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전명희 [기자에게 문의하기] /
'말이 인격'이라 하는데 2022년 2월 21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도 막말 쏟아진 '막장 대선'이란 총평이다.
'너나 아프고 청춘하세요! 우린 안녕하지 못하다고요!'가 지난 2013년 겨울 한국 대학에 나붙은 대자보의 푸념이었다면 그 해 (2013년) 미국인들이 가장 짜증을 많이 내는 단어로 '아무렇거나'(좋을대로)란 뜻인 '웟에버whatever'가 선정되었었다.
한국에선 80년대 대자보에 나타난 '반미-혁명-해방' 같은 운동권 용어 대신 '안녕-불안-사회' 같은 일상용어가 등장했었다는데 미국에선 이 '웟에버'가 5년 연속 짜증나는 단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었다.
그럼 이 '웟에버'의 의미를 좀 음미해보자. '웟에버'는 '마음대로 해'나 '좋을대로' 등의 뜻으로도 쓰이지만 부정적 또는 긍정적 어느 쪽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정쪽으로는 '아무렇거나 상관없다', '내 관심 밖이다', '내가 어쩔 수 없다', '될 대로 되라'는 체념 상태에서 내뱉는 허탈감의 표시일 수 있다. 그 반대로 긍정적으로는 '아무래도 좋다'는 달관의 경지에서 발하는 소리일 수 있다.
영어로 표현해서 '계란이 있으면 오믈렛을' '레몬이 있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 If you are given eggs, make omelette. If you are given lemons, make lemonade.라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행복한 사람은 무엇을 얼마만큼 가진 사람이 아니고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선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나 보다.
아이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의 말처럼 "우리 모두 시궁창에 빠져 있지만 어떤 사람은 별을 쳐다본다.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이 말을 이렇게 바꿔 의역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별들을 너무 좋아하기에 밤이 무섭지 않다. I love the stars too fondly to be fearful of the night.'
16세기 중엽 스페인의 이냐시오 데 로욜라 Ignatius of Loyola(1491-!556)가 신교에 대항해 가톨릭교의 발전을 위해 조직한 예수회의 수사修士 발타사르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Baltasar Gracián y Morales(1601-1658)의.격언집 '세속적인 비망록 The Art of Worldly wisdom' 내용을 내가 한 마디로 줄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색만으로는 안 된다. 생각뿐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 실질적인 실용성 없는 지식이 무슨 소용 있으랴.)
"참된 지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True knowledge lies in knowing how to live.”
옛날 1960년대 내가 젊어서 서울 약수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 때 이 아파트에 관리인 한 분이 있었다. 이 아파트에 2년 남짓 사는 동안 그는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거의 잠시도 쉬지 않고 복도며 층계를 비로 쓸고 물걸레로 닦았다. 하루는 이 아저씨보고 하던 일 잠시 쉬고 우리 집에 들어와 차 한 잔 하시라고 해도 사양하시는 걸 권해 그는 마지 못해 우리 아파트에 들어와 얘기를 좀 나누셨다.
자수성가한 이 어저씨는 그가 젖먹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 살 때 엄마까지 잃어 시골 이웃집에 얹혀 머슴살이를 하다 그의 나이 열 여섯에 서울에 올라왔단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고 부지런히 짐을 나르다가 짐수레를 끌면서 3년 안에 돈 백만원을 모아 그는 나이 열 아홉 살 때 결혼하고 군에 갔다 제대한 후 도배와 미장이 목수일까지 하면서 헌 집을 사 수리해 팔기 시작, 점차로 집을 늘려 그 당시 싯가 천만원이 넘는 큰 집을 갖고 그 집 일부는 세를 주고있으며 아들 셋을 다 대학에 보내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글 한 줄 제대로 못 배우고 문학이나 예술, 학문이나 사상에는 무식할는지 몰라도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그 어떤 학자나 박사보다 더 유식하고 박식하며 어떤 신부나 목사 또는 스님보다 더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되었다.
전에 런던대학에서 내가 잠시 법학 공부를 할 때 인도에서 온 한 법학도로부터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자살했고 또 하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는 말을 듣고 회의감이 들었다. 그가 정말 얼마나 훌륭한 인간이었을까 하고.
언젠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옥중에서 자기 가족에게 쓴 편지를 읽고 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되새겨보았다. 그는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살아왔지만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또 아빠로서는 실패한 인간실격자요 인생낙오자란 자책감과 자괴지심에서 쓴 편지였다. 또 언젠가 다음과 같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에 깜짝 놀라 크게 감탄하면서 그에게 더욱 친근감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 어떤 여인이 나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다면. 그 언제, 그 누가 그럴 경우, 나는 내 힘껏 그 여인이 행복하도록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일에 실패하는 것보다 나를 더 비참하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Whatever woman may cast her lot with mine, should any ever do so, it is my intention to do all in my power to make her happy and contented; and there is nothing I can imagine that would make me more unhappy than to fail in the effort.”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1883-1931) 의 <선구자The Forerunner(1920)>에 나오는 경구 하나 반추해보리라.
'바람개비 The Weather-cock'
바람개비가 바람 보고 말했다.
"넌 왜 늘 한 방향으로만
내 얼굴을 향해 불어오지
단조롭고 지겹게도 말이야
너 좀 제발 다른 방향으로
반대쪽으로 불 수 없겠니?
난 너 때문에 내가 타고난
내 평정심을 잃고 있으니까."
바람은 아무런 대답 않고
허공 보고 웃을 뿐이었다.
The Weather-cock
Said the weather-cock to the wind,
“How tedious and monotonous you are!
Can you not blow any other way but in my face? You disturb my God-given stability.”
And the wind did not answer. It only laughed in space.
자 , 이제, 우리 김선태 시인의 '갈대의 시' 읊어볼거나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버릴 것도 추스를 것도 없는 빈 들녘
바람이 불면 외곬으로 쓰러져 눕고
다시 하얗게 흔들다 일어서는 몸짓으로
자꾸만 무엇이 그립다 쉰 목소리로 오늘도
그렇게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소리쳐 울래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만나는 바람마다 헤어지자 하는 겨울
지금은 싸늘히 식어 버린 사랑이라고
메마른 어깨마다 아픔으로 서걱이며
떠는 몸짓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오늘도
그렇게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흐느껴 울래
- 시집 《간이역》(1997) 수록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