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인연人緣 아니 인연因緣은 천연天緣, 우연偶然 아니 우연宇然이리

이태상

 

2022년 5월 4일자 미주 뉴욕판 오피니언 [삶과 생각] 칼럼 ‘인연’ 필자 수필가 제이슨 최는 “‘인연’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因)이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힘을 말하고, 연(緣)은 그것을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하면 꽃이 피는 것은 씨앗이라는 ‘인’에 땅과 물과 바람과 햇빛이라는 ‘연’이 만난 결과라는 것이다.”라며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키워간다. 금년은 5월8일이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 일)이다. 꼭 불자가 아니어도 인연의 소중함을 가슴에 되새겨봄 직하지 않은가?”라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인연’

‘인연’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因)이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힘을 말하고, 연(緣)은 그것을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하면 꽃이 피는 것은 씨앗이라는 ‘인’에 땅과 물과 바람과 햇빛이라는 ‘연’이 만난 결과라는 것이다.

‘범망경’에는 선근인연(善根因緣)이란 말이 나오는데 전생에 좋은 과보를 맺은 사람과의 만남을 겁(劫)으로 표현하고, 1겁의 시간은 물방울이 떨어져 집 한 채만한 바위를 없애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하며, 힌두교에서는 43억2,000만년을 1겁이라고 한다니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겠다.

‘인연경’에는 오백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이 한번 스치고, 7,000겁의 인연이 있어야 부부의 인연이 맺어진다고 했으며, ‘잡아함경’에는 겁에 대해 1유순(由旬), 약 15Km쯤 되는 철성(鐵城)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한 알씩을 꺼낸다. 이렇게 겨자씨를 모두 꺼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 했고, 사방이 1유순이나 되는 큰 바위를 100년마다 한 번씩 흰 천으로 닦아서 그 돌이 모두 닳아 없어진다고 해도 1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하니, 한 겁이 이러할진대 무려 7,000겁의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의 인연이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1,000겁에 한나라에서 태어나고, 2,000겁에 하루 길동무가 되며, 3,000겁에 하룻밤을 한집에서 보낸다. 4,000겁에 한민족으로 태어나고, 5,000겁에 한동네에서 살며, 6,000겁에 하룻밤을 같이 잔다. 7,000겁에 부부가 되고, 8,000겁은 부모와 자식이 되며, 9,000겁은 형제자매가 되고, 1만겁은 스승과 제자가 된다고 한다. ‘범망경’은 부모와 형제자매의 인연보다 1만겁을 잇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더 귀하다고 했는데, 육신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마음을 바로잡는 진정한 깨우침은 참된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야하는 이유다. 아무리 작은 모래알도 그냥 물에 던지면 모두 가라앉는다. 그러나 아무리 큰 바위라도 배에 실으면 가라앉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지혜의 배를 반야선(般若船), 범어로는 프라즈나(Prajna)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진실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얻어지는 근원적 지혜를 말한다.

사람이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무술’이가 ‘왕비’가 되기도 하고, ‘왕비’가 ‘무술’이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저마다의 인연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인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애틋한 인연도 있다. 영문학자요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의 일본 유학시절 하숙집 딸 ‘미우라 아사코’와의 세번 만남과 헤어진 첫사랑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가슴 시리도록 아련한 사랑 이야기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세 번째 만났을 때 아사코는 결혼을 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하숙하던 부모님의 집 근처에 살더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고 돌아와 적잖이 가슴앓이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의 수필집 ‘인연’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세 번째 만남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키워간다. 금년은 5월8일이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 일)이다. 꼭 불자가 아니어도 인연의 소중함을 가슴에 되새겨봄 직하지 않은가?

<제이슨 최 수필가>

자, 이제, 지난해 2021년 10월 24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우리 되새겨 볼거나.


[이태상 칼럼] 영혼의 짝 찾기가 우리 모든 코스미안의 우로역정宇路歷程이리. May Soulmating Be the Cosmic Journey of Us All Cosmians

2021년 10월 20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단상] '파도에 쓸린 작은 둥근 돌' 필자 리처드 김 할리웃배우조합 회원은 바닷가 산책 중에 파도에 쓸려 작아진 둥근 돌들을 보며 "아 인생은 저렇게 둥근 작은 돌처럼 마쳐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얼마전 지인들과 2박3일로 멕시코 산토 토마스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바닷가 산책 중에 파도에 쓸려 작아진 둥근 돌들을 보며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아 인생은 저렇게 둥근 작은 돌처럼 마쳐야하는 것이구나”

사람들은 인생의 거친 고난의 파도에 쓸리면 인생이 고달프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럴까?” 인생의 파도가 거칠면 거칠수록 둥글게 다듬어진다. 먼저 모난 부분들이 돌과 돌이 부딪히며 자신의 모양을 찾아간다. 모양을 찾아간 둥근 돌들은 시련의 고통을 알았기에 그 돌을 밟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돌이 파도에 쓸리면 쓸릴수록 둥글어진 작은 돌들은 큰 둥근 돌들보다 뒤로 밀려난다. 이렇듯 인생은 둥근 작은 돌들처럼 세월의 파도에 밀려 조용히 뒤로 사라지는 것이다.     

진정한 인생의 깨달음은 강한 파도에 쓸린 작은 둥근 돌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파도는 항상 밀려오고 있다. 그 파도는 피할 수는 없다. 단지 그 파도를 받아들이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자신을 다듬어 가는 길밖에 없다. 그런 거친 파도는 자신을 성장시키며 성숙한 인생의 길로 인도한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준다. 자연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리처드 김 / 할리웃배우조합 회원>

인생이 사랑의 역정歷程이라 한다면 실패한 사랑의 기록인 <연애론 On Love>으로도 유명한 스탕달 Stendhal(본명Marie-Henri Beyle's pen name 1783-1842)의 말 좀 인용해보리라.

 “좋은 책은 내 인생의 하나의 사건이다.  A good book is an event in my life.”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고독에서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인격 말고는.  One can acquire everything in solitude except character.” 

― Stendhal, Five Short Novels of Stendhal

“행복의 비전이 여럿이듯이 아름다움의 양식 스타일도 여러 가지다.  There are as many styles of beauty as there are visions of happiness.” 

― Stendhal, Love

“난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두려워한다.  I love her beauty, but I fear her mind.” 

― Stendhal

“그대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사랑할 수 있으니까.  If you don't love me, it does not matter, anyway I can love for both of us” 

― Stendhal

“우리의 진짜 정열은 이기적이지.  Our true passions are selfish.”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유일한 신神의 변명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God's only excuse is that he does not exist” 

― Stendhal

“모든 종교는 어리석은 많은 사람 우중愚衆의 공포와 소수의 영리한 계략計略에 근거, 기초한 것이다.  All religions are founded on the fear of the many and the cleverness of the few.” 

― Stendhal

“아름다움이란 행복을 약속해주는 것일 뿐이다.  Beauty is nothing other than the promise of happiness.” 

― Stendhal

“즐거움은 표현함으로써 김이 샌다.  Pleasure is often spoiled by describing it.” 

― Stendhal


“머리로 생각하는 사랑은 진짜 사랑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더 고매하고 일시적인 열정이다.  그 생각 자체를 쉬지 않고 비판하면서도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는커녕 하나의 사고의 구조위에 세워지는 건축물이다.  Love born in the brain is more spirited, doubtless, than true love, but it has only flashes of enthusiasm; it knows itself too well, it criticizes itself incessantly; so far from banishing thought, it is itself reared only upon a structure of thought.”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아주 작은 희망만으로도 사랑은 탄생한다.  A very small degree of hope is sufficient to cause the birth of love.” 

― Stendhal

“도덕적인 음독飮毒 후엔 육체적인 교정과 치료 그리고 샴페인 술 한 병이 필요하다.  After moral poisoning, one requires physical remedies and a bottle of Champagne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신앙. 난 그런 (걸 가질 만큼) 바보 천치가 아니다.  인생이라 일컫는 이기심의 사막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 할 일이다. Faith, I am no such fool; everyone for himself in this desert of selfishness which is called life.”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폭군들이 가장 써먹기 좋은 아이디어 개념과 단어는 신神이라는 말이다.  The idea which tyrants find most useful is the idea of God.”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사람을) 감동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가슴에 상처를 주는 거다.  The only way of touching a heart is to wound it” 

― Stendhal, The Red and the Black

 
어젯밤에 나는 앞뒤의 연관관계가 없이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꿈을 꾸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떤 미지未知의 여성이 꼭 7일 동안 밤과 낮을 같이 지내보고 결정하자는 제의를 하는 거였다. 

불교에서는 5백 번 윤회를 거친 후에라야 부부의 인연이 맺어진다 했던가.  현재 부부로 같이 살고 있는 커플 중에 더할 수 없이 애틋하고 다정하게 행복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고, '진짜 짝'이라고 느끼면서 다음 생에서도 같은 사람과 살겠노라고 할 사람이 또 얼마나 되는지 모를 일이지만, 지난 85년 가까이 살아 온 내 삶을 돌이켜 회상해보리라.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 세 살 때 집을 나와 나는 길을 떠났다.  


어쩌면 타고난 태곳적 향수에 젖어 떠돌아 방황하던 시절, 이미 어린 나이에 사랑의 순례자가 된 나는 독선과 아집으로 화석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카오스적 세계가 보기 싫어 순수한 사랑으로 코스모스 속에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한 나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한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먼 훗날에야 나는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가는 곳마다 길가에 깨끗하고 고운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피어 길 가는 사람의 눈길을 붙잡는다.  이때면 누구나 가슴앓이를 하게 되는 것이리라.  아물어 가던 가슴 속 깊은 상처가 도져 다시 한 번 코스모스 상사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어느 덧 나는 청년이 되었다. 

"세계의 모든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만 참 종교이고 나머지는 다 미신입니다."

주임교수 강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란 초인간적인 창조주/조물주 신을 숭배하고 신앙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할진대 기독교만이 참종교이고 나머지는 모두 미신이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나는 대학에 진학할 때 전공과목을 무엇으로 택할까 고민했다.  대학과정이란 하나의 교양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일생을 살아가는데 학문적인 기반, 경제적인 기반, 사회적인 기반 등이 다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기반을 닦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인생이 망망대해에 떠도는 일엽편주 一葉片舟 같다지만 그런대로 내 나름의 방향감각을 갖고 내 뜻대로 항해해 보기 위해서는 인생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내가 선택한 대학과 전공이 서울문리대 종교철학이었다.  

"기독교도 다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여러 신교 교파중에서도 감리교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이단입니다. 기독교인도 다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천 명이면 구백 구십 구 명은 다 가짜 신자입니다."

참다 못해 나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내가 믿는 종교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도 소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종교학과 주임교수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내친 김에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세가 가장 큰 데 기독교인들은 사실 그 차이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고, 그 중에서 감리교만이 진짜라고 하시니 결코 공정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기독교가 없었다면 십자군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주임교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이 된 나는 뭐라 대꾸를 하려다가 그만두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나는 교수님의 독선 독단적인 강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닐 때는 극장 문 앞에만 가도 당장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는 줄로만 알고 수도사적인 생활을 했었다. 

크게 실망한 끝에 교회를 '졸업'하게 된 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고 무한한 호기심을 품은 채 '인생탐험'에 나섰다.  

그동안 안 읽던 소설책들을 밤새워 탐독하고 안 보던 영화를 하루에도 여러 편씩 관람했다.  영화나 소설을 보고 읽는데 만족하지 않고 영화나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실제로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나 소설에 없는 스토리까지 독창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살아보리라 나는 결심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짝'을 찾아 나섰다.  온실의 화초같이 고이 자란 여자를 만나 더욱 곱고 아름답게 가꿔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불우하게 자란 여성을 만나 전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더 보람 있지 않겠나 생각에서 심지어 창녀촌까지 찾아다니며 창녀의 몸값에 해당하는 빚도 갚아준 적이 있을 정도로 내 순정을 바쳤다.  

하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수많은 여자들한테서 실연만 당하고 내 가슴은 민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갔다.  번번이 헛짚고 헛수고일 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대학의 교양과목 시간에 읽은 단편소설 하나가 있다.  1943년 출간된 그 영문 소설의 제목은 '만날 약속 Appointment With Love by S.I.Kishor'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한 젊은 전투기 조종사 미육군 중위가 부대 도서실에서 미국 시민들이 해외 전장에 나가있는 장병들을 위해 기증한 도서들 가운데 영국 작가 섬머셋 모음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자전적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 Of Human Bondage(1915)를 읽다가 행간에 미지의 여인이 써놓은 낙서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책 뒷장에 적힌 여인의 이름으로 낙서의 필자를 끈질기게 추적해 펜팔로 1년 이상 사귀게 된다.  사진 한 장 보내달라는 남자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여자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아름답다고 가정해서, 당신이 내가 미인일 거라는 기대를 갖고 나와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라면 그런 사랑엔 난 심한 거부감을 느껴요.  반면에 내가 못 생겼다고 가정해서, 당신이 그냥 외롭고 심심한데다 다른 아무도 없어서 나와 이렇게 펜팔 교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Suppose I am beautiful. I’d always be haunted that you had been taking a chance on just that, and that kind of love would disgust me. Suppose that I’m plain, then I’d always fear that you were only going on writing because you were lonely and had no one else."

종전이 되어 귀국하면서 그는 여인을 맞나기로 한 어느 기차역 프랫폼에 도착한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라 남자는 '인간의 굴레'를, 여자는 꽃 한 송이를 들고 나오기로 했다.  

자나 깨나 그리던 여인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남자의 눈에 꽃 한 송이 든 할머니가 나타났다.  순간 남자는 자못 실망했으나 피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남자와 만나기로 한 젊고 아리따운 처녀가 기차역 앞 어느 레스토랑에서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보라고 한다.  

이 영문 소설을 떠올린 나는 가슴 속에 꿈을 하나 키우게 된다.  나의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를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찾아보리라.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펜팔 교제였다.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편지로 사귀다 보면 상대방의 용모라던가 학벌, 신분, 직업, 재산 등 외적 조건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면서 좀 더 진실한 내적 인간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판단했다.

대학의 강의실에서 뛰쳐나온 이후로 나는 신과 내세 중심의 종교를 포기했다.  그 대신 짝을 찾는 일에 전념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때 그때 최선을 다 하노라면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앞에 인용한 글에서처럼 "인생의 파도가 거칠면 거칠수록 둥글게 다듬어진다"고 성공도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것이리라. 그뿐더러 '인생의 그림'은 내가 그리는 것 같아도 큰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리라.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일이다.  젊은 날 취중 '사고'로 결혼하게 된 세 딸들 엄마와 20 년 후 두 번 째 (첫 번째는 결혼한 지 2 년 뒤 이혼한 후 셋째 아이 임신 중인 걸 알고 재혼해 18년 더 노력한 끝에) 다시 이혼한 직후 옛날 군복무 시절 펜팔로 6 개월 사귀다 제대 후 딱 세 번 만나고 (여자 어머님의 반대로) 헤어졌던 여인을 25 년만에 뉴욕에서 재회, 우리 두 사람 다 재혼했으나 10개월 후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짝'을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진인사대천명하는 비장한 각오와 절박한 자세로 궁여지책窮餘之策을 써봤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미주판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에 6개월에 걸쳐 다음과 같은 구혼광고를 냈었다.

'인생의 가을철을 같이 즐길 코스모스 같은 가을여인을 찾습니다.  정력왕성하고 낭만적인 50대 남성 연애지상주의자가 지적 대화 가능한 미심美心 미혼美 魂의 비기독교신자를 찾습니다.'

그랬더니 미국 각지에서 수백 명의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있었고 그 중에서 수십 명을 만나봤다.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왜 미국에 사느냐, 덤벼들어 물고 늘어지는 여자를 비롯해 장난삼아 전화하는 사람, 돈이 얼마나 있느냐, 집이 있느냐, 어떤 자동차를 모느냐, 직업은 뭐고 어느 고향 어떤 학교 출신이냐, 미국 시민권자냐 영주권자냐, 애들이 몇이나 있느냐, 전前부인과는 왜 어떻게 헤어졌느냐, 키는 얼마나 크며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느냐,혈액형은 무엇이냐, 묻는 야자가 많았다.

그밖에도 그냥 전화로 말벗이나 하자는 유부녀와 처녀들도 있었고, 남자 망신 그만 시키라며 노발대발 하시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도 광고를 내 볼까 하는데 광고 내면 그 반응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오는 남자도 있었다.  

흔히 '네가 먹는 것이 너다. You are what you eat.'라고 한다.  이게 어디 먹는 것뿐이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 꿈꾸는 것, 믿는 것, 모두 그렇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각자 제가 보고 싶은 대로 제가 찾는 것만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극찬을 하는 서평도 악평을 하는 것도 있어 같은 책이 전혀 다른 책이 된다.  무엇을 말하는가는 듣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그 내용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1871-1922)도 "독자가 읽는 것은 독자 자신이다.  Every reader, as he reads, is actually the reader of himself."라고 했으리라.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얼마 전 인터넷에 이런 '구혼' 광고가 났다.  

"검은 살갗의 빛깔 살빛에 미모의 미혼여성이 남성 반려자를 찾습니다.  어떤 인종이든 다 괜찮습니다.  나는 놀기 좋아하는 아주 새파랗게 젊은 여성으로 산책하기, 당신의 픽업트럭 타고 달리기,    야영하며 사냥하고 낚시하기, 그리고 겨울밤엔 불가에 포근히 눕는 거를 즐긴답니다.  촛불 켜고 당신의 손에서 받아먹는 저녁식사도 좋습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돌아 올 때면 문 앞에서 당신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데이지를 찾아주셔요."

놀라지 마시라.  이 광고를 보고 자그마치 만 오천 명 이상의 남자가 전화했는데 전화가 걸려 온 곳은 미국 조지아 주 아틀란타 시에 있는 애완동물 보호소이고 데이지는 태어난 지 8주 된 라브라도종 암사냥개의 이름이다. 우리말에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이야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보면 예술이지만 음심淫心을 품고 보면 외설猥褻이 되겠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무도 그 누굴 흉보고 욕할 자격 없다는 거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했다는 예수의 말처럼 '유리 집에 사는 사람은 남의 집에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서양 속담 대로 세상의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설혹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가 완전무결하다는 것이 그의 단점이 될 수 있는 한 아무도 그 누굴 나무랄 수 없으리라.  세상 사람들이 다 다르고 그들이 각자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 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와 같지 않다고 맞다 틀렸다 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우리는 모두가

네 숨은 네가 내 숨은 내가

네 삶은 네가 내 삶은 내가

네 사랑 네가 내 사랑 내가

쉬고 살고 뛰고 오를 수밖에


사랑이 모험 중에 모험이라면

용기와 신념만 있으면 족하리.

 사랑이 다가오는 순간은 미세한 떨림에서 시작된다.  첫 떨림의 순간이 파장을 일으켜 첫 만남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사랑하니까.  그리고 또 사랑하니까. 영원이 되는 것이다. 

 용혜원의 시 '사랑하니까' 중에도 사랑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사랑하니까'

/용혜원

 

"사랑이란
함께 걷는 것이다

멀리 달아나지 않고
뒤에 머물러 있지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같이 걷는 것이다

서로의 높이를
같이하고 마음의
넓이를 같이하고

시련의 고통을 이겨내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까지
둘이 닮아 가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1883-1931)이 '예언자의 뜰 The Garden of the Prophet(1933)'에서 말하듯 "영겁을 두고 떨어져 있는 연인들 사이를 맺어주는 영원한 순간이 있나 하면, 그리워하는 생각 다함이 이별이란 망각 There are moments that hold aeons of separation. Yet parting is naught but an exhaustion of the mind."이라면 지금의 내 입장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스스로 길을 찾는다 했던가.  

"사랑이 나를 끌고 갈 때, 내 침묵에 파문이 일어나고 말에도 결이 생겼습니다.  그 파문이, 물결처럼, 바람처럼, 숨결처럼 누군가의 마음 속에 스몄으면 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내 몫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독자여, 읽는 내내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읽으시라."

그동안 실존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한계와 고독을 성찰해 온 천양희 시인이 환갑을 맞아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며 시로 쓴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고백한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를 2003년 펴내며 주문한 말이다.  

정녕,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순수성과 영원성 그리고 운명성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그 제목은 '영원한 사랑 Love Eternal'이다.  중국의 한 가극 오페라를 멜로드라마로 각색해 만들어져 1960년대 중국 특히 대만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로 오늘날까지 매번 볼 때마다 눈물을 쏟는다"며 자기가 만드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이 '영원한 사랑'이 주는 영원한 감동의 진수를 되살려 보려는 것뿐이라고 '와호장룡臥虎藏龍 영어: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의 감독 리안 Ang Lee 이 언젠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영원한 사랑'은 이런 이야기다.

어느 조그만 마을 부유한 집에 태어난 리디는 총명하고 호기심 많아 공부를 하고 싶어도 남자애들처럼 학교에 갈 수 없다.  남자들만 학교를 갔으니까.  궁리 끝에 남자 아이로 변장을 하고 학교에 가겠다고 부모님을 졸라 설득한다.   남자 아이들만 있는 기숙 학교로 가는 길에 개울가 석탑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는 링포를 만나 금세 친해진다.  그러면서 리디는 링포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둘은 맺어지지 못하고 리디가 다른 사람과 정혼하게 되어 그 사실을 알게 된 링포는 그 소식에 절망해 열병을 앓다 죽는다.  이 비보를 들은 리디는 시집가는 날 링포의 무덤 앞을 지나다가 신부복을 벗어버리고 속에 입고 있던 상복 차림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링포의 무덤이 갈라지고 리디가 그 무덤 속으로 뛰어들면서 합장되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1987년 첫 출간된 고故 김윤희(1947-2007) 작가의 장편체험소설 '잃어버린 너'라기 보다 우리 모두 '되찾을 나'가 아닐까.


노향림의 시 '파브르의 곤충기1' 가 생각난다. 


 "잃어버린 짝을 찾아 

눈 가리고도 수천 수만리를 
단독 비행해 온다는 
벌 이야기가 떠올랐다.


먼 옛날로부터
사람은 날개 터는 벌이 아니었을까.

마주치는 얼굴마다
온종일 붕붕거리기만 한다."

 
지난 달 2021년 9월 20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옮겨보리라.

[이태상 칼럼] <한가위에 ‘달무리’ 아니 ‘우주무리’가 되어보리>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  이해인 시 ‘달빛기도 – 한가위에’


설혹 우리가 달이 되지 못하더라도 달무리는 될 수 있지 않으랴. 어렸을 때 읽은 동화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벌이 나비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비는 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꽃밭으로 아름다운 꽃들만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이 나비로 보여 벌은 하늘로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그리움에 사무친 벌의 숨이 차다 못해 달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2.05.07 10:06 수정 2022.05.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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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