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책을 매만져라: 야한 책은 어떤가요

신연강

사진=신연강


올여름 같아서는 발가벗고 살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18년에 버금가는 더위라고 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가던 젊은이들이 이놈의 개더위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을 듣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더운 날 개가 혀를 길게 내밀고 헉헉거리는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눈에 띄는 수상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야해서 두말하지 않고 손에 잡았다. 본능적으로 마음에 치고 들어오는 것을 어쩌겠는가. 다나베 세이코가 쓴 여자는 허벅지. 요즘처럼 감당하기 힘든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에는, 위엄이고 체면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눈치 볼 것 없이, 일체의 망설임 없이, 호기심으로 몇 장 들춰보다가 책을 빌리기로 한다. 주변의 시선. 더는 그런 것 개의치 않고, 자유분방하게 책을 읽기로 한다. 이런 내게, 만일 누군가가 독서 잘하는 방법이 무엇이냐하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말해주리라, 책을 매만지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와서 독서 잘하는 방법을 묻는 사람이 없다. 섭섭한 일이기는 한데, 왜 그런 것일까.

 

생김새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책과 거리가 멀다라는 인상을 풍기지는 않을 터이니. 오래전 일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옆 사람과 말을 트게 될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화 상대로부터 많이 듣던 얘기는, “혹 교장 선생님 아니세요?” “목회하시는 분 같은데요.”라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발품을 팔거나, 몸 품을 팔아서 고된 일을 하거나, 눈치 빠른 사업가 같지는 않다는 평인데.

 

대체, 왜 내게 독서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다른 시각에서 내가 위의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으로 보였다면, 필시 사고가 고착된 사람내지는 정형화된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자유분방한 사고, 열린 사고, 트인 시야를 가졌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사고가 꼭 막힌 사람으로 각인되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다. 그렇게 생각되는 사람으로부터 책에 관한 조언을 받아야 빤하지 않겠는가.

 

사실, 살다 보면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규칙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사람일수록 아마도 자유분방한 사고에 대한 열망, 심신의 자유로움에 대한 욕구가 클는지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화이트칼라 직업군의 사람에게 물어보는 독서의 범위와 취향은 빤할 것이다. 그런 무겁고 활기 없고 재미없는 독서를 누군들 하고 싶겠는가. 그것이 어느 누구도 내게 독서에 관한 상담과 조언을 받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누구보다도 마음과 정신과 사고에 있어 자유분방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쉽게 답해 주려고 한다, “책을 힘들게 읽지 말라. 그 말은 무거운 독서를 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책 읽기를 즐기는 나로서도 가끔 (솔직히)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앞에 놓고도 싫증 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책을 가까이하려는 사람, 용기 내서 책을 벗하고자 하는 사람, 독서에 취미를 붙이려는 사람, 이들 모두가 책 앞에서 어찌 마음이 무겁지 않겠는가. 그러니 절대 책을 무겁게 대하지 말자! 부담되는 책이랑 집어치우고, 지나가라. 표지가 눈에 들어오고, 제목이 눈길을 끌면 손길을 주어라. 가볍게 손 내밀어 몇 장 들춰보고, 책 무게가 느껴진다면 내려놓기 바란다.

 

좋은 책이란, 마음이 가는 책이다. 그러니 이 책, 저 책 자꾸 매만지기 바란다. 당신이 아무리 책을 매만진다 해서 책 표지가 닳을 일도 없거니와, 사서가 눈총 줄 일도 결코 없다. 당신의 손이 닿는 책은 무척이나 기분 좋고 고마울 것이다. 그러니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고, ‘마음에 와 닿는 책’, ‘눈이 끌리는 책을 선택해서 가볍게 읽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조금은 무거운 책, 조금 더 무거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독서란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멋진 차를 타고 어느 곳에 갔을 때 멋진 차, 맛있는 음식이 남는 것이 아니다. 차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낡아 스러지고, 음식은 소화되고 배출되어 자양분으로 사라질 것이다. 단지 그때 함께 했던 사람과의 즐거운 추억이 남듯이, 책 또한 마음에 들어서 읽었던 책의 한 구절, 마음에 일었던 감흥이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러니 눈길 가는 책을 자꾸 어루만지면 책을 좋아하게 되고, 책이 소중하게 될 것이다. 로렌스(D. H. Lawrence)의 말처럼, 시간 속에서 와인은 없어지고, 와인 같은 인간은 마침내 소멸해 간다. 아무리 멋진 차라도 마모되고 종국에는 낡아 폐기되며, 물질은 소모되고 소비되어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책은 (불태워진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남을 것이다.

 

생각이 깃들지 않는, 마음이 충만해지기 어려운 물질적 풍요가 얼마만큼, 얼마나 오랫동안 행복을 지탱해줄 수 있겠는가. 물질이 주는 약간의 만족에 비하면, 책이 주는 가성비 좋은 효과-깊고, 은은하고, 사려 깊은-대체할 수 없는 만족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책을 실컷 매만지기 바란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8.12 11:04 수정 2021.08.1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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