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5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권정희(논설위원)의 세상읽기 칼럼 <내 몸 이대로 당당하게>에서 필자는 그동안 수십 년 미국 란제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빅토리아 시크릿 Victoria Secret의 아이콘인 ‘에인젤스 Angels’ 같은 몸매가 미의 표준으로 인식돼 수많은 젊은 여성들, 특히 남들 평가에 예민한 10대 소녀들을 가학 수준의 다이어트와 운동 그리고 좌절감으로 몰아넣었다며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뚱뚱하다고 주눅 들던 시대는 지났다. 여성들이 ‘내 몸에 당당’해지고 있다. 아름다움의 기본은 당당함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것이 어디 여성들만의 문제인가. 그동안 백인 위주의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상술商術에 세뇌되어 세계 각국 비백색 인종들, 특히 신체적으로 왜소한 동양인들이 겪어온 외모 콤플렉스와 수모受侮가 아닌가.
지난 2015년 3월 16일부터 닷새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구상Design의 약자) 2015년 회의의 주제는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이었다.
이것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 겸 배우 마돈나가 1991년 출연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제목으로 90년대 전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 마돈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 도발적인 표현과 선정적인 묘사로 크게 화제가 되었던 문제작이다.
2015년 TED 대회는 세계인의 지식 축제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 이 가졌던 각종 통념을 깨보자는 대담한 시도였다. 성역화聖域化됐던 진실眞實에 도전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새장 같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뜻밖의 연사도 있었다. 1997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갔던 장본인인 모니카 르윈스키와 한국계 강연자도 두 명 있었다. 북한에서 6개월간 영어강사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Without You, There is No Us: My Time with the Sons of North Korea’s Elite (2014)’는 책을 쓴 재미 작가 수키 김Suki Kim과 프리랜서 음악가 미나 최Minna Choi였다.
흥미롭게도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의 강연주제는 ‘수치라는 대가 The Price of Shame’란 타이틀의 부적절한 저널리즘이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에서 ‘안전하고 더 좀 감성적으로 배려성 있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 환경을 촉구했다. (She advocated for a safer and more empathic social media environment.)
젊은 날, 내가 신문기자가 되어 받은 저널리즘의 첫 지침이 둘인데 하나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삿거리가 못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삿거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사에 ‘인간미人間味/人間美human-interest’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르윈스키 스캔들 와중에 뉴욕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는 그 당시 그녀의 한 칼럼에 ‘제발 나도 좀 Please Take Me’란 제목을 달고 자신을 포함해 만점 매력남 클린턴에게 홀딱 반해 르윈스키의 처지를 선망하는 여성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썼다. 클린턴에게는 엄청 진지한 흡인력吸引力이 있다고 하는데 이 흡인력이라는 뜻의 라틴어 gravitas는 불알 고睾 둥글 환丸을 의미한다던가.
그 후로 언젠가 한 기자가 왜 그런 불장난을 했느냐고 물어보자 클린턴의 솔직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할 수 있었기 때문 Because I could.”이었노라고. 당시의 르윈스키처럼 육체적으로 탐스럽고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가 계속 추파秋波를 던지면서 유혹하는데 고자鼓子가 아니라면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을까. 학창시절 교회 찬송가나 부르면서 제 구두 닦는 게 유일한 취미였었다는 케네스 스타 Kenneth Starr 특별검사같이 덜 떨어진 ‘쪼다’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 더욱 흥미진진興味津津했던 것은 그 당시 가장 큰 목소리로 클린턴을 맹렬히 비난하며 탄핵을 주도했던 뉴트 깅글리치Newt Gingrich, 밥 리빙스턴Bob Livingston, 헨리 하이드Henry Hyde, 에이사 허친슨Asa Hutchinson 등 공화당의 지도자들이 클린턴보다 더 심한 외도를 한 사실 아니 진실이 폭로돼 만천하에 공개되었었다. 성인잡지 ‘허슬러Hustler’ 창업자 발행인 래리 플린트Larry Flynt (1942-2021)가 공화당 정치인들이 외도한 물증을 제시하는 여성에게는 미화 백만불씩 주겠다고 하자 줄줄이 여성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말에 ‘약방에 감초’라고 아니면 음식 맛을 내는 양념 삼아 그때 미국에서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성으로부터 구강성교 오럴 서비스oral service를 받기만 좋아하고 주는 데 인색하거나 꺼리면서 거부하면 ‘공화당원’이고 주기를 좋아하면 (즐기면) ‘민주당원’이란 농담이다.
그 당시 나는 추리 좀 해 봤었다. 어쩌면 힐러리의 방조幇助로 클린턴의 일탈행위逸脫行爲가 가능했을는지 모를 일이라고. 클린턴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힐러리가 클린턴의 끈질긴(?) 요청을 거절하다 못해 ‘딴 여자한테서라도 받아보라’라고 허락했을는지 모르는 일 아닌가.
자, 이제 문정희의 ‘치마’와 임보의 ‘팬티’ 그리고 문정희의 ‘응’과 정성수의 ‘응? 응!’을 우리 함께 음미해 볼거나.
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
문정희의 치마를 읽고서
임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응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문정희의 시 ‘응’을 읽고
응? 응!
정성수
응?
엄지발가락으로 신호를 보내올 때
감 잡고
귓바퀴에서 물음표가 되는
야구방망이를 앞세운 타자가 대쉬해 오는 공을 받아칠 때
바람이 내는 소리 둥그런 소리
응?
응!
치마 밑에서 쇳물을 끓이는 밤
여자의 귀고리가 흔들릴 때 발정 난 암코양이가
담벼락을 긁는 소리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는
응!
초저녁부터 굴렁쇠를 굴리며 보름달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가 응?
여자가 응!
엎어졌다가 뒤집어졌다가 정신줄 혼미한
물 위에 뜬 보름달과 물속에 뜬 보름달이 수면에서 만나
장지문에 꽃 필 때까지
응? 응!
문정희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남자들의 심리묘사가 잘 나와 있다. 인간은 영원히 치마 속을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마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도 벗어나 무엇이 ‘진실眞實’인지 우리 냉철히 생각 좀 해 보자.
영어에 ‘Perception is reality.’란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느낌이 현실이다’쯤 되겠지만 우리 식으로 의역意譯/義譯하자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뜻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인간사人間事에 있어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진실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비근한 예로 안중근이나 오사마 빈 라덴이 한국인이나 아랍인에게는 애국자요 독립투사이지만 일본인이나 미국인에게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하는 자연계와 인간세계에선 적자생존 適者生存이란 법칙만 통하고 그 이외의 자비심이나 인류애는 패자敗者의 비명悲鳴에 불과하지 않은가. 동물 또는 식물 애호가들에게는 동식물의 생명과 안위도 인간의 것 못지않다.
어려서부터 ‘마음의 샘터’ 같은 책에 나오는 세계명언들을 딸딸 외우는 걸 보고 나보다 두 살 위의 작은 누이가 한 말이 있다. 그런 명언들을 남긴 위인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는 비참했을 것이라며 생존경쟁에서 진 약자요 낙오자들로서 자기변명의 자위自慰를 하기 위해 독백하듯 한 소리에 너무 심취心醉/深趣/深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 8.15 ‘해방’을 맞아 온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사회가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며 혼란할 때 당시 교편을 잡고 있든 나보다 7살 위의 큰 누이에게 공산주의가 뭐고 자본주의가 뭐며 전체주의와 민주주의가 뭐냐고 물어봤다. 누님의 설명은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더할 수 없이 명쾌했다.
“태상아, 넌 어떤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우등생이 되거나 게으름 피워 공부를 못하면 낙제생이 되는 것과, 네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다 똑같은 점수를 받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좋겠니?”
그때 내 즉각적인 대답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공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는 우리 모두 서로서로 도와 다 같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앞에 언급한 수키 김의 책 제목 그대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정하고 이를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것이 진실이리라.
우리 세상만사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않기 위해 ‘욕타령’ 한 곡 뽑아 보세. 어쩌면 농도濃度 짙은 농담弄談이 너무 달다 못해 욕지기가 나 욕辱지거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나도는 수많은 욕에다 내가 어려서부터 악동기질惡童氣質로 작곡 작사해 즐겨 탄성歎聲을 내질러온 추임새 한두 마디 더 보태보리라.
사람의 탈을 쓰고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비인간적 사람들 가운데
아가씨답지 못하고
심보가 고약하거나
한번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백 년 동안 재수 없도록
오만 방정떠는 여자 보고는
‘벼락이라도 쫓아가서 맞아 죽을 년’
사내답지 못하게 줏대 없이
매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엉거주춤 싸는 둥 마는 둥
끼도 빼도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 이 눈치 저 눈치나 살피면서
밥도 죽도 쑤지 못하는 남자 보고는
똥물에 튀겨 죽이려 해도 똥물이 아까워
그럴 똥가루 가치도 없는
똥구더기만도 못한 놈
사람이면서
사람 이상이라도 된 듯
거룩하고 고상하게
점잔 부리고 얌전 빼며
사람 같지 않게
갖은 육갑 다 떠는 꼴 보고는
내 똥구멍이 웃는다
예부터 우리말에 웃고 지내면 안 늙고, 성내고 지내면 빨리 늙는다는 뜻으로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로一怒一老라 했다.
속이 좀 언짢아도 한바탕 웃어 젖히면 구겼던 마음도 펴지지 않더냐? 짧다면 눈 깜짝할 사이처럼 짧은 인생 잠시 마주쳤다 헤어질 사람들끼리 얼굴 찡그리지 말고 웃으면서 살아보세. 너도 나도 하-하-, 허-허-, 호-호- 웃음꽃을 피워보세. 좋다 좋아, 얼씨구, 씨구씨구로세.
우리 모두 우주 나그네 우주인 코스미안으로서 기氣막히고 한恨 맺힐 일 뭐가 있으랴!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