

- Joaquin Phoenix

 


전명희 기자
작성 2018.10.13 07:01 수정 2018.10.2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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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