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별밭에서

문경구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힌 별밭에는 내가 걸어온 길이 있다. 나는 그 별들이 밝혀주는 빛을 따라 길을 걸어 지금에 와 있다. 해마다 갤러리들이 펼치는 새로운 작품들을 감상하러 일 년에 봄, 가을 두 번의 일정으로 찾아가는 캘리포니아, 북가주 바닷가 도시 카멜에 가면 바닷내음이 풍기는 진짜 별들이 나를 반긴다.

 

저녁노을을 바라본 지가 얼마쯤이었나 헤아려진다. 사람들 발걸음이 차츰 줄어들고 거리가 핼쑥해지기 시작하면 어둠이 허락하는 만큼 내게 쏟아져 내리는 별빛이 있다. 그동안 별들을 잊고 살았던 나의 황폐한 모습도 그곳에서 찾게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영원히 내 가슴에서 꺼지지 않고 비치는 아픈 별의 빛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나를 버티고 살게 한 내 삶의 지혜로웠던 아픔의 별이었다. 세상이 찢어질 것처럼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 별들이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 있어도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어 빛난다. 난생처음으로 선택한 회사로부터 받은 합격 통지서에서 얻은 영광의 그 순간에는 하늘에 별들이 모두 나의 별처럼 여겨졌다. 그때는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밟아야 할 회사가 원하는 수순이 많았다.

 

제출서류 중에는 나를 밝히는 주민등록등본을 시작으로 신원조회를 마쳐야 하고 나를 대변해 줄 보증인도 찾아야 하고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받으러 학교로 동회로 뛰어다녀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삶의 과정에서 모든 별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었지만, 그 별 속에 묻혀있던 생인 손가락의 아픔도 그때 얻게 되었다.

 

하늘의 별을 훔쳐쥐고 펴지 못했던 그 생인손의 상처였다. 졸업 증명서와 생활 기록부를 떼기 위해 학교를 찾아 나섰던 일이었다. 학창 시절엔 그렇게도 웅장하고 아름답던 학교 빌딩은 그동안의 세월 속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노인의 몸처럼 왜소해 보였고 봄이면 어김없이 개나리꽃 노란 물감을 부어 놓았던 교정길도 젊음이 보이지 않았다.

 

생활기록부를 떼어 보면 그날의 캠퍼스를 배경으로 나의 학창시절 얼굴과 그때 들었던 말들이 모두 전설처럼 등장해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말끝마다 세상은 두리뭉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 해주던 몇 학년 때 담임선생 훈시도 있었고 3학년 때 담임선생이 하셨던 말씀, "개도 무는 개가 뒤돌아다 본다"라는 이해하지 못했던 무슨 철학 같은 격언을 깨닫게 된 것은 그 후 숱한 어려움의 시간을 뒤로 한 늦은 나이가 되어서였다.

 

그 말이 바로 그 선생님의 철학이었다는 것도 내가 철이든 뒤였다. 그렇게 민감하고 날카로운 선생님의 깨달음 같았던 세월이 기록부 안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그 후 다시 얼마만큼 갔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천방지축으로 떠들어 대던 학생들을 향해 눈 한 번 위로 치켜뜨면 고양이 앞의 쥐 신세를 쉽게 만드는 담임선생님이 써 놓았던 나의 생활기록부를 읽던 순간이었다.

 

나는 무는 개의 입보다 더 무섭게 설명해 놓은 생활기록부 속에서 떨어진 별똥별이 되었다. 나를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한 그 기억의 아픔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했던 생활기록부에는, “성실하고, 성적이 양호하고, 부모의 향학열도 높으나 집안이 너무 가난함이라고 두 말도 할 것 없이 냉정하게 적혀진 어린 시절 속 나를 읽었다.

 

천지가 개벽을 하고 난 후에도 그 말은 틀림없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 말 중에 가난했다는 말 앞의 그 "너무"라는 말의 의미가 나의 자존심을 처참하게 짓밟아 급물살이 흐르는 절망의 절벽 아래도 밀어 버렸다. 전혀 없었던 말을 누군가 고의로 몰래 써 놓은 것 같았다. 그때는 어딜 가나 가난이 어울리던 세월이었다.

 

위로부터 대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중학생 모두 줄지어 선 당연한 가난이었기에 아무도 가난한 하늘의 별을 원망하지 않았지만 너무라고 적혀진 생활기록부가 내 삶에 너무 힘든 존재가 되었다. 가난하다는 말 앞에 불도장으로 찍혀진 그 너무란 말을 지워버릴 수 없었던 나만이 알고 있는 생인손의 아픔이 되었다. 지을 수도 고쳐 쓸 수 없는 아무도 모르는 운명 같은 생활기록부를 들고 힘들게 한 발씩 발걸음을 떼었다.

 

학교 문을 나서자 긴 골목에는 옛날처럼 익숙할 것 같은 타인들이 그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펄펄 날 것 같던 사기의 날개가 단숨에 꺾여져 나간 나는 더 이상 나를 수 없어 버스정류장 앞에서 흘린 눈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날카롭던 선생이 본 나의 가정환경이 모두 옳아 한마디도 따져 물을 수가 없어 슬펐다.

 

혀를 깨물고 죽는 길을 선택할망정 용서하기 싫은 나의 자존심의 상처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알고 있을 하늘의 별들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었는가. 그냥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속 나를 시인하지 못한 잘못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다행스러운 별들이 더 많았다.

 

내가 받아 든 영광의 인생이라는 상패도 많다. 그토록 용납하기 싫었던 가난이란 별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이처럼 아픔다운 별의 세상을 볼 수가 있었을까. 못사는 사람이 더 많았던 하늘에도 별들은 틀림없이 빛나고 있었다. 그때까지 마음의 쥔 손을 펴지 못하고 앓았던 생인손의 아픈 철학을 깨달았다. 꼬옥 쥐고 살았던 손을 펴고 하늘을 쳐다보니 그 또한 아름다웠다고 별은 말해주고 있다.

 

슬픈 별은 슬픈 데로 잊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말한다. 내가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별똥별이 되지 않게 하려고 별은 나를 지켜봐 주었다. 나에게 별이 없는 밤하늘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나의 별을 향해 나서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사람은 흙을 주워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배워야 한다고 하신 어머님의 말씀은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불멸의 별이 되어 내 가슴에 있다.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가난의 별을 용서하는데 평생을 보낸 어리석음이었다. 슬픈 별일수록 더 찬란히 빛나는 것을 깨닫게 한 오늘도 나는 별밭에 심어진 별들을 기억하고 있다.


 

[문경구]

화가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5.11 04:25 수정 2021.05.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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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