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물, 발효를 통하여 얻어지는 향
최 우성 기자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의 학예사(學藝士)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류 최초로 커피 향을 즐긴 사람이 B.C. 1세기 이집트를 통치했던 여왕 클레오파트라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최초의 기원설인 칼디의 전설보다 거의 7세기가 앞선 이론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커피를 마셨던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커피열매를 태워서 그 향기를 맡았다고 하니 과연 세계 최초로 향수를 만들어 사용했던 사람답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커피에는 약 800가지 이상의 향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향기들은 본래 커피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지만, 일반적으로 커피의 다양한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향기는 커피 잔에 담기기 전에 많이 손실 된다. 커피의 향기들은 대부분 휘발성이라 커피가 액체로 만들어지기 전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커피의 향기를 결정하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1.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커피의 대표적인 품종에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가 있다. ‘리베리카’라는 품종은 있지만 쓴맛이 강하고 맛과 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생산성이 좋지 않아서 리베리아 외에서는 거의 재배되지 않는다. 반면에 아라비카(Arabica)종은 맛과 향과 산미가 뛰어난 커피이고, 로부스타(Robusta)종은 쓴맛과 바디감이 풍성하며, 크레마가 좋을 뿐만 아니라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좋아서 인스턴트 용 커피에 사용되고 있다.
아라비카 종의 원종에 해당되는 것이 티피카(Typica),부르봉(Bourbon),게이샤(Geisha),이며, 여기에 커피의 품종이 자연적으로 교배 되거나, 인공적으로 교잡시켜 만든 카투아이, 카투라, 카투아이, 카티모르, 티모르, 문도노보 등의 품종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커피는 원종에 가까운 것이 맛과 향이 좋다. 하지만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병충해에 강한 교잡종을 만들고, 여기에서 맛과 향의 손실이 발생한다.
2. 테루아(Terroir)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테루아라는 용어는 본디 와인에서 차용해 온 용어인데, 커피가 자라나는 환경, 예를 들어 생산고도, 토양이나 햇빛, 바람과 그늘 등 모든 환경 뿐만 아니라 커피나무를 다루는 농부의 손길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컨디션을 가리킨다. 커피의 재배는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자라나는 환경과 재배법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같은 품종의 커피나무라고 해도, 열매를 맺고 자라나는 환경이 다르면 맛과 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느 지역, 어느 농장에서 생산 되었는지를 묻는 것은 커피 품질을 가늠하기 위해 중요한 잣대가 된다.
라오스에서 대규모로 커피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유명하다는 커피나무들을 다 심어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수확한 커피 열매에서 그 품종의 좋은 특징들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토질과 기후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이처럼 테루아는 커피의 향미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3. 가공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잘 알려진 상식이지만, 수확한 커피체리를 어떻게 가공하는가에 따라서 맛과 향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대륙별로,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커피체리를 그대로 태양 볕에 말리는 내츄럴(Natural) 가공방법과 커피 과육를 제거하고 점액질을 수조에 넣어서 제거하는 방식인 워시드(Washed) 가공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내츄럴 가공방식으로 가공된 커피는 단맛과 바디감이 좋고, 워시드로 가공된 커피는 향기와 산미가 뛰어나다.
4. 가열 조리법은 맛과 향미를 증가시킨다.
지금은 당연한 듯 음식을 불에 조리해서 먹고 있지만, 원시시대에는 채집과 수렵을 통해 구한 식재료를 그대로 생식하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불에 그슬린 고기나 곡식을 먹게 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미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로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인류 최초로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학계에서는 이스라엘의 ‘게셔베노트야코브 동굴’지역에서 발견된 100 만 년 전의 화덕 유적을 가장 오래된 증거로 인정한다. 무려 100 만 년 전부터 인류는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하면서 현재까지 향미와 미각을 발달시켜 왔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 여 년 전에 프랑스의 의사이자 화학자인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는 빵과 고기와 볶은 커피 원두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향기가 발생하는 과정을 화학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했는데, 그래서 이런 화학적인 반응을 그의 이름을 따서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부른다.
커피 과육을 제거한 후 맛보는 생두는 풀 향기가 강하게 날 뿐, 그 외에 어떤 긍정적인 향을 느낄 수 없지만, 생두에 열을 가하면 뛰어난 커피의 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훨씬 더 많고 복잡한 향기는 커피로스터가 생두를 볶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5. 효소반응(Enzymatic)에 의한 발효는 맛과 향미를 증식시킨다.
우린 민족은 오랜 발효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일컬어지는 장독대 문화는 우리나라 식탁을 풍요롭게 했다. 뚝배기는 장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잘 발효된 장은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오래된 신 김치로 만들어 먹는 ‘묵은지 김치찌개’나, 홍어를 삭여서 만든 홍어회, 가자미 식혜는 한민족의 밥상과 입맛, 그리고 건강까지 지켜왔다.
발효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화는 실로 대단하다. 인류가 발효 과정을 이해하고 발효를 식음료를 만드는데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식탁의 변화가 일어났다. 발효는 세계에서 많은 향미의 원천으로 자리 잡았다. 와인, 맥주, 치즈, 요구르트, 두부, 간장, 피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식들이 발효를 통해 탄생했다.
발효는 특정 종류의 세균과 균류가 일으키는 대사 작용이다. 발효는 특별한 종류의 분해 과정으로,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탄수화물 분해과정이다. 분해를 통해 맛을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6. 발효의 역사
인류가 최초로 발효 음식을 먹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최초의 기록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은 죄악을 저지른 인류의 세대를 물로 심판하려 했고, 그 결과 온 지구를 뒤덮는 홍수로 노아의 가정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전멸했다. 노아는 대홍수 이후에 포도농사를 지었는데 포도를 수확하여 술을 만들어 마시고 대취(大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포도주도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중에 수메르 문명의 기록들이 있는데, 그 기록 중에는 인류 최초로 맥주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이집트에서도 노동자들의 맥주를 임금으로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마도 람세스 2세 당시 대공사현장에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히브리노예들도 맥주를 일당으로 받았을지 모른다. 이때 먹었던 맥주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곡식에 효모를 넣어서 발효시킨 걸쭉한 죽 형태였고 식사대용으로 먹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술은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다. 우리나라의 소주나 막걸리도 효모의 발효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인류가 발효를 이용해서 술을 체계적으로 만들었다는 증거 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1980년대 중국의 황하강의 한 지류에서 발견된 고대마을 ‘자후’의 유적지에서 이다. 이 마을은 약 9 천 년 전에 존재했었는데, 학자들은 이곳에서 최초로 술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6. 발효를 통하여 얻어지는 커피의 맛과 향
커피도 발효과정의 산물이다.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커피의 향미가 발효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SCAA의 플레이버 휠(The coffee taster’s wheel)에 의하면 커피의 발효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긍정적인 향기들은 다음과 같다.
꽃향기처럼 달콤한 향, 재스민, 라벤더, 풀냄새에서 나는 단향(Flowery, Floral, Coffee Blossom, Tea Rose), 레몬, 오렌지, 귤, 청사과 등(Fruity, Citrus, Lemon, Apple), 파, 양파, 마늘 등(Herby, Alliaceous, Onion, Garlic), 카더몬, 시나몬 등(Flowery, Fragrant, Cardamon craway, Coriander seeds), 달콤한 베리 같은, 블루베리, 체리, 스트로베리, 크렌베리 등(Fruity, Berry-like, Apricof, Blackberry), 채소, 파슬리, 완두콘, 시금치 등(Herby, Leguminous, Cucumber, Garden Peas)
커피 향기(Aroma)가 만들어지는 발효과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는 커피의 과육을 그대로 둔 채 햇볕에 말리는 내츄럴(Natural)가공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단맛은 증가하고 바디감은 강해진다. 내츄럴 과정을 통해서도 발효는 진행되는데, 잘못 다루게 되면 과 발효가 진행되어서 결점의 냄새가 나게 된다.
또 다른 방법은 물을 이용하여 커피의 과육을 제거하고 수조(水槽)에 넣어 점액질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발효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을 워시드(Washed)라고 한다.
과거에는 단지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해서 물속에 넣어두기만 했었지만, 발효의 과학적인 원리를 파악한 농장주들이 커피의 향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 커피의 펄프를 제거한 생두를 수조에 담가두되 그 시간을 다르게 할 뿐만 아니라 물을 갈아주는 시간도 달리해서 발효를 촉진시키고 좋은 향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제했듯이 발효를 잘못하게 되면 커피는 돌이킬 수 없는 과 발효된 결점의 냄새를 가지게 된다. 워시드 정제 과정에서 체리의 과육 탈피가 늦어졌거나 점액질 제거를 위해 수조에 너무 오래 담가두었을 때에 과 발효된 냄새가 부착된다. 내츄럴 정제과정에서도 과도하게 숙성되었거나 땅에 떨어져 상한 체리가 섞여 발효가 진행되면 시큼한 초산의 냄새가 나게 된다.
하지만 최근 스페셜티(Specialty) 커피의 부각과 중남미 국가들의 C.O.E(Cup of Exellence)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커피들은 모두가 커피의 발효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결과가 좌우되고 있다.
수조에 담기는 생두의 양과 물의 비율, 그리고 물의 온도와 시간에 따라서 발효가 다르게 진행이 되고, 맛과 향도 달라진다. 따라서 이 과정은 농장마다 다르고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기업비밀이 되는 것이다.
최근 커피시장에서 부각되는 파나마 농장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워시드 가공방식을 버리고 내츄럴 가공을 시도하는 농장주들도 많이 있다. 에티오피아나 브라질처럼 건조한 공기가 아닌 비도 많이 오고 습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동안 파나마 커피농장에서는 내츄럴로 가공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농장주들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근에는 내츄럴 가공으로도 발효과정을 제어하여 좋은 향미를 얻는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부연해 둔다. 그렇기 때문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 파나마 콘테스트에는 내츄럴 부문이 있을 정도로 가공 방법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향기로운 꽃향기가 나는 커피를 마셨다면 그 커피를 향기롭게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농장주의 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토록 아름다운 향기를 만들어낸 커피 산지 농장주들과 노동자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커피 해럴드 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