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아침 햇살이 녹음 아래로 새색시 몸짓을 하고 앉아 있는 날에는 늘 나의 곁으로 반갑지 않은 기억 하나가 찾아온다. 그 기억은 아침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나를 따라 다닌다. 세월에 찌든 그 추억의 기억은 내가 사랑하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숙명 같은 기억이다.
“내일은 맑게 해주세요”
비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바라던 바로 그 날의 기억이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일 년을 두고 매일 소풍 가기 최고의 날이기에 굳이 좋은 날의 선택을 위해 기도드릴 일이 없다. 국민학교 3학년 초여름 날 자하문 밖으로 소풍을 가게 되는 날이었다. 전교생들이 그 전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내일의 날씨를 들어야만 했다.
내일은 맑을 거라는 그날의 트랜지스터 스피커 소리의 기억을 모두들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옛날 간절했던 마음을 나는 매일 아침마다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도 낡아버린 소풍날의 기억은 지금까지 평생 품고 살게 했다. 소풍날 등에 메고 싶은 니꾸사꾸 속에는 삶은 계란 하나, 과자 한 봉지와 사이다 한 병을 마련해 주신 어머니들의 수고가 가득하다.
김밥 속에는 덴뿌라 한 줄, 다꽝 한 줄 그리고 계란 한 줄의 고명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호화로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마냥 행복했다. 지금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허름한 소풍 준비였지만 기쁨은 그 두 배인 것을 나는 잘 안다.
온통 설레는 마음으로 어젯밤 잠을 설친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모여들고 한둘씩 몰려와 소풍 가는 줄에 선다. 그 옆에 또 다른 한 줄은 여러 가지 가정 형편상 소풍을 갈 수 없는 학생 줄이다.
곧이어 선생님들의 인솔로 학생들은 줄지어 학교 문을 나선다. 교통수단이었던 세검정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노래를 맞춰 부르며 긴 행렬로 갔다. 그들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아 있던 열 외의 한 줄은 교실로 돌아갔다. 소풍을 떠난 학생들이 돌아올 때까지 교실에서 자습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전등불도 아껴 사용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넉넉지 못했던 시절의 가정 살림이었다. 내 위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누나들이 있는 집은 그 시절 어려운 가정의 좋은 예가 되었다. 나는 누나 형들이 모이면 서로의 지식을 토론하는 시간을 어깨너머로 배운 꽤나 상식 있는 당당한 어린이였다.
그런 내가 소풍 가는 줄을 따라나서지 못하고 또 다른 내 모습으로 열 외의 줄을 따라 교실로
돌아가야 했었다. 괜찮은 집안의 아이처럼 행동한 내가 열 외의 줄에 선 것은 나조차도 언급하고 싶지 않은 비애의 맛이었다. 나의 당당한 으스댐을 저버리고 나는 그날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를 기도했었다.
그때 지은 커다란 거짓말, 친구들의 즐거운 소풍날 교실에서 자습을 하며 소풍을 떠난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그 하루의 기억이 제일 싫었다. 이제는 아름다운 아침이면 소풍날을 위해 기도하던 그때의 햇살이 나와 함께 길을 걷는 친구가 된다.
오늘도 그 기억들을 생각하는 동안 걷기운동을 마치고 가까운 마트에 들렀다. 구입한 물건 몇 개를 모두 들고 오기가 애매하여 나는 미국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도움을 청했다. 친구는 물 위를 나르는 제비처럼 멋진 차를 몰고 곧바로 나타났다. 그런데 물건을 싣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친구의 차 오른쪽 뒷부분이 옆에 주차된 차의 왼쪽 앞부분을 가볍게 스쳤다. 스치는 소리는 안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밖으로 나와 차를 둘러보았지만 별 상처가 없어 보였다. 그 차 주인이 쇼핑을 마치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당황하는데 친구는 어떻게 이 상황을 처리해야 하는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상대방의 차는 공사장에 놓인 차처럼 너무 낡고 여기저기 험하게 찌그러진 차로 친구가 낸 상처는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친구의 새차를 수리해야 할 형편이 더욱 나를 어렵게 했다.
나는 친구에게 그냥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니까 차 주인이 오기 전에 도망가자는 거짓을 제의한 것이다. 친구는 상대방 차가 심하게 낡아 보인다며 나의 말을 이해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해야할 도리가 아니란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차 주인이 나오지 않자 친구는 간단한 메모를 그 차 유리창에 끼워 놓고 돌아왔다.
“당신의 차에 흠집을 내어 미안하다. 전화번호로 연락을 기다린다”라고 쓴 메모를 두고 왔는데 사흘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나는 친구에게 제의하지 말아야 했던 거짓말과 꿋꿋하게 연락을 기다리는 친구의 시간 속에서 끙끙 앓던 4일째 되던 날 친구는 차 주인의 손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차 주인은 영어를 못 하는 아르메니안 노인으로 수리공이었다. 당연히 친구는 정중히 사과하고 수리비를 청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르메니안은 친구가 남긴 쪽지가 무슨 내용인지 몰라 손자에게 들고 가 그 내용을 듣고 온 가족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쪽지를 놓고 떠난 친구의 정직함에 감사해하며 자신의 가족들, 특히 손자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고 정직하게 사는 인생공부를 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차는 그냥 굴러만 가면 된다고 했다. 자신은 험한 공사 일을 하기에 외관상으로 허름한 차가 부담이 없다고 했다. 친구의 정직함에 수리비보다 더 값진 것을 얻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그의 손자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거짓말로 남았던 어린 시절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소풍날은 잊고 그들과의 인연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여름날만 기억해야겠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