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스핑크스의 코

김희봉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숫자를 표기할 때, 백만(百萬)은 아주 놀라 두 손을 번쩍 든 사람 모양으로 그렸다. 천만(千萬)은 놀라다 못해 뒤로 자빠지는 사람 모습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수평선에 걸린 태양처럼 보이기도 하는 상형문자를 기록했다.


BC 3,000년경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상형문자는 나폴레옹 군대가 1799년 이집트 원정 때 나일강 하구 로제타부근에서 발견한 석비에 새겨져 있다. 공병 장교였던 샴폴리온은 공사장에서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발견하곤 평생을 바쳐 이 석비에 쓰인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수천 년 전에 3종의 문자가 새겨진 이 같은 비석을 남긴 것도 감탄할 일이지만, 그 당시 천만 단위까지 숫자 개념을 가졌던 이집트 문명의 뛰어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놀랄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2개가 고대 이집트 산물이다. 나일강 하구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밝혀주던 등대가 그 하나이다. 높이 140m의 거대한 이 대리석 등대는 수천 년 전 당시 벌써 수압 장치를 설치해 지붕까지 땔감을 실어 올렸다고 한다. 1,400년 동안, 수십 마일 밖까지 뱃길을 밝혀주다가 지진으로 침수되고 말았는데 고고학계의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인류 최대의 불가사의, 이집트의 피라미드이다. 35개가 남아있는데 그중 쿠푸(Khufu)왕 것이 제일 크고 유명하다. 이 피라미드는 개당 2.5t이 넘는 석회암 블록들을 2백만 개 이상 모아 만들었다. 4,500년 전, 철기 도구가 없던 시절, 구리 정으로 석회암을 잘라 순 인력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매년 30여만 명이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피라미드는 왕들의 무덤이었다. 영혼 불멸을 믿은 이집트인들은 왕들의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피라미드 속에 감추고 승천하기를 기다렸다. 피라미드가 삼각형인 것도 종교적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삼각 변은 태양에서 내리는 빛의 경사 방향을 상징했는데, 이 피라미드의 경사면을 타고 왕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들, 피라미드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스핑크스(Sphinx)이다. 사람 머리에 사자 형상을 한 높이가 20m나 되는 거대한 조각물이다. 스핑크스를 처음 발견한 일화가 상형문자로 표기돼 아직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BC 1,400년경, 토토메스 4세가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낮잠을 잔 곳이 모래 무덤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던 스핑크스 머리 위였다고 한다. 꿈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자기를 파 내주면 평란 통일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스핑크스를 모래에서 꺼내준 후 그는 이집트를 통일했다. 그 후에도 큰 모래폭풍이 불 때마다 스핑크스는 몇 번씩 모래 깊숙이 잠겼다가 다시 파헤쳐지곤 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래폭풍이 자연의 한 보전 방법이었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스핑크스와 여러 고대 이집트 조각물들이 수천 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 모래 더미에 오래 파묻혀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래에 와 사람들에게 노출되면서 그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불과 지난 수십 년간에 일어난 훼손이 4,000년 동안의 손상보다 더 심하다고 이집트 당국은 밝히고 있다.

 

훼손의 제일 큰 요인이 늘어나는 인구와 공해 때문이다. 이집트는 75년 전 불과 2천만이었던 인구가 지금은 1억이 넘는다. 매년 관광객 수도 천 오백만 명에 달한다. 수많은 관람객들 몸에서 나는 땀의 증발로 염분 앙금이 피라미드 밀실 벽에 붙어 벽화들이 손상을 입는다. 또 인구 밀집과 근처 아스완 댐의 영향으로 습도가 증가해 피라미드 석회암이 부식되고 있다. 도시의 폐수도 지하수로 스며들어 석회암 암반을 약화시킨다. 인근 공장과 자동차매연으로 인한 산성비의 악영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 아래 지난 882, 스핑크스 몸체에서 550파운드나 되는 석회암 조각이 갑자기 떨어져 나갔다. 이집트 당국은 이런 속도면 100년 안에 모든 미술품들이, 200년 이내에 모든 건축물들이 사라질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도굴꾼들은 땅굴을 파고 피라미드와 인류의 사적들을 노략질해 왔다.


더욱 통탄할 일은 스핑크스의 문드러진 코다. 스핑크스의 코가 뭉텅 달아난 것은 수천 년 동안 풍상 때문이 아니다. 양차 대전 때 주둔 군대들이 스핑크스 머리를 대상으로 조준 사격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돼 있다. 인간들의 문화 보전 능력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작태다. 만일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런 후대 인간들의 횡포를 알았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어이가 없어 뒤로 나자빠지는 모양을 대여섯 개쯤 연거푸 늘어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김희봉 danhbkimm@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5.28 12:16 수정 2021.05.2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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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