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수감번호 06-12

문경구

 

미국 마트에서 구입한 땅콩은 말 그대로 심심풀이 땅콩으로 먹는 데는 최고의 군것질감이다. 그 고소한 행복함 속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걸어와도 아무런 대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정신없이 먹다 보니 몰랐던 것 중 하나가 땅콩 봉지 안에 든 불만이었다.

 

이상하게 먹지도 않은 빈 껍질의 땅콩도 만만치 않게 많이 나왔다. 아마도 볶는 과정에서 빠져나간 일 같았다. 우연히 겉봉에 쓰인 이메일 주소로 나는 너의 제품번호 몇 번의 땅콩 귀신인데 실망스럽게도 빈 땅콩껍데기가 많이 들어있어 유감이다라고 사실 그대로의 설명을 재미 삼아 빈 껍질의 섭섭함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관심을 두지 않고 기억에도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나서려는데 어제 배달된 박스 하나가 내가 나올 때까지 문밖에서 밤을 꼬박세우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눈을 의심도 해 보았지만 분명 나를 찾아온 것이다. 새로운 땅콩 다섯 봉지가 들어있는 상자가 회사로부터 온 것이다.

 

기분은 받은 기쁨이라기보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던 무언가 빚을 지게 한 찝찝한 마음이었다. 회사가 있는 먼 노쓰케롤라이나에서 온 땅콩에서는 백인 냄새가 풀풀 나는 듯했다. 순진함의 유전자를 가득 지닌 백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나는 피부 깊이 잘 안다. 때때로 그들의 순수나 순진함 같은 것을 무시하고 말한다면 무엇인가 유전자 하나가 빠진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나사 하나가 빠진 그들이 세상을 쥐었다 피었다 한다는 혼자의 생각으로 나도 멍청해진다. 작은 카드를 그려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어떤 일을 두고 사실인지 상황을 읽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설쳐 대는 나의 경박함 때문이라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직장을 기다리면서 시작한 파트타임 일을 나는 어느 유명백화점 코너 팝콘가게에서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유난히 발음이 내가 배운 영어 발음같이 친숙하게 들려지는 폴이라는 사람한테로 내가 먼저 빠르게 다가갔다. 점심을 함께 나눌 때 보면 폴은 늘 빵 두 쪽 사이에 끼어있는 햄 두 쪽이 전부였다.

 

그때도 나는 왜 그렇게 초라한 점심을 먹는지 의혹의 오지랖을 테이블에 펼쳐 놓는데 선수였다. 한 날은 내가 주문한 몇 개의 치킨 중 하나를 먹으라고 폴 앞에 놓아 주었다. 그것은 분명 나에게 잠재된 한국인의 나누어 먹는 후한 인심을 전한 것이었다.

 

그런 폴은 순간 기겁을 하는 얼굴을 했다. 나는 미안해서 그러는 줄 알고 괜찮다며 한쪽을 더 얹어 주었다. 그때부터 폴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큰 눈을 하면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도 없이 옆자리로 비켜 앉았다. 나는 폴의 이상한 행동은 속 뚜껑을 날릴 만큼 화가 났어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얼굴을 하는 백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의 폴을 내가 만든 것 같아 순간 당황했다.

 

다음 날 또 다른 동료와의 대화에서 ", 그런 사실이 있었구나" 하고 갑갑하던 나의 가슴이 열리면서 너무 멀리 갔던 나의 불손함을 알았다. 언젠가 방송에서 한국 쉐프가 수족관에서 방금 꺼낸 물고기의 목숨을 잔인하게 끊고 생선회이랍시고 내어놓는 것을 나는 보지 말아야 했었다. 그 회접시를 받아 기쁘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회의적인 생각은 더 크게 느껴졌다.

 

위로 고등동물까지 올라가는 피라미드식 생태계를 생각하면 결코 비인간적인 행위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밀림 속에서 문명의 이기를 모르고 사는 아프리카의 야만인들이 훨씬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 뒤 닥터사무실 입구에 놓인 어항 속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고기들조차 내게는 회의적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인간이라는 나도 그 생태계의 카테고리를 매일 이어가는 것을 말이다. 폴은 어린 시절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 때부터 키운 닭이 마당에서 더 이상 노니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슬픔으로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그 후 폴은 죽은 닭에 대한 트라우마로 닭과는 인연 없이 평생을 늙어왔던 것이다. 마당에 누운 죽은 닭을 보고 엉엉 울게 된 그의 정신세계를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도마 위에서 팔딱거리는 생선을 내려치는 요리사는 사람도 충분히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폴은 어쩌면 자신이 닭을 죽인 죄인이라고 믿고 사는지 모른다.

 

살면서 원치 않았던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인가. 죄수번호 06-12라는 번호를 가슴에 달고 나는 세상 크기의 감옥 안에서 죄수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그 순간이 임종이신지도 모르던 철없던 나는 그래서 용서의 여지가 없는 죄의 대가를 치르며 무기수로 이렇게 살아간다. 사람은 숨이 멈춘 후에도 체온이 모두 빠져나가기 전까지 소리는 의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때부터 나는 잔인한 나의 운명으로 치부했다.

 

아무런 말씀도 어머니에게 드리지 못했던 나는 죄질이 가장 나쁜 죄인이다. 그 소중한 진실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무슨 말이라도 드렸을 것이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라도 드렸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가신 어머니 생각에 하루도 죄수복을 벗은 일이 없는 명백한 죄인이다.

 

612일에 태어나게 해주신 귀한 날이 죄수번호를 받은 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해가 갈수록 깊어지는 죄의식으로 천년의 세월을 살아도 출소할 수 없는 장기수라는 이름으로 산다. 어머니가 내게 선물로 주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길이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히 떼어낼 수 없는 번호를 가슴에 달고 사는 죄수다. 닭을 잃은 폴과 어머니를 잃은 나의 눈물은 똑같은 슬픔이었다. 나를 생각해서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폴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있을까.

 

그때 폴이 흘렸던 눈물은 모두 말라 버렸어도 나의 눈물은 도저히 마를 수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말이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06 11:48 수정 2021.07.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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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