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받아 말아?’
‘벤츠 두 대’ 아주머니 전화다. 아주머니 전화를 받고 나면 통화가 길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매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사람 화를 돋운다. 그래서 받을지 말지 고민이다. 고민은 잠시, 결국 받아나 보자는 마음으로 폰을 터치한다.
“우리 도어록이 이상해요. 도와줄 수 있을까요?”
평소와 다른 톤의 목소리.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자 도어록 건전지 교체 알림이 울린 것 같다. 뚜껑을 열어서 건전지만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말씀을 전한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내가 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리고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해결될 문제이고,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아도 될 문제여서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아주머니 : 건전지 교체를 할 줄 몰라요.
나 : 간단합니다. 뚜껑 모양으로 생겼어요.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시겠어요?
아주머니 : 폰으로 사진 찍어서 보낼 줄 몰라요.
나 : 집에 아드님 있지 않나요? 저녁에 교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 : 남편도 집에 없고, 아들도 요즘 밖에서 지내서 할 수가 없네요.
몇 번의 대화가 오가며 판단이 섰다. 결국 가봐야 한다. 집에서 쉬고 있다가 다시 일터로 향한다. 그래도 본인이 난감하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럽다. 그분 집에 건전지가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실에 있는 여분 건전지를 챙겨 출동. 빼꼼히 문을 여는 아주머니는 표정도 부드러웠다. 아주 간단히 배터리를 교체하고 다음에도 같은 증상이 나오면 조치해야 할 방법도 반복해서 일러드렸다. 평소 원수로 지내고 있지만 간단한 건전지 교체조차 못해 나를 부른 것을 보니 아들과 관계도 짐작된다. 그냥 조금 짠하다.
「며칠 후」
평소에 종종 연락 주시는 할머니의 전화가 온다. 이분께도 붙잡히면 일이 많다. 텔레비전이 안 나와서, 전기 차단기가 떨어져서, 통신사 고객센터와 연결이 안 되어서 등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면 나를 찾으신다. 혼자 계신 어르신이니 가능하면 내 어머니라 생각하고 돕는다. 방문해보니 이번에도 도어록 배터리 문제다. 간단하게 조치를 하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우신다.
“몇 년 전에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는 이런 일 다 해줬는데. 이거 하나 못해서 소장님 부르고 미안합니다.”
당황스럽다. 갑자기 돌아가신 남편의 자리가 크게 느껴지셨는지, 이런 상황이 서러운지 젊은 소장 앞에서 눈물을 쏟으신다. 급하게 인사를 드리고 나오며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가정에서 나도 소중하겠지? 어깨를 한 번 펴 본다.
“여보, 원래는 내가 먼저 죽어야 좋을 것 같았는데. 안 되겠다. 내가 조금 더 살게.”
두 어르신의 도어록 이야기와 함께 내가 더 오래 살아보겠다는 말을 전해 들은 연상의 아내가 피식 웃는다. 웃음의 의미가 뭘까? 하긴, 아내는 이미 내가 없어도 수납장과 변기도 고치는 여자다. 아내 핑계로 더 오래 살겠다는 나의 이야기가 좀 우습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삽화 : 김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