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W=양병현 칼럼]
[세상소리뉴스=VOICE OF WORLD] 미 대법원이 24일 ‘낙태 합법화’를 49년 만에 공식 폐기했다. ‘낙태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 각 주 정부와 의회가 판단하게 됐다.
문제는 ‘낙태’를 금지·제한하는 법안이 동시에 발효되는 ‘트리거’(trigger) 조항이다. 루이지애나 지방법원이 ‘낙태금지법’ 즉각 시행을 일시 중단 결정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낙태’는 여성 권리 중 자기 몸 자기 결정권이다. ‘낙태금지법’ 시행은 이를 ‘죄’로 규정한 셈이다. 각 주로 소송전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낙태권”은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 여성의 “기본 권리”라고 주장한다. 플로리다 주는 40여년간 주법으로 ‘낙태권’을 보장했다고 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 경우 ‘낙태권 보장’ 61%에 ‘낙태금지’ 37% 결과가 나왔다. 미국 여론이 분열될 정도로 ‘낙태’ 논란이 ‘핫뉴스’가 된 셈이다.
법률이란 도덕의 최소라고들 얘기한다. 도덕적으로 ‘낙태’는 안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깔려 있다. 자기 몸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옛 그리스에 3용어가 있다.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이다. 지금도 개인의 정서, 사회적 통념, 논리적 이성을 규정할 때 쓰인다.
윤리 ‘ethics’란 ‘에토스’여서 사회적 공감대로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파토스’는 특별한 감성으로 창의적 원천이지만 지나치면 병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거론하는 이유는 ‘낙태’를 보는 개인 감성과 사회 합의를 나누어 보자는 의도로, 사회적 의식은 개인별 공감대의 총합이라 무엇이 먼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감성이 먼저 아닌가 싶다. 자신이 느끼고 판단하는 일이 우선이어서다. 공감하는 머릿수가 많아지면 그게 사회적 힘이 되고 정치 세력이 되는 이치다.
‘낙태’에 대해 개인 ‘파토스’는 천차만별이다. 성별에 따라 다르고 개인별 감성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공감 단위 수가 커지면 집단 ‘에토스’가 형성된다.
‘낙태’는 보수 집단이 싫어하는 단어지만, 진보 집단은 우호적이다. 개인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서다. 보수층은 ‘파토스’보다 ‘에토스’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 대법원의 ‘낙태죄 부활’ 의미를 ‘보수당 유산’이라 부르는 이유다. 여성과 청소년은 사회적 약자로 인권이 합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잘 안 된다.
한국 대법원도 다소 보수적이긴 하다. 2019년 ‘낙태죄’가 위헌 판결이 났다. 진보성향의 문재인 정부 때 일이다. 여성의 자율권과 선택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낙태죄’ 관련 법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다는 뜻으로, ‘에토스’가 되기에는 ‘파토스’의 총합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낙태죄’ 위헌 판결이 ‘낙태 합법화’를 의미하지는 않아, 몰래 낙태하던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고 있지만, 묵인이지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크지는 않다.
‘낙태’를 여성 임의로 할 수 없는 게 상대방인 남성이 있고, ‘낙태’는 안된다는 미국 경우 거대한 ‘에토스’인 기독교의 태아 ‘생명 존중 사상’이 깔려 있다.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 가는 아직 합의가 안 되어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어쩌면 영원히 합의를 못 볼지 모르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뉴질랜드는 20주까지 임의로 ‘임신 중지’ 결정권을 인정한다. 아르헨티나는 14주 이내, 호주는 전역에서 합법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개인별로 집단별로 느끼는 ‘파토스’ 기준만 가지고는 ‘낙태’를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측면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과 인생을 생각해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은 여성이나 남성에게 불행할 수도 있는 데다 신체에 미치는 위해도 적지 않다.
특히 여성이 임신 중절할 때 남기는 합병증이나 후유증도 커, 영구 불임 위험성도 높다고 한다. 물론 심리적 상처도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낙태 합법화’한다 해서 여성이 마음대로 낙태를 할 거라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부분은 논리적인 ‘로고스’ 영역이어서 과학 등 객관성이 확보되어 있다.
예로, 의학적 부작용이 예상되는 게 확실한데 그렇게까지 불합리하게 자기 몸을 임의로 결정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손 놓을 얘기는 아니다. 자유와 규범 얘기가 있다. 여성의 자율성은 기본권 문제이긴 하지만, 자유 영역이 커질수록 사회적 규범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자기 몸을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낙태 합법화’를 법제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부 나라에서는 배우자 동의가 필수라고 한다.
반대로 ‘낙태죄’가 여성의 자율권과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얘기는 할 수 있어도, ‘낙태 합법화’ 입법에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어렸을 때부터 ‘성교육’을 받는 교육체제 얘기도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성소수자 인권 교육도 플로리다 주에서는 학부모 층이 다양해 가벼운 화두가 아니다.
종교, 인종, 성별, 지역, 연령, 교육, 경제, 과학, 보건, 철학, 사상, 전통 등 사회적 단위가 늘어날수록 단위별 ‘파토스’ 혹은 ‘에토스’ 얘기는 끝이 없어서다.
양병현 Ph.D.
국민교육혁신포럼 회장
현주 기자 sockopower@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