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아카시아 향에 스미다

신연강

사진=신연강


해지는 저녁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스칩니다. 아스라한 향입니다. 잊혔던 향이 문득 되살아 기억을 거슬러 오릅니다. 오늘처럼, 바람이 담장 위에서 감나무 잎을 흔들며 놀고 있는 날에도, 그 향기는 눈을 틔우고 코를 간질이며 가슴에 들어옵니다. 요즘처럼 마스크를 쓰고 걷는 날에도 여전히 뇌리에 각인됩니다.

 

오월은 아카시아꽃이 만개하는 계절. 물론 장미도 얼굴을 내밉니다. 비록 엘리엇(T.S. Elite)은 사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사월의 라일락으로부터 시작해 아카시아와 장미로 이어지는 꽃의 릴레이는 이 계절을 가장 화사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도서관 길을 오르다 야트막한 야산에 피어있는 아카시아 군락지를 보고 잠시 발길을 멈춥니다. 그 향에 스미고 싶어집니다. 요즘처럼 건물이 촘촘히 들어서고, 골목 안까지 길이 매끄럽게 포장된 시대에 아카시아가 설 곳은 없습니다. 게다가 효용 가치로 보면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지요. 목재로 또 관목으로도 적합지 않기에 우리 주변에서 가차 없이 베임을 당해 풀숲에 버려지기 일쑤였습니다.

 

다만, 그 은은한 향은 오래도록 뇌리에 각인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버림받았어도, 아카시아는 꿀벌에게는 아주 소중한 자원입니다. 배를 불려주고,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꽃이니까요. 꿀벌을 먹여 살린 그 향은 달콤한 꿀이 되어 우리 인간의 입을 즐겁게 해줍니다.

 

아카시아 향이 은은히 퍼지는 오늘, 잠시 추억에 젖어봅니다. 젊은 날 손을 잡고 함께 걸었던 친구, 그 길을 떠올리면서, 나지막이 퍼지던 그 향을 기억에서 소환합니다. 장미같이 화사하다가도 떨어진 꽃잎의 창백함이 일순 얼굴에 비치던 소녀. 시간과 공간 속에 다시 만날 줄 알았던 그 사람은, 시간의 바퀴를 무수히 굴린 뒤 살아있는지 어떤지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월의 궤적을 한참 따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오래전 그날은, 아카시아 향이 스미는 날이었습니다.

봄비가 잔잔한 오늘은, 아카시아 향에 한없이 스미는 날입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5.18 12:48 수정 2021.05.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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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