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청소년의회 기자단 / 현은빈 인턴기자] 1948년 이승만이 제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2022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총 13명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지냈다. 그러나 취임 기간이 짧고 군사, 독재 정권에 묻혀 제대로 기억되지 않은 대통령들이 있다.
제1, 2, 3대 대통령을 지내던 이승만과 제5, 6, 7대 대통령을 지내던 박정희 사이에는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 있었다. 윤보선 이전에는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을 대신해 총 3명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부의장, 내각 수반의 순위로 대통령의 권한을 수행하여 국정 공백을 방지한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부통령도 같이 궐위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 1순위였다. 허정은 4·19혁명이 일어난 그해 4월 27일부터 6월 15일까지 권한대행을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6월 15일 제2공화국 출범과 함께 허정은 국무총리로 취임하게 되었고 대통령 권한대행은 ‘곽상훈’ 민의원 의장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곽상훈이 사임하며 6월 16일부터 6월 22일까지 일주일 동안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끝났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다시 허정 국무총리에게로 돌아가 6월 23일부터 8월 7일까지 직무를 수행하였다. 8월 8일 ‘백낙준’ 참의원이 참의원 의장으로 선출되며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8월 12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었다. 제2공화국 당시는 의원 내각제였기 때문에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이승만 정부의 붕괴와 함께 자유당도 붕괴하며 민주당 의원이었던 윤보선이 재적 263석 중 259명이 투표하여 208표를 얻으며 대통령에 선출된다. 1960년 8월 13일부터 윤보선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인 1961년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세력은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한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하고 국회와 지방의회를 해산시켰다. 5월 18일 ‘장면’ 국무총리로부터 계엄령 추인과 정권을 인양 받고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명한다.
1961년 6월 6일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 제정, 공포된다. 법이 제정되며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최고 통치기관으로서 헌법상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1962년 3월 22일 군사 정권의 압박에 못이긴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은 사임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3월 24일 국가재건최고회의 회의에서 사임 허가를 의결한다. 그렇게 윤보선은 1년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마땅한 업적 없이 대통령 자리에 있다가 물러나게 된다.
윤보선 대통령 사임 후 박정희가 3월 24일부터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대통령 권한 대행을 수행하게 된다. 1963년 10월 15일 직접 선거 방식으로 대통령 선거가 이뤄졌다.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46.6%,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45.1% 득표를 얻으며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박정희는 1963년 12월 16일까지 1년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있다가 1963년 12월 17일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당한다. 이른바 10·26사태가 일어나고 16년이라는 장기 집권은 막이 내린다. 박정희가 피살되고 대통령 자리가 궐위되자 당시 국무총리이던 ‘최규하’가 제4공화국 헌법 제48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다. 그리고 그는 그해 12월 6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한다.
1979년 12월 6일 대통령 간선제로 최규하가 제10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당시 제4공화국은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며, 최규하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재적 의원 2,560중 2,549명이 투표하고 2,46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최규하가 12월 21일 대통령에 공식으로 취임하기 전인 12월 12일, 12·12사태라고 잘 알려진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 세력으로 한 하나회 신군부 세력들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어 1980년 5월 17일 하나회는 비상계엄 확대를 위한 5·17쿠데타를 또다시 일으킨다. 비상계엄은 확대되고 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온다. 결국, 1980년 8월 16일 군부 세력의 압박에 최규하는 대통령 자리를 사임한다. 대통령 자리가 또다시 궐위되자 5·18민주화운동으로 ‘신혁확’ 국무총리가 사임한 후 국무총리 서리로 있던 ‘박충훈’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한다.
서리는 직책에 결원이 생겼을 시 직무를 대신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헌법 제86조 제1항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총리 서리는 국회 동의 전에 임명한 직책을 말한다. 총리 서리 제도는 위헌이라는 논란이 계속 불거졌으며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제도다. 박충훈은 1980년 8월 16일부터 9월 1일까지 직무를 수행했다.
1980년 8월 27일 대통령 간선제가 이뤄지고 9월 1일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전두환은 1988년 2월 24일까지 7년 동안 재임한다. 이후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노태우’가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는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후 1993년 제14대 대통령으로 ‘김영삼’이 취임하며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선다. 1998년 제15대 대통령으로 ‘김대중’이 차례로 취임하게 된다.
2003년 제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이 취임하지만 2004년 3월 12일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며 탄핵이 이뤄진다. 대통령 자리가 공백이 생기자 당시 국무총리이던 ‘고건’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소추안을 기각하며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직에 복직하게 된다. 그렇게 고건은 5월 14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2008년 제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이 취임하고 2013년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취임한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2016년 12월 9일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직무 정지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선고를 받으며 임기도 채 끝내지 못하고 대통령직을 박탈당한다. 대통령 자리가 궐위되자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약 5개월 동안 수행했다. 2017년 문재인이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제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이 취임해 현재 직무를 수행 중이다.
대통령의 변화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많은 변화를 일으켰으며 어쩌면 현대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을 수도 있었다. 대통령을 결정짓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부터 국민이 이를 결정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재목을 당선 이후가 아닌 이전부터 인식하는 것은 유권자로나 한 국민으로나 해야 할 일이다. 단순히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