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집착의 정석

문경구

 

작은 역사라도 하나쯤 품고 있을 법한 아담한 영국풍의 집안에 꽉 찬 일상들을 남겨두고 그들은 어떻게 집을 나설 수 있었을까. 뒤따라 나설 수 없던 그들의 부귀영화를 그대로 남겨두고 도대체 어디로 떠나갔을까.

 

제일 먼저 나의 눈에 띈 집 주인, 의사인 남편과 대학교수 부인이 평생 누리고 살던 집에는 남편이 낸 의학연구 논문 발표 때 찍은 빌보드 광고 크기만큼의 사진이 벽에 기대어 있고 그 부인이 저술한 책들이 가득한 서재들을 보면서 오늘 나는 평소의 기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예술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을 것 같은 그들의 손길에 길들여진 고품격의 물건들만큼 값진 인생 서적을 구입한 셈이다. 벽에 걸린 그들의 사진들이 지켜보는 시선들을 외면하고 어떻게 떠나갔을까. 어림잡아 두 사람이 기력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서나 혹은 세상을 그만 하직한 이유가 대부분이다.

 

그다음은 그들이 떠난 장소에 남겨진 모든 물건들을 전문업체에서 신문에 낸 세일광고가 나가고 법대로 살림 정리를 시행한다. 그것이 일상에서 보는 에스테이트 세일을 하는 인생에서의 마지막 사업이다.

 

유명 배우가 살던 집. 정치인, 예술가들이 살다 떠난 집을 둘러보면 그들의 취미생활까지 알게 되는 기회가 흥미롭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사랑하며 살다가 떠나기를 원했을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다 갔을까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떠난 그들이 소장했던 물건들은 유명한 화가의 비싼 그림에서부터 옷. 가구 보석, 부엌살림 속 숟가락 하나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매잔치가 열린다. 한두 명의 보안 요원의 입회하에 물건을 사느라 사람들은 치열한 집착을 하게 된다.

 

주말 아침 커피를 내리고 신문을 펼치며 간단하게 브런치를 즐긴다. 그 시간에 들여다보는 엘에이 타임즈 광고 속에 지금까지 이야기가 모두 펼쳐져 있다. 광고 속에서 찾아보는 에스테이트 세일, 평소 사용했던 가정의 유물들을 파는 광고란이다. 그곳을 찾으면 놀랄 만큼의 다른 사람들이 살다 간 인생의 자취를 보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물건을 사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관광코스를 돌아보듯 그들이 두고 떠난 인생이라는 정신세계의 가치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기쁨이 있다. 그 집안을 장식한 가구들만 보아도 그 안에서 삶을 마친 사람들의 겪었을 일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우연하게는 그들의 인생관에 대한 존엄성이 얼마나 지켜지며 살았는가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번에 찾은 집주인 의사가 해외세미나를 다니며 얼마만큼의 명성을 얻은 사람인가도 사진들이 설명해 준다. 의사의 업적을 설명해 놓은 포스터를 보면서 나의 색다른 인생관으로 그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고가의 장식품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들의 공간이지만 결코 화려함은 아니다. 검소함은 찾아 보기 힘들었으나 고상함은 분명 담겨있는 그들의 집이었다. 나의 감성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과 같을 수 없는 인생이 바로 나의 소중한 인생이라는 것도 그곳에 있다.

 

그것은 떠난 그들보다 값진 나의 인생관을 확인하는 일이다. 여느 사람들의 가정집에서 매일 즐기는 삼시 세끼 살림살이에서 내가 살고 있는 모습까지 모두 같으나 그들은 그 자리에 없고 나는 현존한다. 핵심은 이렇게 많은 부귀영화를 남겨두고 어떻게 집을 나섰을까 하는 생각들로 내가 현존함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들이 모두 써버린 부귀의 어제만 남겨졌을 뿐 오늘이라는 현실이 없다. 하지만 내겐 세상이 아직 버리지 않은 나만의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 있다. 창문을 열면 숲에 우거진 풀 내음의 풍경이 파란 하늘을 몰고 찾아드는 아름답고 고풍스런 집의 삶이라는 기억도 그들에게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다.

 

생의 마지막 장소인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몸만 빠져나갔을 테고 아직 살아있다고 해도 내 삶의 가치와는 완벽하게 다르다. 마지막으로 소유하고 있을 목에 걸고 있는 신분증도 기억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끝내는 그 신분증마저도 허락될 수 없는 인생이라는 무상함의 실체를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집마저 내어주고 난 그들의 텅 빈 가슴을 고가품의 보석보다 더 귀중한 삶이란 것을 배우고 떠나갔을까. 그들이 얼마나 많은 집착으로 평생을 살았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들이 소유했던 물건들을 보면 열정을 넘어 온통 집착으로만 살았던 삶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 집착이 없이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재산의 크기가 산더미 같은 욕심처럼 느껴진다. 물욕에 대한 욕심, 아집을 위한 집착, 이것들이야말로 뛰어난 의사로 살게 한 힘일 것이다. 그들이 일생을 살기 위해 부렸던 집착의 크기는 온 세상만큼 넓은 집을 주어도 다 채우고 말았을 거다.

 

그들에게서 집착이 없었다면 그들은 무엇을 남겨두고 갈 수 있었을까. 그들이 버리고 떠난 집착의 잿더미에서 가치의 불씨를 찾게 하는 시간은 소중했다. 그들이 젊은 날에 즐기던 고전 음악의 전축판에 멈춰진 음악 소리의 기억만이 그들과 함께 떠난 것이 아닐까.

 

티끌 한 점도 추함이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집착이다. 세일에서 번 돈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는 그들의 당부가 광고 속에 깨알같이 적혀진 문구를 보고 알았다.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손해나는 장사를 끝으로 시작도 끝도 집착으로 살았던 그들의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 그것은 아무도 정석을 논할 수 없는 집착이었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6.22 11:21 수정 2021.06.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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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