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하늘에서 가져온 선물

문경구

 

사람은 세상에 올 때 쓸 만큼의 복을 받아 담을 그릇을 지니고 온다고 한다. 그 사람이 지닌 그릇 크기에 복을 담으면서 살다 떠난다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현명한 부자는 가져온 복을 더 큰 그릇에 담아 넘치게 불리면서 부를 쌓고 빌딩을 세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하늘에서 가져온 선물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용한 사람들인가 보다.

 

그러나 손에 쥔 그 빌딩 문서라는 그릇 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천억대의 돈 욕심을 부리다가 탈이 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래서 애당초 큼직한 그릇을 들고 오는 부자는 따로 있다고 하는가 보다.

 

복이 많다고 하는 말은 아무래도 돈이 얼마나 가득 그릇에 넘치는가로 부를 따지는 게 틀림없다. 거리로 나서면 온통 부를 뿌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물결치듯 넘친다. 꼭 그럴 때면 나는 과연 무슨 복을 가져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복을 담을 그릇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아마도 이산 저산으로 돌아다니며 천하태평으로 솔방울도 줍고 그림이나 그려대며 다녔던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한다. 복을 주어도 담을 그릇조차 없었으니 담아올 수도 누릴 수도 없다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늙은 세월에서 깨달음이라면 아무래도 부와 나는 상극이었던가 보다.

 

복을 쌓는 일에 나는 재능이 없었다. 돈복에 관해서는 음도 양도 떠난 아무 궁합도 맞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부가 나를 위해 찾아왔던 일도 내가 부를 찾아 떠났던 일도 없다. 사람은 일생에 최소한 세 번의 기회로 부를 쌓는다고 말하곤 한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내게는 세 번은 고사하고 한 번의 기회도 생각이 나질 않으니 그런 말들을 들으면 늘 헛웃음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짓는다. 그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 한 번도 없었던 복을 놓고 근심거리로 삼아 본 적도 없다. 힘든 날들은 분명 있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복에 대한 원망을 아무에게도 돌려세운 적도 없다.

 

부를 축적한 사람들 자체가 나의 관심 안에 들어와 본 일이 없어서다. 셔츠 하나 바지 한 벌로 사계절을 굴러대도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구르면서 살 수 있는 온화한 날씨에만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여벌의 옷이라는 게 타인의 옷처럼 낯설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두 벌로 일 년을 산다는 건 일 년 동안 만큼은 아무런 아쉬움 없는 자신감의 존재로 산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복이 아닐까. 이런 나에게는 최상의 복에 대한 믿음 하나가 있다. 재능있는 사람은 예술로 정신의 복을 쌓는다는 말이 세월이 가면서 자꾸 믿음으로 다가왔다.

 

이 나이가 되어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 곁에는 붓이라는 예술의 혼이 있다. 화병에 가득 꽂혀 있는 많은 붓들이 나의 복을 대신해 준 것 같다. 나는 그 붓들로 복을 쓸어 담으며 살았던 걸 몰랐다. 한국에서 방문한 지인을 따라간 나의 그림과 영원한 이별을 할 때 그곳 사람들과 복을 쌓으면서 살라고 마음속 부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쌓을 수 있는 복의 터전을 제공한 셈이다.

 

미국 오십여 개 주로 나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따라나선 내 그림들이 자그마치 몇 점인가. 이만하면 복다운 복을 지닌 내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복을 받기만 할 때 나는 복을 나누어 주었다. 되로 준 나눔의 복을 말로 받았다. 나를 잊지 못한다는 말을 할 때 그 복은 소구루마에 잔뜩 실려 보내진 기분이다. 그림들이 나의 곁을 떠나면서 돈의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부자들의 든든한 통장이 부럽지 않은 부를 나는 지닌 것이다. 나의 그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나는 진정한 부자이다. 중국계 동료가 업무 중에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웠을 때 그는 내 그림을 바라보면서 저세상으로 떠났다.

 

분명 그 동료는 다른 세상에서 나의 그림으로 갑부가 되었을지 모른다. 다음 세상에서 낙찰 가격이 어디 한두 푼이었으랴 아마도 비싸게 팔렸을 거다. 나는 비록 저녁끼니 조차도 대책이 없던 흥부처럼 초라한 아마추어 화가로 살아왔지만, 나의 그림들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면서 살 것이라고 신이 보증해 줄 것이다.

 

뇌졸증으로 떠난 동료의 관속에 나의 그림을 넣어 주었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영원히 뭉클하게 했다. 마치 아기의 첫 돌상 앞에서 무엇을 짚는가를 보며 긴장하는 모습처럼 내가 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신과 인터뷰할 때도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 저세상에 나가 무엇을 해 먹고 평생 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여생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다발과 가난하지만 영혼의 부를 위한 붓자루가 있으니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붓을 선택할 것이다.

 

당연히 붓을 선택해 부자로 살 수 없지만 나는 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붓을 놀려대며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진짜 부자는 하늘이 내리는 일이라면 나도 진짜 하늘의 의지대로 선택된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내 삶에 힘든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날 십구공탄 연탄불 난로로 산 세월에도 붓을 잡고 그림을 예술가의 따뜻한 영혼으로 살 수 있다.

 

예술은 돈을 줘도 못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돈을 구걸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재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도 어느 집 처마 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내 영혼은 신의 의지가 분명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내게 영감을 내리는 신과 나는 매일 대화를 나눈다. 나도 재벌들처럼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재벌들에게는 돈방석을 주었다면 내게는 그림방석을 주셨으니 신은 공정하다. 나는 하늘에서 가져온 신의 선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으니 풍요로워진 나의 영혼은 더 할나위없이 행복하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9.28 10:51 수정 2021.10.0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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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