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람들 - 최돈선
누가 구름이라 하는가
어느 날의 헛된 꿈이라 하는가
호롱꼿으로 불 밝히던 추억
오오 가슴에 남아 여울지던 눈물겨움이여
그리운 이의 얼굴이 메아리처럼 울려
떠오른다.
누군가 올 것이다
가슴으로 조용히 흔들려 다가올 것이다.
그대들 아름다왔으매
아름다운 그대들 나라로
영원히 떠나 살리라.
안녕하십니까. 잘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 이곳 미국에선 반아시안 정서로 촉발된 피해 사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강택민(江澤民)과 호금도(胡錦濤) 주석 님들 뒤를 이어 2013년 3월 14일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셨을 때 나 또한 열광했습니다. 습(習) 주석 님의 인후지덕(仁厚之德)이 풍기는 인상부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중국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의 모범적인 지도자가 되실 것을 확신하고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 한국의 백범 김구 선생님은 ‘인후지덕’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어지러이 걸어가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지니!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즐겨 쓰셨다는 이 표현은 1948년 남북협상으로 38선을 넘으며 인용한 것으로 유명한 문구이기도 합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질 대한민국을 걱정하시던 그는 모든 것은 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강조하며 조상 때부터 강조해오던 인후지덕을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든 일은 내가 앞서 행하니, 그것은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이는 사랑하는 자가 잘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이 추구했던 인후지덕이란 그런 것이다!”
예(禮)를 숭상했던 공자도 살고 싶어 했던 우리나라입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이 아니라 먼먼 옛날 우리가 ‘동이東夷’로 불렸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안희왕 10년 공자의 후손 공빈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의하면 공자는 우리나라에 살고 싶은 이유를 이렇게 들었다지요.
“나라는 컸어도 다른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고 군대가 강했지만 침략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하여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했으며(행자양로行者讓路),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고(식자추반 食者 推飯),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다(남녀이처이부동석男女異處而不同席)”는 것입니다.
길을 걸을 때도 “먼저 가시지요” 하며 길을 양보했고, 음식을 먹을 때 이웃이나 손님이 온다면 먼저 밥 먹기를 권했으며, 남녀가 하늘이 준 직분에 충실하다 보면 함께 섞일 겨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춘추전국 시대의 어지러운 난국을 한탄한 공자는 ‘군자의 나라’ 동이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합니다.
제자가 ‘그곳은 누추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문화선진국에 누추가 웬 말이냐’고 일축했다고 전해집니다(是故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상대에게 저지른 무례의 만행을 돌아보며 스스로 반성해 봅니다. 우리 자신에게 주는 위안이고 격려이기를 바라면서 김구 선생님의 명문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자유가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주는 것을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습(習) 주석님께서 집권하신 이후로 ‘동북공정도 모자라 김치에, 한복도 중국이 원조라며 중국의 검색 엔진들은 세종대왕, 시인 윤동주, 김연아 등 한국이 자랑하는 인물들을 모두 조선족으로 표기하고 한민족을 통째 중국 내의 한 변방 소수 민족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의 부정적인 반중 정서가 악화하고 있습니다. 한(漢)지상주의를 내건 문화제국주의 행태라 할까요. 그 뻔뻔함에 질려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반중감정은 반일감정 이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미세먼지가 날아든다, 꽃게 철이면 불법어로 중국어선이 서해바다를 까맣게 뒤덮는다, 그 중국이 툭하면 동북공정이니 어쩌니 하며 영토적 야욕을 드러내면서, 중국의 뻔뻔한 본색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기는 2016년 북 핵 위협에 대비해 한국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제(THAAD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이 온갖 보복 조치를 발동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기억이 생생한데 북경은 ‘중국스러움’을 계속 과시해오고 있습니다. 홍콩에서의 민주화운동 탄압, 신강성 위구르자치구에서의 인종청소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은폐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세계인의 시선은 점차 혐오로 변질되면서 반중감정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면 진저리를 내고 있다’는 세계 여론이 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중국 화교 출신으로 첫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게리 로크(당시 64세)씨가 지난 2014년 3월 1일 퇴임에 앞서 중국 관영매체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었지요. 중국신문사(中國新聞社)는 2월 28일 “잘 가시오, 게리 로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를 ‘썩은 바나나’로 지칭했지요. 겉은 노랗고 속이 하얀 바나나는 생김새와 달리 자신을 서양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이 사설은 “바나나는 오랫동안 놔두면 껍질은 썩고 하얀 속살도 까맣게 변한다”며 “화교 3세인 로크 대사가 미국 입장만 대변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를 내가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풀이를 좀 해보자면 인(仁)과 덕(德)을 으뜸으로 삼는 동양왕도(東洋王道) 대신 인의(仁義)를 경시하고 무력(武力)과 금력(金力)을 중시하는 서양패도(西洋覇道) 패권주의의 앞잡이 광대라고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에서 밝힌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교훈처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말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위인(偉人)은 그가 소인(小人)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위대(偉大)함을 보여준다. A great man shows his greatness by the way he treats little men.”
2013년 9월 12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실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글 ‘러시아로부터 미국의 주의(注意)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읽고 나는 극히 외람 되나마 전 세계 인류 가족에게 드리는 편지를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10일 미국 대통령이 전 미국 국민에게 행한 연설문을 신중히 검토해본 결과, 미국 정책의 ‘예외성’을 강조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그 동기야 어떻든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예외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적절한 지적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존재물이 동물, 식물, 광물 할 것 없이 다 같은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나는 굳게 믿습니다. 유사 이래 인류 대부분의 비극은 두 가지 사고방식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 하나는 독선독단적인 ‘선민사상(選民思想)’이고 또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고 주입되어 온, 백해무익한 ‘원죄의식(原罪意識)’이라고 나는 봅니다. 우리 동양 선인들의 지혜로운 말씀대로 ‘피아일체(彼我一體)’와 ‘물아일체(物我一體)’ 곧 너와 내가, 모든 물체와 내가 하나임을 진작부터 깨달았더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좋아졌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너를 해치거나 도우면 나 자신을 해치거나 돕는 것이고, 자연을 파괴하거나 헤아릴 때 이는 나 자신을 파괴하거나 헤아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독일의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 (1575-1624)가 말했듯이 “영원이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가 되는 그 일순간’인가 봅니다.
나 자신의 얘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1936년 12월 30일 지금은 북한 땅이 되어버린 평안북도 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차대전 종전으로 36년간의 일제식민지통치가 끝나면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될 때 나는 남쪽에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연방 미-소 냉전 긴장의 분출구로 동족상잔의 한국동란이 일어났으며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행과 ‘죽기 아니면 살기’의 생존본능에 따라 모든 행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오다 보니, 세상에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2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나 현재 유일한 생존자로,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한국전쟁 당시 나이 열셋에 집 없는 거리의 소년이 된 나는 어린 나이에 길을 떠났습니다. 삶의 의미와 나 자신의 진정한 자아의식을 찾아서.
동양-서양, 남쪽-북쪽, 어디 출신이든 큰 그림에서 볼 때 우리는 우주라는 큰 바다에 표류하는 일엽편주(一葉片舟)와도 같은 아주 작은 별 지구에 사랑의 무지개를 타고(born arainbow of love) 내려와 잠시 머무는 우주의 나그네 ‘코스미안(Cosmian)’입니다.
현재 있는 것 전부, 과거에 있었던 것 전부, 미래에 있을 것 전부인 대우주를 반영하는 소우주가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입니다. 이런 코스모스 우주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위해 우리 모두 하나같이 인생순례자 ‘코스미안’이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다 함께 ‘코스모스 칸타타(Cosmos Cantata)’ 합창을 부르며 하늘하늘 하늘에 피는 코스모스바다가 되기 위해…
16년 전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나는 다섯 딸에게 남겨 줄 유일한 유산으로 아빠가 살아온 삶을 짤막한 동화 형식으로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힘들고 슬프고 절망할 일이 많다 해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실연당한다 해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다는 것이 사랑 못 해보는 것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사랑하며 사노라면 우리는 비상(飛翔)하게 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43세가 되도록 제 눈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 혼자 살아오던 내 둘째 딸은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특수부대 비행기 조종사로 의병 제대한 피부암 말기 환자로 암환자 기금 모금을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올린 블로그를 보고 교신 끝에 지난해 2월 16일엔 그의 임박한 장례식 대신 그의 삶을 축하하고 기리는 파티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城)에서 열었고, 3월 16일엔 에든버러 아카데미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결혼식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시 한 편을 낭송했습니다. 이 시는 2013년 미국에서 출간된 우생(愚生)의 졸저(拙著) ‘코스모스 칸타타: 한 구도자의 우주여행(Cosmos Cantata: A Seeker’s Cosmic Journey)’의 출판사 대표이자 시인 도리스 웬젤이 써준 축시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남녀 한 쌍에게
내가 만난 적은 없어도 이 두 젊은 남녀는
이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이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네.
내가 만난 적은 없어도 이 젊은 연인들은
서로에 대한 헌신으로 똘똘 뭉쳐 오롯이
호젓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의 축배를 높이 드네.
내가 만난 적은 없어도 이 두 사랑스런 영혼들은
저네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전 세계에 여운으로
남는 감미로운 멜로디를 창조하네.
결혼식을 올린 지 5개월 후 8월 24일 46세로 남편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딸에게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딸 수아에게
사랑하는 남편 고든이 평화롭게 숨 거두기 전에 네가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을 다 하고 그가 네 말을 다 들었다니 그 영원한 순간’이 더할 수 없도록 복되구나. 난 네 삶이 무척 부럽기까지 하다. 너의 사랑 너의 짝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삶과 사랑을 그토록 치열하게 시적(詩的)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이 장수하여 백 년 이상을 산다 한들 한 번 쉬는 숨, 바닷가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에 불과해 우주라는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니. 그러니 우리는 우리 내면의 코스모스 바다를 떠날 수 없단다.
사랑하는 아빠가
다음은 딸 아이의 조사(弔辭) 일부입니다.
그를 만난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도록 크나큰 행운이었는지, 우리가 같이한 13개월이란 여정에서 아무런 후회도 없고, 나는 내 삶에서 완벽을 기하거나 완전을 도모하지 않았으나 어떻게 우리 자신 속에서 이 완전함을 찾았으며, 우리는 불완전한 대로 완전한 사랑이란 절대균형을 잡았습니다.
(In September 2013, I wrote “An Open Letter: The Sea of Cosmos,” which was sent to U.S. President Obama and Russian President Putin.)
The Sept. 12, 2013, Op-Ed article in The New York Times: “A Plea for Caution From Russia” by Vladimir V. Putin, president of Russia, prompted me to write this letter to all my fellow human beings all over the world.
In concluding his plea, Mr. Putin says that he carefully studied Mr. Obama’s address to the nation on Tuesday (September 10, 2013) and that he disagreed about the case President Obama put forth when he stated that the United States’ policy is, “What makes America different. It’s what makes us (the United States) exceptional.”
I, for one, concur with President Putin’s apt comment that “it is extremely dangerous to encourage people to see themselves as exceptional, whatever the motivation.”
From time immemorial, most, if not all, human tragedies have been visited upon us, in my humble opinion, by two major mindsets: One is the self-serving “chosen-species-racist” view, and the other is the harmful concept of “original sin” instilled in childhood.
I firmly believe in the truth that we, not only human beings, but all things in Nature are one and the same. We’d be far better off if we were enlightened early on to realize that we are related -part of each other - as the ancient aphorism goes: ‘피아일체’ “pee-ah-il-che” in Korean phonetic alphabet and ‘彼我一體’ in Chinese characters, meaning that “we (you and I) are one and the same.”
Another aphorism goes: ‘물아일체’ “mool-ah-il-che” in Korean phonetic alphabet and ‘物我一體’ in Chinese characters, meaning that “all things and I are one and the same.”
Simply put, when I hurt or help you, I’m hurting or helping myself; when I destroy or divine Nature, I’m destroying or divining myself.
Perhaps that’s why and how it’s possible that eternity consists of a flash of a lightning-like moment when we become the very object of our love, as the German mystic Jakob Boehme(1575-1624) believed.
Let me further present my case in point. Born in now-North Korea on December 30, 1936, I happened to be in the south when the country was divided at the end of World War II, which ended the 36-year-old colonial rule of Korea by Japan; hence the Korean War in the heat of the Cold War tension between the two super- powers, U.S.A. and Soviet Union, and its ongoing aftermath.
By virtue of serendipity and survival instinct of “sink or swim,” I’ve always counted every stroke of luck as a blessing and believed nothing was to be discarded.
Eleventh of 12 children and the last one still alive, I became fatherless at the age of five and homeless when I was thirteen during the Korean War, Consequently, I went on a journey at an early age, in search of the sublime in our human condition, seeking my cosmic identity in the greater scheme of things.
No matter where one is from, if we look at things from the big picture, we all are “cosmians born arainbow of love” passing through as fleeting sojourners on this tiny leaf-boat-like planet earth floating in the sea of cosmos.
If each one of us, be it a grain of sand, a drop of water, a blade of grass, or a human being, is indeed a micro-cosmos reflecting a macro-cosmos of all that existed in the past, all that exists in the present, and all that will exist in the future, we’re all in it together, all on our separate journeys to realize that we all must sing the Cosmos Cantata together. No one is exceptional and all of us are exceptional.
When I was diagnosed with prostate cancer sixteen years ago, I started to compose a short, true story of my life in the form of a fairy tale for my five daughters as my only legacy. All I wanted to say in my writing was this:
Always changing and impermanent though life is,
Troubled and sorrowful though life is,
What a blessing it is to be born than not be born at all!
What felicity it is to love somebody,
Even if you may be crossed in love and heartbroken!
Isn’t it such a beautiful, blissful and wonderful experience?
To live and to love!
By so doing we learn to fly and to soar.
And a small portion of my daughter’s recent eulogy to her husband reflects those sentiments:
I spoke of how ridiculously lucky I felt to have met him.
How I had no regrets about anything on our journey.
I told him that I had never sought for perfection in anything in my life.
But that somehow, I had found it.
I had found it in “us.”
We were perfect.
Perfect in our imperfections too.
Our imperfectly perfect balance.
And Doris Wenzel, the American poet and publisher of my book Cosmos Cantata: A Seeker’s Cosmic Journey (2013), reflected on their exceptional lives in:
To The Couple I Do Not Know
I have never met those two young people,
Impressing those who know them,
Inspiring those who don’t.
I have never met those two young lovers,
Wrapped in devotion to one another,
Celebrating life alone and with others.
I have never met those two sweet souls,
Securing a world of their own
While creating a lingering melody for the world.
After I learned of his (Gordon’s) passing at the age of 46, I emailed the following short message to my daughter:
Dearest Su-a,
It is good to know that Gordon listened and understood what you had to say for an “eternal” hour before he stopped breathing and he was gone so “peacefully.”
Su-a, you are such an amazing girl. I’m even envious of you, not only for having found “the love of your life” but more for living it to the best, to the fullest, so intensely, so poetically, very short thought it was only for 13 months.
Even if one lives to be over a hundred, still it will be nothing but a breath, a droplet of waves breaking on the shore, returning to the sea of cosmos. Thus we never leave “the sea inside.”
Love, DadXX
어떻든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자연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해 온 서양 물질문명의 ‘원죄의식’과 ‘선민사상’에서 어서 탈피하여 한국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홍익만물(弘益萬物), 다시 말해 천도교(天道敎)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온 세상에 펼치는 것이 답이 되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주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 말입니다.
우리 동양 몽고족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신앙처럼 받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깊이 되새겨 봅니다.
"강물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따 먹지 않는다.
햇빛은 스스로를 위해 비추지 않고
꽃들은 스스로를 위해 향기를 내뿜지 않는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이다.
네가 행복할 때 네 삶은 좋다.
하지만 너 때문에 남들이 행복하면
그것이 훨씬 더 좋은 삶이다.
남을 위해 살지 않는 자는
삶을 살 자격이 없다.
우리의 본질은 봉사하는 것이다."
"The rivers don’t drink their own water;
The trees don’t eat their own fruits'
The sun doesn’t shine for itself;
the flowers don’t give their fragrance
to themselves.
To live for others is nature’s way.
Life is good when you are happy;
but life is much better when others are happy
because of you.
Who doesn’t live to serve,
doesn’t deserve to live.
Our nature is service."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의 참된 소명이고 친인파(親人派/波) 친지파(親地派/波) 친천파(親天派/波) 친우파(親宇派/波)로서 상생(相生)과 공생(共生)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내가 나이 열 살 때 지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을 동시(童詩) ‘바다’와 또 내가 70여 년 전 소년시절 그려본 우리 모두의 자서시(自敍詩) ‘코스모스’를 습(習) 주석님과 나누고 싶습니다.
바다
영원과 무한과 절대를 상징하는
신(神)의 자비로운 품에 뛰어든
인생이련만 어이 이다지도 고달플까.
애수에 찬 갈매기의 고향은
정녕 출렁이는 파도 속에 있으리라.
인간의 마음아 바다가 되어라.
내 마음 바다가 되어라.
태양의 정열과 창공의 희망을 지닌
바다의 마음이 무척 부럽다.
순진무구한 동심과 진정한 모성애 간직한
바다의 품이 마냥 그립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로되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The Sea
Thou, symbolizing
Eternity, infinity and the absolute,
Art God.
How agonizing a spectacle is life
In blindness tumbled into Thy callous cart
To be such a dreamy sod!
The homeland of the gull
Of sorrow and loneliness full.
Where would it be?
Beyond mortal reach would it be?
May humanity be a sea of compassion!
My heart itself be a sea of communion!
I envy Thy heart
Containing passions of the sun
And fantasies of the sky.
I long for Thy bosom
Nursing childlike enthusiasm
And all-embracing mother nature.
Although a drop of water,
It trickles into the sea.
코스모스
소년은 코스모스가 좋았다.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았다.
소녀의 순정을 뜻하는
꽃인 줄 알게 되면서
청년은 코스모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나그네는
코스미안의 길에 올랐다.
카오스 같은 세상에서
코스모스 우주를 찾아
그리움에 지치지 않는 노인은
무심히 뒤를 돌아다보고
빙그레 한번 웃게 되리라.
걸어온 발자국마다
무수히 피어난
코스모스 발견하고
무지개를 좇는
파랑새의 애절한 꿈은
정녕 폭풍우 휘몰아치는
저 먹구름장 너머 있으리라.
사랑의 무지개배 타고
코스모스바다 위로
하늘하늘 날아보리
코스모스 칸타타 부르며
모두 다 아름답고
모두 다 경이롭고
모두 다 좋다고…
This is the Cosmian Song I’ve been singing all my life.
The Cosmos
When I was a boy,
I liked the cosmos,
Cozy and coy
Without rhyme or reason to toss.
Later on as a young man,
I fell in love with the cosmos,
Conscious of the significance
Of this flower for me sure,
The symbol of a girl’s love pure.
As I cut my wisdom teeth,
I took on the Cosmian path,
Traveling the world far and near
In my pursuit of cosmos
In a chaotic world.
Upon looking back one day,
Forever longing, forever young,
Never aging and never exhausted
By yearning for cosmos,
I’d have found unawares numerous cosmos
That had blossomed all along the road
That I had journeyed.
The dreamland of the bluebird,
Looking for a rainbow,
Where could it be?
Over and beyond the stormy clouds,
Lo and behold, there it is,
The wild blue yonder
Where you can sail and soar
In the sea and sky of cosmos
Arainbow, chanting Cosmos Cantata:
All’s beautiful!
All’s wonderful!
All’s just well!
습(習) 주석님께서 강녕(康寧)하시기를 기원하면서 망언다사(妄言多謝)입니다.
2021년 4월 13일
미국 뉴저지주(州) 테나플라이에서
코스미안뉴스 회장 이태상 드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