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1592년 8월 24, 25, 26일 (음력)

이순신 지음 / 윤헌식 주해

사진=코스미안뉴스


1592년 8

 

24(신해) 맑았다. 아침에 객사의 동헌에서 정 영공1)과 식사를 하고 곧바로 침벽정으로 옮겨서 대면하였다. 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점심2)을 먹었으며 정 조방장(정걸)도 함께 하였다. 오후 4시경에 배를 출발하여 노를 재촉하여 노량 뒷바다3)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12시경에 달빛을 타고 배를 출발하여 사천 모사랑포4)에 이르니 동녘이 이미 밝았으나 새벽 안개가 사방에 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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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방장 정걸을 가리킨다. 영공(令公)은 종2품과 정3품 관원을 높여 부르던 영감(令監)과 동일한 말이다.

2) 조선시대에는 기본적으로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조선시대의 점심의 의미는 현재와 차이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랐다. 조선시대 중기의 점심은 시간과 관계없이 간단히 먹는 것을 의미한다.

3) 임진장초부산파왜병장(釜山破倭兵狀)(1592917)에는 관음포(觀音浦)로 기록되어 있다.

4) 사천해전 직후에 조선수군이 정박했던 모자랑포이다.


[원문] 四度八月二十四日 晴 朝食對于客舍東軒 丁令公 卽移對于侵碧亭 右水伯 㸃心同對 丁助防亦共之 申時 發船促櫓 到露梁後洋下矴 三更 乘月行船 到泗川毛思郞浦 東方已曙 曉霧四塞 咫尺不辨

 

25(임자) 맑았다. 오전 8시경에 안개가 걷혔다. 삼천포 앞바다에 이르니 평산포만호 [김축]이 공장1)을 올렸다. 거의 당포에 이르러 경상우수사 [원균]과 배를 매어놓고 서로 이야기하였다. 오후 4시경에 당포에 정박하여 숙박을 하였다. 12시경에 잠시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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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空狀公狀의 오기이다.


[원문] 二十五日 晴 辰時霧卷 到三千前洋 平山浦萬戶呈空狀 幾到唐浦 慶尙右水伯繫舟相話 申時 泊于唐浦宿. 夜三更 暫雨

 

26(계축) 맑았다. 견내량에 이르러 배를 멈추고 우수사 [이억기]와 서로 이야기하였다. 순천부사 [권준]도 왔다. 저녁에 배를 옮겨 거제 땅 각호사 앞바다에 이르러 숙박을 하였다.


[원문] 二十六日 晴 行到見乃梁駐舡 与右水伯相話 順天亦到 夕 移舟到巨濟境角呼寺前洋宿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02 11:10 수정 2021.10.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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