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도’ 아니면 ‘모’

문경구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트럭 하나와 나는 반가운 손 인사를 나누었다. 온 세상을 모두 뒤덮어 갈 여름날의 짙은 풀 내음이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부랴부랴 일손을 거두려는 멕시칸 정원사가 가지치기를 마친 나뭇가지들을 차에 싣고 있다. 차에 잔뜩 실린 나뭇가지들은 금방이라도 몇 번 덜컹대다가 멈추어 설 것 같은 영화속 소품같은 모습이다.

 

힘에 겨운 허름한 트럭은 작은 나뭇가지들을 가득 싣고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큰 나무라고 하는 한 생명으로부터 방금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들이 아직도 숨을 쉬고 있고 그 숨을 이어주고 있는 여름날의 아침 기운이 고맙게 느껴졌다.

 

작은 체구의 늙은 트럭도 살아 숨쉬고 산더미처럼 실린 나뭇가지들이 길 위로 하나 둘씩 떨어져 눕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살아 있음을 짙게 느끼게 한다. 버려진 나뭇가지의 생명은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갓 쳐낸 나뭇가지의 생명은 아직도 싱그러운 풋내를 뿌리며 트럭에 메달려 생명을 위한 몸부림을 쳐대고 있다. 아직 서늘한 아침공기가 깔린 길 위에 누운 나뭇가지들은 그렇게 생명을 갈구하며 찾아온 첫여름 식구같이 느껴졌다.

 

곧 해가 떠올랐다. 그 환한 빛이 내리는 아침길을 따라 걷던 나는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작은 한 가지가 이루어 낼 나무 그늘을 꿈꾸었다. 모태의 생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나무의 존재를 생각을 하며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나뭇가지도 그리고 나도 잠시 빌려쓰고 다시 돌려 보내야 하는 여름일지 모른다. 모두에게 똑같은 여름은 시간이라는 생명의 존재를 공평하게 즐기는 것인가 보다. 언제 돋아 났는지 알 수 없는 잡초들도 여름을 앞서 갈 듯 아우성이다. 지금 흐르는 시간이 인생의 가장 열정적인 여름이라는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해도 그리 긴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온갖 만물속에서 나를 향해 내미는 생명의 손도 시간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품고있는 죽고 사는 문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는 이순간에도 무심한 녹음만 울창하게 숲을 이루려 한다. 생명이란 길 위에 딸어져 누운 나뭇가지의 목숨 조차도 뜻대로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모두가 세상을 잠시 빌려 쓰는일, 세월도 잠시 빌려쓰고 그 흔적마져도 깔끔하게 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길위에 떨어져 누운 나뭇가지에게서 들었다. 나는 길에서 데려온 고아의 몸이 된 나뭇가지 하나를 컵에 담그고 물에 잠기게 했다.

 

매일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의심을 한다. 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애착을 감지한지 2주가 되어 갈 무렵 나무 끝으로 실 같은 뿌리가 내려졌다. 참으로 신선한 삶 하나가 우주에서 내게로 내려왔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그 생명의 뿌리를 지켜보는 내가 되었다.

 

머지않아 흙에 뿌리를 뻗어내린 어엿한 나무로 자라 또 다른 세상으로 뻗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 어느 세월도 관계없이 나무는 그 푸르름 사명 하나만 생각하며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 나무로 부터 떨어져 나간 작은 가지가 우주에서 자리를 잡으려는 생명력이 경이롭기만 하다. 내가 몸이 아플 때 가장 그리고 싶은 바로 그 생명력이다. 아플 때 바라보는 세상은 그 어떤 힘도 선택할 수 없는 고통의 전부였다.

 

울긋불긋한 화분 속 어린 꽃들도 나로 인하여 아파해야 했고 그 어떤 존재의 힘도 대신해 줄 수 없어 불청객이 되어 돌아갔다. 눈부신 햇살의 광채는 수술실에서 바라 본 천장에 달린 강직하고 강렬한 조명의 모습으로 비춰져 몸서리를 치게한다. 모두가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순간들이였다.

 

역학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포기했다는 한 지인이 한 말이 여름날 아침의 첫장을 열었다. 역학은 아무나 배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다. 자신이 발견하려는 깨달음 한가지 만으로도 얼마든지 인생을 터득하는 역술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뜻은 바로 인생이라는 생명을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풀어내는 일이라고 했다.

 

그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소중한 생명을 버티어 낼 수 있는 법이라도 나에게 풀어 줄 수 있을까 초조함에 귀를 청하고 싶어졌다. “이것봐, 인간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세상사라는 것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아니면 . 그 말은 아니면 이란 말이지, 더 간단히 말하자면 돈으로 칠까 몸으로 칠까 라는 소리지지인의 말은 어렵지는 않으나 엉뚱하게 들렸다.

 

누군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찾아와서 둘 중 하나를 요구할 때 빨리 돈을 내 보이며 여기 돈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하면 몸 하나는 구하게 된다는 건가. 괜히 돈에 집착을 버리지 못해 끌어 안고 고집을 부리면 돈 대신 몸을 데려 간다는 건가. 생각해 보게 몸을 끌고 갔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때는 결국 돈도 몸도 끝장으로 그렇게 인생이 끝나는거지. 물어보나마나 어느 귀신인들 돈없는 거렁벵이를 찿아나서겠는가.

 

이제서야 지인의 말이 쉬운 듯하나 꽤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알겠다고 고개를 몇번 끄덕여 주었다. 숫자에 취약한 나에게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지불한 나의 수술 비용이 내 목숨의 댓가로 지불한 것 처럼 위안을 갖고 싶어졌다. 그 지인의 말처럼 내가 지불 한 돈을 갖고 떠났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은 그 생명의 댓가를 이렇게 치뤄야 하는 윤회인가보다.

 

역학이라며 말하는 그것이 나의 생명연장을 의미 한다면 지인은 영적인 철학가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럼 내가 살려 낸 한 생명의 나무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서로 생명을 살린 인연으로 연결된 존재일까. 그 화두를 물고 새들이 녹음으로 뒤 덮힌 하늘을 날고있다.


죽고 사는 그 비밀은 여름도 모르는 일이다언제 또 찾아 올지 알 수 없으니 그 선택의 댓가를 위해 선뜻 내어 줄 비상금을 부지런히 마련해 놓아야 하겠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27 11:13 수정 2021.07.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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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