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작곡가 헨델

몰아의 경지에서 작곡한 '할렐루야'

사진출처 : Wikimedia commons / 헨델

 

1741년 겨울, 어두운 런던 거리 한 모퉁이에 지친 다리를 끌며 걸어가는 초췌한 노인 한 명이 있었다. 병색이 짙은 그는 심한 기침 때문에 가끔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토록 초라한 노인은 불멸의 작곡가 헨델(George Frideric Handel,1685~1759)이었으며 저녁 산책 중이었다.

그의 겉모습은 비록 허름하고 초라해 보였지만 마음 속은 마치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지난날 누렸던 영광스러운 기억들과 현재의 깊은 절망감이 어우러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쟁터였다.

지난 40여년 동안 헨델은 영국과 유럽 일대에서 하늘을 찌르는 명성을 누려온 대 작곡가였다. 새로운 곡이 발표될 때마다 대중들이 그에게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왕실에서도 그에게 온갖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보잘 것 없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날 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빈궁 속에 빠져 버린데다 4년 전부터는 뇌출혈이 생겨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었다. 영감이 떠오를 때도 손을 움직여 음표 하나 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사들은 도저히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의 병세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헨델은 온천에 매일 1시간씩 몸을 담그고 있으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독일의 '악스 라 샤펠'이라는 온천으로 가서 매일 목욕을 했다. 한번에 계속해서 3시간 이상은 온천 물 속에 있지 말라는 의사들의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생에 대한 무서운 열망으로 의사들의 말을 무시했다. 한번에 9시간 이상씩 물 속에 들어가 있곤 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병세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근육에 생기가 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재활의 환희로 끓어오르는 창작열에 도취되어 연달아 네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시 갈채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장마 때 잠시 내리쬐는 햇빛이 잠시 반짝이다 구름 속으로 사라지듯이 이내 사라져 버렸다.

열렬한 후원자 캐롤라인 여왕이 작고 한 후 공연이 점차 줄게 되고 겨울의 혹한이 휘몰아쳐 왔다. 얼음장 같은 극장에 관객은 줄고 공연은 속속 취소되었다. 날이 갈수록 생활고는 더해 갔다. 창의력도 의욕도 감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점점 지쳐 갔고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정신적인 타격은 노쇠를 촉진했고 이제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말자고 스스로 위안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듯한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저녁이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산책을 나서곤 했다.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은 마치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헨델은 계속 인적이 없는 길을 천천히 걸어 갔다. 저 만치 어둠속에서 교회의 종탑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저에게 소생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가 또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버리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에게 창작생활을 계속할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그는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밤이 깊어서야 한없는 슬픔 가운데 초라한 숙소로 돌아왔다. 그 때 책상 위에 소포 한 꾸러미가 있었다. 그는 조금 이상스럽게 생각하며 그 소포를 풀었다. 내용물은 한 묶음의 오라토리오 가사였다. 시인 '찰스 제넨스로 부터'라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헨델은 그 가사 뭉치를 훑어보면서 투덜거렸다. "방자한 녀석, 이류 시인인 주제에..." 그는 모멸감이 앞섰다.

혼잣말로 불평을 터트리면서, 동봉한 편지를 대충 읽어 내려갔다. 곧 그 가사를 붙여 작곡을 착수해 주기 바란다면서 덧붙여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있었다."고 씌어 있었다.

헨델은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헨델은 사실 신앙심이 두터운 편은 아니었고 성격도 아주 격렬하였다. 그는

"아니, 그래 뻔뻔스럽게도 제까짓 놈에게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셨다고? 그래서 나에게 오페라 대본도 아닌 겨우 이 가사 쪼가리를 보내 주었단 말인가."

심히 불쾌한 마음으로 그 오라토리오의 가사 원고를 뒤적거리다가 헨델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상하게 가슴을 찔러 오는 대목이 얼핏 눈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헨델은 글자 하나 마다 마치 영혼이 있어 구구 절절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동을 느끼면서 그 원고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말 한 마디 글자 하나 하나가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빛나는 것 같았다.

헨델은 황급히 펜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마구 휘갈겨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놀랄 만한 속도로 음표가 오선지를 메워 나갔다.

다음날 아침 하인이 조반상을 들여 올 때까지도 그는 책상에 엎드려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날이 밝아 아침이 된 것도, 또 조반상이 들어와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인의 간청으로 빵을 집어 들긴 했으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는 빵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연신 손으로 부스러뜨려 마룻 바닥에 떨어드리곤 했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악보를 그리다가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방안을 큰 걸음으로 왔다 갔다 서성거리기도 했다.

때로는 팔을 쳐들어 허공을 후려치기도 하고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그 분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하인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시는 것 같은데 그의 눈에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하늘나라의 문이 열린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바로 거기 계신다고 소리치기도 했지요. 

그 분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닌가 더럭 겁이 날 정도였다니까요."

무려 24일 동안 그의 이러한 광적인 망아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는 거의 먹지도 쉬지도 않고 무섭게 일에만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 위에 나가 떨어졌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라토리오의 악보가 마구 흩어져 있었다.

헨델은 혼수상태에 빠져 계속 14시간을 잤다. 하인이 무서워 의사를 불렀다. 그러나 헨델은 의사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인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마치 굶주린 들짐승처럼 그는 햄 덩어리를 꾸역꾸역 입으로 틀어 넣고는 음료수를 한없이 들이켰다. 얼마 만에 그는 불러 오른 배를 쓸어내리면서 물러 앉아 방금 도착한 의사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선생이 나와 더불어 유쾌한 이야기를 하러 오셨다면 환영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몸뚱이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고 툭툭 두드려 보러 오셨다면 돌아가 주십시오. 보시는 것처럼 나는 멀쩡합니다."

곡을 완성한 그는 런던에서는 헨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했으므로 이를 들고 아일랜드로 갔다. 그는 자기 작품을 연주하는 대가로 돈은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공연으로 생기는 모든 수입은 자선사업 단체에 보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간 그는 합창단 두 개를 하나로 합쳐 연습을 시켰다. 공연 날이 가까와 옴에 따라 더블린 시민들의 마음은 점차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입장권은 금방 매진되었다.

좌석을 더 만들기 위하여 부인들에게는 버팀 테(당시 여자들이 치마폭을 벌어지게 꾸미는데 쓰던 것)를 쓰지 말고, 남자들에게는 칼을 차지 말고 입장하도록 요청하였다.1742년 4월 13일, 공연 몇 시간 전부터 극장 앞에 인파가 장사진을 쳤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1743년 3월 23일 영국 런던의 왕립극장에서 공연할 때에는 하나의 돌발 사태가 발생하였다. 국왕 조지 2세가 제2부의 마지막 곡이 합창되자 감동에 겨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이다.

조지 2세는 평소에 헨델을 좋아하지 않았던 왕이지만 '할렐루야'가 연주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그러자 모든 관중이 그를 따라  기립하여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이 우연한 사건은 오늘날에도 이 합창이 연주될 때에는 청중이 일어나서 듣는 관습을 만들었다.

헨델이 살아 있는 동안 이 곡은 해마다 공연되었고, 공연 수입은 모두 파운들링 구제병원으로 보내졌다. 헨델은 앞으로도 이 작품으로 인해 들어오는 수입은 모두 그 병원으로 보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1759년 4월 7일 헨델은 74세의 나이로 '할렐루야'가 공연되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나팔 소리가 울리리'가 시작될 때 그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 갔다.

며칠 뒤에 그는 '나는 성 금요일에 죽고 싶다'고 말했다. 1759년 4월13일(성 금요일)  불멸의 작곡가 헨델은 자신의 소원대로 눈을 감았다. 

[편집자 주]  sns를 타고 돌아다니는 이 이야기의 필자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글은 편집자가 원문 내용에 충실하게 재구성하였다. 혹시라도 저작권자가 나타나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삭제할 예정이다. / 사진출처 :  Wikimedia commons

-할렐루야 다시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9&v=VI6dsMeABpU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2.30 13:46 수정 2018.12.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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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