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의성 고운사



의성 고운사

 

 

僧乎莫道靑山好

山好如何更出山

試看他日吾踪跡

一入靑山更不還

 

 

그를 만나러 갔다. 햇살이 뜨겁던 팔월, 주말을 보낸 자인헌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났다. 나는 반듯한 중앙고속도로를 옆에 두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렸다. 국도는 존재의 울타리 밖처럼 자유롭고 창조적인 힘이 난다. 따라오는 풍경들과 경주를 하기도 하고 유목민처럼 사유의 바깥을 떠돌 수 있어 좋다. 예천을 지나 34번 국도를 타고 천천히 달리다가 안동 옆을 지나 의성에 다다랐다. 의성은 참 개념 있는 고을이다. 곳곳마다 유교의 흔적이 역역했고 골 깊은 산마다 불교의 흔적도 역역했다. ‘인간은 시적으로 대지 위에 거주한다.’라는 횔덜린의 시구처럼 유교와 불교가 다툼 없이 존재의 대지위에서 사이좋게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의성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곳인지 모른다. 인간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의성에 그가 있었다.


 



그는 천재였다. 그러나 천재는 늘 불운한 법인가 보다. 신라의 신분제도를 넘지 못하고 그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돌아온 고국에서 그는 기우는 신라의 국운에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결국 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유인이 되어 구름처럼 새처럼 떠돌았다. 일찍이 유선의 통합을 주장했지만 천년이 지난 지금도 유선은 각자가 유별하다. 이 세상이 다 말라 비틀어져도 그가 주장했던 유불선 통합은 어려울지 모를 일이다. 그의 사상은 찬란했지만 시대는 그를 위해 문을 열지 않았다. 천백오십여년 전의 그를 찾아 이천십삼년의 나는 고운사를 찾아왔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시간 밖을 서성이며 나의 무질서한 감각들을 정비했다.

 

나약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모든 여행의 끝을 산사로 마무리하는 버릇이 있다. 왜 그런지 모른다. 다만 그럴 뿐이다. 늘 여행의 끝을 찾아 산사로 들어설 때면 나보다 내 마음이 더 좋아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온 고운사에서도 그랬다. 고운사천년숲길을 걸으며 나는 내 마음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뭔지 모르지만 그랬다. 인연 없는 인연이 가장 좋은 인연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 마음과 인연이 된 것이 가장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사람과의 사귐이 서툰 탓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과의 인연이란 변덕스런 고양이 같은 것일지 모른다. 부질없는 인연이 없음을 내심 안심하며 나는 내 마음과 함께 고운사천년숲길을 걸었다. 고운사천년숲길에서는 시간의 향기가 났다. 마치 인간을 위해 숲은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시간을 품어 안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도 천 년 전에 이 길을 걸으며 시간의 향기에 취했을까. 산문 앞에 선 그가 말했다.

 

이곳은 능히 구름 끝에서 해와 달의 기운을 마시고, 휘어진 무지개를 건너 북두성을 밟을 수 있는 곳이로다.”

 

어둠의 근원 속을 헤매고 다녔던 그는 산문 앞에서 천하의 길지에 자리 잡은 고운사를 보자 환희에 사로잡혔다. 등운산 자락에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지세는 명당이 분명했다. 화엄종주 의상대사가 높이 뜬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사高雲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운 절이기에 더욱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는 이 사랑스런 절에 들어와 가운루와 우화루를 짓고 자신의 인 고운孤雲을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고쳐 불렀다.

 

나는 나의 나약함과 헐거움을 안고 그를 따라 일주문을 지나 고불전 앞에 섰다. 오래된 석불이 작은 고불전 안에서 이쪽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고불전의 고적한 아름다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격한 수행 가풍을 지닌 고운사 스님들의 침묵을 따라 그가 지은 가운루에 다다르자 가운루의 아름다움이 나를 긴장시켰다. 순간 그는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혼자라는 건 해탈이다. 견디지 못하는 것들의 견딤이 수행의 궁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그가 사라진 가운루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허공만 바라보다가 대웅보전으로 향했다. 대웅보전 부처님께 삼배를 마치고 우화루에 서니 스스로 운명을 완성한 그의 인간최치원이 보였다.

 

고운사에 온 나는 세상 안에 앉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그의 을 따라 여름 한낮을 방황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사랑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완전 연소된 사랑으로 그는 신선이 되었거나 깨달음의 길로 들어갔을 것이다. 쌍계사에서 산문 밖으로 나가는 승려 호원상인顥源上人에게 시를 지어 보내면서 영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그를 나는 고운사에서 도리 없이 놔주며 시만 가만히 읊어댔다.

 

 

어이 스님, 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소

산이 좋을진대 어찌 다시 산을 나가는가.

뒷날 내 자취를 두고 보시오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 나오지 않으리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4.04 10:33 수정 2019.04.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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