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나파 밸리

김희봉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온다고 했으니

 

나파 밸리(Napa Valley)의 칠월.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읊조려지는 싱싱한 아침. 나지막하게 굴러가는 둔덕마다 포도 잎새들이 물결치는 진초록 포도원들이 싱그럽다. 밸리 한가운데 복도 마루 같은 29번 도로를 타고 들뜬 마음으로 계곡으로 들어간다. 길가에 하늘을 가리고 높게 선, 잎 많은 고목들. 그 사이로 연이어 늘어선 포도원마다 수천, 수만 그루의 포도 넝쿨나무들이 허리춤만큼 오는 버팀목 크기에 맞춰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다.

 

샌 파블로 만에서 새벽마다 올라오는 촉촉한 안개와 한낮의 뜨거운 햇볕의 정수(精髓)들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싱싱하게 영글어 가는 포도송이들. 그 포도원 한가운데, 불란서 풍 시골 고성이나 프란시스코 수사들의 수도원 같은 양조장 건물들이 아늑하게 서서 유럽의 전원 내음을 잔잔히 풍겨준다. 육사 시인이 읊은 우리 시골 고향 같은 정취와는 사뭇 달라도, 마을 전설이 포도송이에 주저리주저리 열리긴 이곳 나파 밸리도 마찬가지다.

 

나파의 전설은 1850년 초, 얀트(Yount)라는 사냥꾼이 밸리에 첫 농사를 지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파란 이곳에 살던 인디언 말로 풍성한 곳이란 뜻. 이 비옥한 땅에 1880, 첫 포도원, 베린저(Beringer)와 잉글눅(Ingernook)이 문을 연다. 그러나 나파는 유명한 유럽의 포도 주산지들과 경쟁할 만큼 클 때까지, 수십 년 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험난한 길을 걸었다.

 

나파에 처음 유럽 산 포도를 이식했을 무렵, 묘목 뿌리에 끼는 진딧물의 창궐로 포도원마다 크게 실패했다고 한다. 게다가 1920, 미 전국에 대 금주령 (Prohibition)이 선포되면서 나파의 포도원은 거의 도산하고 교회 성찬용 포도주 생산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1933년 금주령이 해제되고 약 50년간의 긴 회복기를 거치면서, 병충해에 강인한 품종개발로 지금은 캘리포니아 산 포도주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포도주 이름은 유럽의 첫 생산지 이름을 딴 일반 명과, 포도 종류에 따른 품종명으로 나뉜다. 백포도주는 프랑스 주산지 이름을 딴 샤블리(Chabli), 또 품종에 따라, 나파 밸리 최고의 특산품인 샤르도네(Chardonnay), 쉐낭 블랑(Chenin Blanc)등으로 불린다. 레드 와인도 벌건디(Burgundy)라는 일반 이름과 함께, 레드와인의 왕으로 치는 캬버네 소비뇽(Carbernet Sauvignon)과 피노 느와(Pinor Noir), 진판델 (Zinfandel)등 유명한 포도 품종이름으로 부른다.

 

우리 일행은 정오 때쯤, 몬다비(Mondavi) 와이너리에 들어섰다. 스페니쉬 풍 건물과 시원한 분수대가 포도원과 잘 어우러져 빈센트 고호의 풍경화, ‘푸른 포도원을 연상시킨다. 애띤 웃음의 안내원이 와인 만드는 과정을 익숙하게 설명한다.

 

"와인은 포도즙의 당분에 누룩(이스트)을 넣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발효시켜 만듭니다. 백포도주는 포도 껍질 없이 즙만 발효시킨 것이고, 레드와인은 껍질과 씨에서 붉은 물과 텍스추어가 깊이 우러나게 한 것이지요. 또 완전 발효시켜 단맛을 다 빼면 드라이(dry) 와인, 포도 단맛을 좀 남기면 감미로운 디저트 와인, 그리고 발효될 때 생긴 탄산가스를 남기면 샴페인이 되지요".

 

오래된 레드와인을 쳐주는 이유가 그 맛 때문이다. 수년 묵은 카버네 소비뇽의 맛은 부드러우면서도 입안 가득히 묵직하고 향긋한 여운을 남긴다. 포도 껍질 속에 있는 떫은 탄닌 성분이 세월이 지나면서 분해되어 나와 그 맛이 한결 순해지고 포도 텍스추어의 익은 향기가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안내원은 나파 와인의 참 맛이 유럽 와인의 맛을 능가함을 강조한다. 나파 특유의 농작 법과 묵힘의 기술에서 우러난다는 것이다. 포도 묘목은 심어서 수확을 얻을 때까지 만 5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나파에선 화학비료로 속성 재배를 하는 대신, 자연농법으로 땅의 신선도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나파의 레드와인의 맛은 특이한 저장술 - 캘리포니아 특유의 오크(Oak) 저장 통에서 포도주를 묵힐 때 참나무 향이 와인 속으로 우러나온다는 설명이다. 포도주 맛이 오크 나무 종류에 따라 다를 정도로 민감하다는 것이다.


포도원 견학을 막 끝내고 포도 향에 한껏 취한 우리들에게, 안내원은 와인의 시음을 권했다. 플룻 곡이 연하게 흐르는 테라스로 그는 여러 종류의 와인들과 함께, 눈이 부시도록 하얀 수건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왔다.

 

"와인은 병 속에 담긴 시()입니다. 먼저 병을 코에 대고 은은한 향내를 맡고, 한 모금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며 와인의 둥근(round) 소나무 향이나 신선한 풋사과 향을 음미해보세요".

 

나는 나파와 한국의 시골이 만나는 곳에 서서 함뿍 젖은 마음으로 육사의 시를 읊어갔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김희봉]

서울대 공대 졸업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김희봉 danhbkimm@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05 11:26 수정 2021.07.0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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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