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스 / 이한령 기자] 중립국 노선을 걸어왔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튀르키예(舊 터키)가 반대 입장을 내비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달만인 5월 18일(현지 시각) 두 국가는 벨기에 브뤼셀 NATO 본부에 공식적으로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강 체제로부터 정치적, 안보적 중립을 고수해왔으나, 지리적 근접성이 안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NATO 가입을 결정했다.
새로운 국가의 NATO 가입에는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찬성이 요구되는데, 기존 29개국이 환영의 의사를 표하면서 순탄히 진행되는 듯하였으나 동월 16일 튀르키예가 자국에 대한 제재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해 제동을 걸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튀르키예에 제재를 가하는 이들이 안보 기구인 NATO에 가입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며, “찬성한다면 더 이상 NATO는 안보 기구가 아닌 테러 대표들이 몰려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튀르키예와 스웨덴, 핀란드는 쿠르드족 민족주의 테러 조직 PKK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으며 두 유럽 국가는 지난 2019년 튀르키예에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28일 세 국가는 NATO 정상회의에서 스웨덴과 핀란드가 무기 수출 금지 제재를 중지하고 PKK에 대한 지원을 끊는 것을 조건으로 튀르키예가 가입을 지지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만장일치 찬성 이후에도 스웨덴과 핀란드는 각 30개 회원국 의회에서 가입 동의 비준을 받아야 하며, 튀르키예가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비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미묘한 대립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NATO와 튀르키예
NATO는 냉전 시절 구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바르샤바 보약 기구에 대항하여 창설된 북대서양 국가들의 안보 연합체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르는 지정학적 특징을 이유로 소련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던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에 서방 진영으로 참전하여 친 NATO 노선에 편승했고 1952년 NATO 회원국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본토에 미국 핵미사일을 배치하고 지중해로 가는 해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단해 소련 해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등 냉전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 진영을 견제하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주요 회원국으로 떠올랐다. 지금도 튀르키예는 NATO 내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핵무기 50여 기를 가지고 있는 세계 군사력 13위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튀르키예와 NATO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을 기점으로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NATO 및 EU 회원국보다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유럽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예측불허한 행보를 걷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2016년 쿠데타 모의 혐의로 미국인 목사를 체포하여 벌어진 미국과의 제재 전쟁, 미국의 무기 수출 거부를 이유로 한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수입, 튀르키예 인권운동가 오스만 카발라의 투옥 문제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 10개국 대사를 추방 및 철회, 지중해 그리스 영해 불법 시추, PKK 진압 및 안전지대 구축을 목적으로 한 시리아 북부 침공 등이 있으며, 현재까지 다수의 EU 국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정책 기조를 고수 중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NATO 가입 선언
전(前) 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와 국경을 인접해 있으며 전쟁 이후 중립국을 선언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스웨덴이 중립 노선을 밟기 시작한 것은 18-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노르웨이와 핀란드, 현 발트 3국의 영토까지 점령 중이었던 스웨덴은 발트해와 철광석, 선진 기술의 소유자로서 강력한 패권 국가로 군림했다. 그러나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서방식 개혁을 통해 급격히 발전한 인접국 러시아(당시 루스 차르국)와 발트해를 놓고 대북방전쟁을 벌였다가 참패하면서 스웨덴 제국은 몰락의 길을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에, 1808년에는 러시아 제국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노르웨이와 핀란드가 분리되면서 패권국의 지위를 사실상 잃게 되었다. 수많은 전쟁 후 20세기 초부터 비동맹 무장 중립 노선을 택한 스웨덴은 1, 2차 세계대전의 화마를 피했고 NATO와 WTO에 가입하는 대신 노르딕 밸런스 정책을 기반으로 북유럽의 중립화를 이끌어 왔다.
핀란드는 발트해의 입구이자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국가로서 끊임없이 러시아의 표적이 되었다. 스웨덴-러시아 전쟁에서 두 국가가 노리던 영토는 항상 핀란드였고 1809년 나폴레옹 전쟁 중 러시아에 침공당하여 러시아 제국령에 할양되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러시아 제국이 몰락하면서 독립했으나 곧 우익과 좌익 간의 내전이 벌어지면서 반공 감정과 소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자리 잡는다.
두 국가의 영토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1939년 2차 세계대전 도중 제국의 옛 영토를 수복할 목적으로 핀란드를 침공하였고, 비록 점령에는 실패했으나 영토 10%를 잃게 되었다. 전후 핀란드는 마셜플랜(2차대전 이후 미국이 자유주의 확산을 위해 서유럽의 재건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원조 계획)과 NATO 가입을 거부하고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서 비동맹 무장 중립주의를 고수해왔다. 국제 정치계에서는 이렇게 강대국과 동맹도, 적대적 관계도 맺지 않으며 중립을 유지하는 핀란드의 외교 기조를 본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냉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독자적 노선을 걸어온 두 중립국이 자세를 바꾸게 된 기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근본적인 침공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막고 국경 인근 국가들을 완충지대로 설정함으로써 NATO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아 일어날 수 있는 안보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는 인접국 스웨덴과 핀란드에 러시아가 안보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타 주권국가를 무력 침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으며, 우크라이나가 군사 동맹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모습에 자신을 대입하게 했다. YLE와 Demoskop에 따르면 올해 핀란드의 NATO 가입 찬성 여론은 76%, 스웨덴은 57%까지 치솟았다. NATO 회원국은 상호방위조약 5조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에 따라 러시아의 침략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국가는 공식적으로 중립 노선과 비동맹 무장 주의를 포기하고 NATO에 가입을 신청했다. NATO의 동진(東進)을 막기 위해 벌어진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오히려 동진을 더 촉진한 것이다.
튀르키예 - 핀란드, 스웨덴의 대립
NATO 핵심 멤버 튀르키예와 두 NATO 가입 희망 국가 간의 대립은 PKK와 이들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쿠르드족은 자국 영토 없이 튀르키예, 이라크, 시리아에 분포한 민족이다. 특히 튀르키예의 쿠르드족은 오스만 제국의 자치주 쿠르디스탄에서 거주하다 제국이 멸망하고 서방 연합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침공에 합세했으나, 튀르키예가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민족성을 부정당하고 튀르키예인으로 살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튀르키예 정부와 쿠르드족은 융화와 독립을 두고 지속해서 갈등을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설립된 극좌파 정당이 PKK다. 튀르키예를 비롯해 미국, NATO, EU 등 다수의 서방 진영은 이들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9년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YPG가 PKK의 해외 지부라고 주장하며 시리아를 침공했고 스웨덴은 이를 근거로 방위산업 제품 수출 제재를 가했다. 또한 스웨덴과 핀란드는 각각 6명, 11명의 PKK 당원을 포함해 총 10만 명, 1만 명의 쿠르드 난민을 수용할 정도로 쿠르드족에 호의적인 국가다. 스웨덴 의원 중 6명은 쿠르드족이며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용의자의 측근 인사 16명도 두 국가에 망명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NATO 가입 동의를 강력한 외교 협상 카드로 사용하여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대한 서방의 반발과 제재를 완화하고자 한다. 튀르키예는 오랜 라이벌 국가 그리스가 1980년 탈퇴 후 재가입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유럽 국가들이 튀르키예 정부와 대치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는 노력이다. 동시에 러시아의 안보와 서방의 안보가 모두 튀르키예의 손 안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쿠르드 공동체는 이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특히 스웨덴 정치계에서의 쿠르드족의 영향력은 적지 않다. 두 가입 희망국이 쿠르드족과 PKK의 손을 들어준다면 튀르키예는 언제든지 NATO 가입을 중단시키고 러시아의 총구 앞으로 밀어 보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국내 정치계를 흔드는 중이다. 특히 스웨덴 국회는 여야가 각각 174석 동률 상태로, 쿠르드족 의원의 한 표가 국가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스웨덴과 핀란드는 “무기 수출 금지가 없음을 확인”하고 “YPG를 지원하지 않으며 PKK가 테러 조직임을 확인하고 활동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했다. 1차 스웨덴-핀란드-튀르키예 전쟁에서 튀르키예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앞으로 최대 1년간 가입 여부에 대한 각 회원국의 국회 비준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안보를 위해 튀르키예와의 약속을 철저히 이행할 것인지, 튀르키예는 이 기회로 어디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무엇을 더 요구할 것인지, 그리고 스웨덴과 핀란드가 결국 NATO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